[코로나 시대의 독서 3] 예배, 디지털 세상을 만나다
1. 예배의 레퍼토리 확장
2. 연속성과 혁신의 문제
3. 공간보다 시간이 중요
4. 다감각·초텍스트 경험
5. 휴대·이동 가능해지다
예배, 디지털 세상을 만나다
테레사 베르거 | 안선희 역 | CLC | 328쪽 | 15,000원
“사이버(온라인) 공간이 예배를 위해 ‘유례없이 적절한’ 자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이 기도와 예배를 위한 유례없이 부적절한(inappropriate) 장소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당에 가지 못한 채, 목회자 및 성도들과 직접 대면하지 못하는 ‘온라인 예배’ 또는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이 ‘온라인 예배’가 ‘사이버’라는 말이 주는 어감처럼 가상 또는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 비상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예배를 지속할 수 있는 ‘실제적 네트워크’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예배, 디지털 세상을 만나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예배’ 사태를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그 직전인 올해 1월 31일 출간됐다(원제 @Worship: Liturgical Practices in Digital Worlds).
책에서 저자는 ‘사이버 공간’ 즉 온라인으로 ‘이주해 간’ 예배 실행을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30여년간 사용했던 자신의 ‘신앙의 보고(寶庫)’인 기도서를 비행기에서 잃어버린 뒤 공허감과 상실감을 크게 느꼈다. 이후 우연히 팟캐스트나 어플리케이션 등 온라인 상의 기도 자료들을 접하면서 도움을 받았고, ‘디지털의 편재’ 현상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온라인 예배에서 이뤄지는 거룩하신 존재와 인간 존재와의 만남에 있어, 하나님 쪽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나님은 디지털(온라인) 공간에서도 오프라인 성소들을 포함해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쉽게, 똑같이 어렵게 스스로 움직이시고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과 관련된 핵심 문제들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쪽이 아니라, 이 만남에 참여하는 ‘인간과 물질 쪽’에 달렸다는 말이다.
이러한 입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디지털’을 통한 예배와 성례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늘 존재했고, ‘디지털’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터넷 세례식과 디지털 성찬 나눔을 옹호하진 않는다. 저자는 그런 입장과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 밝힌다.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와 예배 문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주목하고 있지만, 북미와 유럽 등 기독교 문화권인 서구에서는 이러한 연구서처럼 이미 관련 논의가 상당히 진행됐다.
주로 가톨릭의 예를 들고 있는 이 책에서는 ‘인터넷 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한 공동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께 신실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온라인 예배’도 이미 진행 중이므로, 한국교회 현재와 미래 상황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최근 논의가 시작된 ‘온라인 성례(세례와 성찬)’과 ‘예배의 미래’를 다루는 5·6장이다.
‘온라인 성례’ 문제는 신학적으로 검토해 보면 부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저자는 군대·전쟁·전염병 등의 이유로 성찬 집례자가 부재하거나 빵·포도주를 전달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목회적·선교적 입장에서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세례도 마찬가지.
“하나님의 은혜는 성례전에 위임된 것이기는 하지만, 성례전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기독교 전통은 항상 이 점을 이런저런 형식으로 인정해 왔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이버 공간 안에 현존하시며 활동하실 수 있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저자는 고대의 언덕 꼭대기들과 그리스 로마의 집들부터 초대교회의 지하 묘지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들, 개인 예배당들, 순례의 길들, 들판, 가정의 제단들, 그리고 부엌의 식탁들 등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예배당 이전 역사적 예배 처소들을 열거하면서, 사이버 공간 이전에 있었던 많은 장소들처럼 ‘사이버 공간’ 역시 나름의 예배 실행들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제한하고 있다고 정리한다.
‘예배의 미래’를 논하는 마지막 장에서, ‘온라인 예배’ 전망에 대해 저자는 첫째로 특히 ‘증강 현실’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통합’됨으로써, 예배의 ‘레퍼토리’가 오히려 방대하게 확장될 수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둘째로 ‘연속성과 혁신’의 문제에서는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이라고 통상 간주하는 비선형(non-linearity), 다매체성(multi-mediality), 단어와 이미지의 병존, 쌍방향성(interactivity), 텍스트 콜라보(textual collaboration) 등은 디지털 이전 시대 미디어를 형성할 때도 이미 존재했으므로, 온라인 예배와 그 이전 예배 사이의 차이점을 과도하게 강조하지 말 것을 역설한다.
‘공간보다 시간’이 중요해진다는 것이 세 번째 특징이다. 특정 지역과 상관없는 거룩한 장소들이 출현하고, 오프라인 예배당과 가상 현실의 결합으로 ‘직접 참석하는 예배’보다 온라인을 통한 ‘예배의 동시성’이 우위를 점할 것이다. 같은 장소에 있지 않더라도, 같은 시간에 ‘접속’할 경우 예배에 함께 참석하고 있다고 인식되리라는 것이다.
넷째로 단선적(linear) 실행들로부터 그물망 식의 복합적이고(rhizomatic) 다감각적·초텍스트적 경험을 통해, 예배는 계속 변화해 나갈 것이다. 멀티미디어적인 경험을 통해, 즉각적·쌍방향적이며 예배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
다섯째로 ‘열린 접근’이 가능해진다. 휴대 가능하고 이동 가능한 예배, 전 지구적인 기도와 찬송들이 전 세계에서 펼쳐질 수 있다.
책은 활자와 인쇄술 발명 등 오늘날과 비슷한 통신 기술의 결정적 진보를 이뤘던 16세기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를 돌아보면서 마무리된다. 테레사는 당시 새로운 신앙 갱신 운동인 관상적 기도를 선호했으나, 전통적인 ‘예배기도서’의 중요성도 옹호했다는 것이다.
“테레사의 근본적인 성찰은 이것이다. 교회가 수행하는 예배 실행들의 궁극적 의미는 예배 너머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든지 하나님과 신실한 만남 속에 있다는 것이다. 테레사의 시대에 이런 깨달음이란 권위를 인정받은 특정 의식들의 거행과 은혜를 강력하게 연결지었던 전통 자체를 수정하는 것이었다. 500년이 지난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서 테레사의 통찰은 신학적 탐구를 위한 또 다른 길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 테레사 베르거 박사(Teresa Berger)는 미국 예일대 신학대학원 예배학 교수이자 성음악연구소(Institute of Sacred Music) 출판 편집인이다. 독일 출신의 저자는 영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예배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해 각각 신학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듀크대학교를 거쳐 2007년부터 예일대학교에서 예배학을 가르치고 있다. 예배 관련 유명 블로그 ‘Pray Tell’에 정기적으로 ‘예배기도문’을 게재하고 있다.
역자 안선희 교수(이화여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개신교 신학부에서 예배학을 전공했다. 예배 지침서 <예배 돋보기>와 예배학 이론서 <예배 이론, 예배 실천> 등을 썼으며, <예배, 사회과학을 만나다>, <예배, 신비를 만나다>를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