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인의 아트독서 52] 지금, 목회 패러다임을 시프트할 때(1)
교회는 코로나19로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코로나19는 세상, 교회 그리고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를 가져다줬다. 그로 인한 변화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요구되는 변화에서,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변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변화를 추구하며 다가오는 변화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변화를 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교회 생존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요구받던 시대에, 교회는 천주교회와 불교와 달리 일부에서 예배를 드려왔다. 이에 대해 세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하지만 세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코로나19 진원지였던 신천지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신앙이 없는 지인이 제게 질문을 했다.
“신천지도 교회 아닙니까?”
교회가 아니라고 이야기 해줬다.
그랬더니 자신의 눈에는 같은 교회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천주교와 불교는 주일날 모이지 않는데,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걸 보니 신천지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는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가 신뢰를 잃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던 기사가 있었다. 교회가 부활절 날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니, 배우 김의성은 이런 말을 했다.
“부활절에 교회 가면 문에 못 박고 크리스마스에 풀어줘라.”
이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신뢰를 잃은 교회는 어떻게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가? 결국 본질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세상은 예전부터 교회의 변화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세상으로 잃은 신뢰를 회복하려면, 교회는 달라도 확 달라져야 한다. 예수님처럼 다 버리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사회에서 더욱 고립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정치판은 진보로 기울어져 있다. 그 말은 보수적인 교회에 대해 정치권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는 말이다. 정치판이 색안경을 끼지 않고 보게 하려면, 이 시대 교회가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는 변해야 한다. 목회도 변해야 한다. 코로나19는 목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분위기를 형성했다. 목회를 변화시키려면 목회자가 독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독서를 할 때 변화의 필요성과 함께 어떻게 변화할지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저는 10년 전부터 ‘몸으로 하는 목회’에서 ‘머리로 하는 목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목회 중심’에서 ‘설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외쳤다.
‘목회 프로그램 중심’에서 ‘교회만의 차별화된 콘텐츠 생산’으로 전환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교회는 이 10년 간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의 목회를 했다. 사람 중심이어야 하는데, 사람 관리 중심의 목회를 했다.
설교만 보더라도 변화가 시급했다. 설교가 ‘Three Point’에서 ‘One Point’로 전환을 했어야 했다. 아직까지도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럴 때 세상 문화의 거센 파도와 맞서 싸울 수 있다.
사실 ‘One Point’로의 전환은 교회 스스로가 원한 것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의 거센 요구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설교자들은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에 의존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세상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을 예배당으로 끌어들이려면, 남다른 콘텐츠로 무장해야 한다. 이젠 교회 내에서의 모임이 전처럼 활발하지 못할 것이다.
교인들에게 몸으로 봉사하기를 요구하는 것도 녹록치 않을 것이다. 한국 교회 주력인 심방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도도 다른 전략이 필요해졌다.
코로나19 이후, 교회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져야 한다. 세상과 달라도 완전히 달라야 한다. 다르지 않으면 추락한 신뢰 회복이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목회도 달라야 한다. 양태만 다른 것이 아니라 의식과 가치관, 추구하는 것이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 인생 포기를 통해 부활로 증명해내셨다. 세상이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
사람들과의 소통에 방해가 되는 것은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바울이 한 말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를 통해, 교회가 세상과 질적으로 다름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깰 수 있어야 한다
유뷰브가 대세이다 보니, 이젠 목회들 자신의 교회에서만 잘 하는 시대가 아니다. 교회 밖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전에는 교인 관리만 잘 하면 됐다. 이젠 교회 밖 사람들까지 관리할 수 있는 남다름이 요구받고 있다.
교회 내 소통만을 중시해서도 안 된다. 교회 밖 사람들과의 소통도 중시해야 한다. 온라인 시대에는 예배당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이 급속도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젊은 층에서 두드러질 것이다.
최근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각 교회 유뷰트 온라인 접속 횟수’가 있다. 자기 교회는 접속자가 많다고 기뻐하는가 하면, 접속 횟수가 적다고 슬퍼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각 교회별 유튜브 접속 횟수가 통계로 나온다.
성도 수 약 56만 명이라고 알려진 세계 최대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 이영훈 목사) 유튜브 구독자 수는(이하 4월 9일 오전 기준) 대략 2만 7천명, 지난 4월 5일 주일 설교 영상 조회수는 7천여회이다.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는 각각 3만 7천명과 1만 2천명, 주안장로교회(담임 주승중 목사)는 구독자수 비공개, 설교 조회 수는 1만 1천 회 정도다.
역시 대형교회들이지만 앞서 언급된 교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 분당우리교회(담임 이찬수 목사)는 각각 12만 2천명과 8만 9천명, 선한목자교회(담임 유기성 목사)는 9만 8천명과 7만 5천명,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는 1만 8천명과 9만 4천 명 정도나 됐다.
전에는 교인 숫자가 주일 출석 통계였다. 이제는 유튜브 조회 수가 교인 숫자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 크기가 아니라, 설교의 능력에 따라 접속 횟수가 결정되고 있다. 이제 목회자들은 독서가 삶의 일부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처럼 삶이 나태해서 안 된다. 치열함으로 무장돼야 한다.
전에는 온라인 교인은 교인이 아니었다. 이젠 온라인 교인도 교인이다. 온라인 교인으로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온라인 교회는 성도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값싼 복음, 번영 신학으로 유혹하면 큰일 난다. 기독교만의 수준 높은 가치관으로,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십자가 사상을 줄 수 있는 목회를 할 해야 한다.
전에는 같은 교인들에게 같은 행동을 취해도 상관이 없었다. 이젠 같은 교인들에게도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우리 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매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가진 것으로 그들을 품어낼 수 있도록, 남다른 가치관과 의식 그리고 메시지로 다가가야 한다.
현재의 목회 패러다임이 아니라, 미래의 격에 맞는 목회 패러다임으로 무장해야 한다. 교회마다 숫자 놀음을 그치고 질적 향상으로 마음을 끌 수 있어야 한다.
성경 공부도 마찬가지다. 학원 ‘일타 강사’처럼 재밌게는 못해도, ‘일타 강사’처럼 수준 높은 성경 공부를 해야 한다.
설교도 유명 작가나 전문가들이 강의하는 수준에 가까운 탁월한 논리와 논증으로 무장된 ‘One Point’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자와 묵상/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이기는 독서/절판》《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