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 강철호 목사 “다소 과잉 반응… 안 좋아 보이는 건 사실”
정치적 눈치 보기보다 북한 사람들 살려야
가장 빨리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복음’
북한은 ‘땅끝’ 아닌 ‘예루살렘’, 회복 나서야
북한 ‘김정은 위중설’과 ‘급변 사태’ 관련설에 대해, 탈북 목회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강철호 목사(새터교회)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정은 건강 상태에 대해 다소 과잉 반응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남북 관계를 비롯해 북한과의 문제들이 계속 엉켜 있어서 그럴 것”이라며 “어차피 김정은 문제는 전 세계에서 궁금해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깨어나지 못할 것이고, 급변 사태까지 거론되는 것은 다소 과장됐다고 본다. 물론 건강이 안 좋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 목사는 “저도 알아봤는데, 북한 사람들은 당연히 해당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어쨌든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 자체가 그만큼 북한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이라며 “한국교회도 이제 정치적으로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선교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다. 많은 탈북민들이 여당이 압승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는 보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어쨌든 좌우가 번갈아 가며 정권을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 휘둘리기보다, 북한 동포들을 살리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철호 목사는 “북한 핵무기도 복음으로 이길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을 가장 빨리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도 바로 복음”이라며 “복음만 들어가면 북한 사람들이 깨어날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눈치를 보면서 북한에 복음 전파를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목사는 “북한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기보다, 복음이 들어가야 한다. 저들이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한국교회가 이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전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독일 통일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프라이카우프(freikauf) 운동’이다. 이는 ‘자유를 산다’는 의미의 동독 반체제 인사 석방 사업으로, 독일 분단 당시 동독에 돈을 주고 정치범들을 데려온 방식이다.
강철호 목사는 “프라이카우프는 비밀 운동이었다. 서독이 동독에 돈을 지불해서 감옥 속 정치범과 기독교인들을 데려왔다”며 “당시 서독 언론들이 이를 이슈화하고자 했지만, 운동가들은 신앙적으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했다”고 설명했다.
강 목사는 “운동가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동포들을 이해하기에 힘쓰면서, 통일이 될 때까지 그 일을 계속 했다. 그리고 통일을 대비해 데려온 그들을 키웠다”며 “우리도 이제 프라이카우프 운동 같은 비밀 복음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선교에 앞장서시는 목사님들을 만나봐도, 혹 정치적 이슈화돼 교회가 공격받을까 북한 선교를 꺼리시더라. 그건 아니지 않나”며 “예수님께서 당시 정치인들 눈치를 보면서 복음을 감추셨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북한 사람들이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부르지만, 밤에는 이불 속에서 가족들끼리 한국 TV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고 한다. 드라마도 이렇게 북한 사람들 마음을 녹이는데, 복음이 왜 못하겠는가”라며 “복음이 들어가야 통일이 빨리 올 것이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평화는 정치적 이슈에 불과하고, 진정한 복음만이 이 땅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그런 의미에서, 통일의 키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있다”며 “한국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한에 복음을 전한다면, 통일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했다.
강철호 목사는 “한국교회가 자꾸 북한을 ‘땅끝’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여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은 ‘땅끝’이 아니다”며 “그 근거가 사도행전 1장 8절인데, 곱씹어서 읽어보면 ‘예루살렘’이 맨 앞에 있다. 예루살렘부터 회복돼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양이 바로 ‘동방의 예루살렘’ 아니었나. 우리가 이 예루살렘부터 회복해야 하는 것”이라며 “북한을 ‘땅끝’으로 부르면서 나중에 전도하려 하지 말고, ‘동방의 예루살렘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