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의 소망 10] 56편: 세상 앞이 아닌, 하나님 앞에 울어야 합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눈몰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였습니다
전편인 시편 55편에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시인은, 날개만 있다면 멀리 날아가서 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때의 날개는 바로 비둘기를 의미합니다.
당시 비둘기는 어떤 의식에서 제물로 바쳐질 때 피에 적셔서 날려 보내기도 했고,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이 통신용 비둘기를 이용해 중요한 전갈을 보낼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눈물을 병에 담아 비둘기에 달아 날려보내기도 했다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56편에서도 이 비둘기가 등장합니다. 성경에 보면 시편 56편을 시작할 때, 작은 글씨로 요낫 엘림 르호김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요낫은 비둘기를 의미하고, 엘림은 테레빈 나무라고 해서 큰 상수리 나무의 일종인데,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지 곳에 있는 나무를 말합니다. 따라서 멀리 있는 테레빈 나무들의 비둘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어떤 극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부르짖는 상황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둘기는 많은 의미 중에서 우리의 슬픔을 노래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또 ‘믹담’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큰 위기에 처한 다윗이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탄원의 시를 말합니다. 이 믹담시는 56편에서 60편까지 계속 됩니다.
본문은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혔을 때의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압제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헐떡거리게 하다, 맹렬히 추격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다윗이 쫒기고 도망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만큼 힘이 없던 다윗이기에, 한없이 당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의 고통은 더 깊어졌지만 하나님 앞에 호소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3절)”.
여기서 다윗의 고백에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압제하고 삼키고 교만하게 친다는 표현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윗의 한결같은 반응은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마치 오뚝이가 흔들리지만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듯이, 다윗이라는 사람은 압제하고 삼키고 쳐서 흔들면 다시 돌아와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고통은 사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컸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 하면,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주변에 숨어 있는데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를 때입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할 때 가장 힘들어했던 것도, 바로 베트콩들이 전면에서 공격하지 않고 숨어서 몰래 공격하는 전술이었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시민으로 가장했고, 땅속에 숨어서 언제 기어 나올지 몰랐고, 부비 트랩이라 해서 미군이 숲을 지나갈 때 무언가를 밟거나 어디에 걸리면 난데없이 칼과 송곳이 튀어나오고 폭탄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만약에 우리 공동체 안에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원수 삼은 사람이 있어서 뒤에서 나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데 누군지 모른다면, 우리는 정말 마음이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인터넷에 연예인들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면서, 실명으로 글을 쓰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다들 숨어서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을 즐겨합니다. 다윗은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6절)”.
하나님은 우리가 눈물로 호소할때 반드시 들으십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때 다윗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행인을 덮쳐서 살해할 의도로 행인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매복해 있는 자들과 같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이제 다윗은 이 어려움 속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그 눈물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8절)”.
여기서 ‘주의 병’이라는 표현은 앞서 처음에 언급했던 비둘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하나님을 부르짖을 때 표현하던 비둘기, 그 비둘기가 물고 예루살렘으로 날아갔던 작은 병을 상상해 봅니다. 거기에 눈물을 담았다는 것이지요.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눈물을 드리고 이제는 닦을테니, 자신의 눈물을 하나님이 가져가시라는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참 중요합니다. 기도하면서 다 맡긴 겁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아들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다 맡겼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돌아서서 다시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그렇게 하나님께 눈물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11-12절)”.
여기서 감사제를 드린다는 표현은 감사제 자체가 응답에 대한 감사를 말하기 때문에, 다윗이 기도하면서 응답을 받았음을 말해줍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응답하셨을까요?
우리는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미리 감사해야 합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13절)”.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은혜로 붙드셔서 다시는 실족하지 않게, 즉 이렇게 고통만 당하고 있지 않도록 도우신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사제를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필 것은 이러합니다. 다윗이 기도할 때 상황이 바로 변했을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상황은 동일하나, 앞으로 해결될 것을 믿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미리 감사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나면 돌아서서 미리 감사하면 됩니다. 앞으로 될 줄 믿는 그 믿음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다 맡기면 다 받으십니다. 맡기기만 하면 다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오늘도 그 응답에 미리 감사하는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팀사역의 원리>, <시편의 위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