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 단순하게 경청하고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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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설교연구원 설교] 영적 지도자는 단순해야 한다

본문: 창세기 14장 16절

▲(사)복음의전함의 3월의 심플(心+) 테마 메신저. ⓒ복음의전함

▲(사)복음의전함의 3월의 심플(心+) 테마 메신저. ⓒ복음의전함

지금은 단순함이 대세다

지금은 단순함이 대세인 시대다. 복잡하면 관심을 끌 수 없다. 예전에는 하나, 둘 하면 셋을 말했다. 지금은 하나, 둘 하면 돌아오는 말이 있다. ‘때려 치워라’다.

단순함의 대세 시대, 가장 단순해야 하는 것은 생각이다. 지인 중 한 명은 생각이 복잡하다.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될텐데, 두 가지 이상, 때론 세 가지를 생각한다.

대화하다 보면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언제나 대화는 제자리걸음이다. 생각은 복잡하면 안 된다. 생각은 단순해야 한다. 생각이 복잡하면 머리만 아플 뿐이다.

생각만 단순해선 안 된다. 삶도 단순해야 한다. 삶이 단순하려면 먼저 생각이 단순해야 한다. 생각이 단순해야 삶이 단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삶의 시작은 하루다. 즉 하루 일과가 단순해야 한다. 하루를 보내는 데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그 중에 한 가지만 꼽으라면 절박함으로 임하라고 말하고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삶이 많이 힘들어지고 있다. 이럴 때는 삶이 한 가지로 단순해져야 한다. 절박함으로 살아갈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삶이 단순해야 한다. 설교도 단순해야 한다. 어제 한 분이 자기 설교 코칭을 부탁했다. 읽어보니 설교가 복잡했다. 설교 포인트가 하나가 아니라 세 개였다. 설교는 단순해야 한다. 말하고 싶은 포인트 한 개만 말하면 된다.

저는 성격이 단순하다. 성격이 단순해서 좋을 때가 많다. 직진하거나 후진하면 된다. 옆을 보이 않아서 좋다. 성격이 단순하니 한꺼번에 두 가지를 못한다. 오직 한 가지만 할 줄 안다.

그래서인지 식당도 단품만 판매하는 전문 식당을 좋아한다. 청국장 집, 김치찌개 집, 생선구이 집, 갈비탕 집 등 단품만 파는 집을 선호한다.

우리는 십자가의 신학을 믿고 따른다. 십자가는 죽는 것이다. 살 것을 예상하고 죽지 못한다. 단순하게 십자가에서 죽으면 된다. 하지만 죽은 뒤에 어떻게 될 것인가? 진짜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십자가에 나를 매달지 못한다.

예수님은 단순하셨다. 십자가에 죽으셨다. 부활을 생각하고 죽은 것이 아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니 부활을 경험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았다.

단순한 행동에 사랑이 드러난다

신앙도 단순해야 한다. 단순한 신앙이란 어렵지 않고 쉽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도 단순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만을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만을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단순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이유가 단순하다. 그냥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조건을 달면 단순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단순한 것은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니 마음이 쓰인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던 어느 날, 대전에 사는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를 문병하러 서울로 올라온단다. 누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니고 이웃집 아주머니라면 단순해지지 않는다. 대전에서 서울로 가는 것이 고민이 저절로 된다.

아브라함도 행동이 단순했다. 조카 롯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돌라오멜 등 네 왕에게 잡혀갔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려 전장으로 나간다. 조카를 구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다.

우리도 생각이 단순해야 한다. 행동이 단순해야 한다. 삶도 단순해야 한다. 신앙도 단순해야 한다. 그럴 때 조건 따지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삶이 단순한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도 단순하게 행동한다. 죽음 앞에서도 단순하게 행동 했던 한 사람이 있다. 4월 29일 경기 이천 한 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때 이모 씨다.

당시 화재로 무려 38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는 사고 당시 빠져나가기 쉬운 출입구 근처에서 설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주변 작업자들 중 불이 난 것을 가장 빠르게 인지했다.

이 씨는 불이 난 사실을 알고도 즉시 탈출하지 않았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탈출한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행동했다.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건물 안쪽으로 달렸다.

살기 위해 건물 밖으로 달려야 하는데 건물 안으로 달렸다. 그것도 “불이야”라고 계속 소리를 지르며 건물 안쪽으로 달렸다. 결국 살 수 있었던 이모 씨는 죽었다. 죽기 전 바깥에 있던 동료에게 전화해 “출구가 막혔다”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는 삶이 단순했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로 단순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 사람을 의인이라 부른다.

신앙인은 단순해야 한다

저는 생각이 단순하다. 단순하기에 때로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외국 여행 중 출국 날이 됐다. 숙소에서 나오는데, 비가 엄청 쏟아졌다. 우산이 없었기에 우산이 필요했다.

게스트하우스 한 구석에 비닐 우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 허락을 받고 사용해야 했다. 주인에게 연락을 해도 받지 않자. 무조건 우산을 들고 공항으로 갔다.

한국에도 비가 온다는 말을 듣고 우산을 들고 비행기까지 탔다. 도착한 뒤 주인에게 숙소에서 우산 들고 나왔다고 메일을 보냈다. 주인에게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아브라함도 위기 상황에서 행동이 단순했다. 조카 롯이 잡혀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다(창 14:14). 그 뒤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쉈다(창 14:15). 마지막으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다(창14:16).

아브라함의 행동은 죽음을 무릅쓴 행동이었다. 아브라함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까지 내 놓으셨다. 죄인이 우리를 사랑한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동에 있어 단순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한 행동에 단순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죽는 데 단순했다. 그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데 단순하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왜 예수님과 아브라함은 행동하는 것이 단순했나? 단순함에 힘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단순해진다. 사랑할까 말까를 고민하면 결국 사랑할 수 없다. ‘그래! 사랑하자’해야 사랑할 수 있다.

여자들은 고민이 많다. 여자들의 특성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제 경험에 따르면 결혼하기로 해 놓고도 고민한다. 이 사람이 진짜 나를 사랑하는 가 고민한다. 이 남자에게 내 인생을 맡길 수 있을 까 고민한다.

여자들이 고민할 것은 둘이 어떻게 살아서 행복을 가꿀 것인가여야 한다. 단순해야 하는데 복잡하게 생각하니, 나타나는 것은 갈등이다.

경험상, 갈등은 답이 없다. 고민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문제는 복잡하게 만들면 안 된다.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화할 때 문제가 해결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통일 왕국을 세운 다윗 왕도 단순했다. 그저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하자 다른 생각을 할 줄 몰랐다. 문제의 근원을 따져 파고들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님만 생각했다. 하나님께 가는 것이 답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단순했던 다윗이 한 고백이 있다. 시편 16편 1절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다윗은 문제를 고민으로 풀지 않았다. 하나님으로 풀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께 피한다.

지진이 나면 생각과 행동이 단순해야 한다. 피해야 한다. 건물 안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 밖 공터로 피해야 한다.

저는 난생처음 오사카 전철역에서 지진을 경험했다. 그 때 사람들의 행동은 단순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건물 밖으로 뛰었다. 저도 따라 뛰었다.

지진이 나면 행동이 단순해야 한다. 건물 안에 있다면 건물 밖으로 피해야 한다. 불이 나도 마찬가지다. 불이 나지 않은 곳으로 뛰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한 가지를 하면 된다. 하나님께 피하면 된다. 하나님께 피해 살려달라고 다윗과 같이 기도하면 된다.

예수님은 행동이 단순했다. 아브라함도 롯에 대한 행동이 단순했다. 다윗도 문제 속에서 행동이 단순했다.

사도 바울도 삶이 단순했다. 바울의 삶이 단순했던 것은 바울은 신약에서 가장 단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하나님도 단순하시다. “내거 너희를 사랑하노라”고 하신다. 그런 후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이젠 우리만 남았다. 하나님처럼 단순하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바울과 같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면 된다. 다윗과 같이 주께 피하면 된다.

경영도 단순하게 해야 한다

생각이 단순해야 한다. 사랑도 단순하게 해야 한다. 행동도 단순하게 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세상도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사업주라면, 경영도 단순하게 해야 한다. 오늘날 경영은 단순 경영이 화두이다.

1970년대는 고객의 수요가 10인 1색이었다. 지금은 고객의 수요가 1인 10색이다. 그렇다면 작은 기업을 경영할 경우, ‘단순함’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복잡하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경영한 대표적인 회사가 있다. 바로 사우스웨스턴 항공사다. 그 항공사가 추구하는 것은 ‘keep it simple’다. 그래서 탑승권에 보딩 패스도 없다. 기내식도 주지 않는다. 400대 넘는 기종은 모두 보잉 737 단일기종이다.

한 기종이니 승무원도 좋다. 승무원은 복잡하고 다양한 항공기 제원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이 항공사는 한 항공기 제원만 알면 된다. 나머지는 오직 직원을 즐겁게 하는데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다. 그들이 승객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만든 스토리가 있다.

”담배는 비행기 날개 위 라운지에 가서 피워 주세요.”

기장은 승객들에게 담배를 피우려면 비행기 날개에 의자를 설치해 줄테니, 날개 위에서 담배를 피우라고 조크를 한다. 어떤 승객은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보다 사우스웨스트 비행기를 타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이 항공사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지난 30여 년 간 주주들에게 가장 많은 수익을 남긴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9·11 테러 이후 다른 항공사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파산했는데도, 흑자를 기록했다.

기업 경영도 단순해야 한다. 그러려면 복잡한 것을 단순화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과 같이 날마다 죽으면 된다.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으면 된다. 그럼 문제가 해결된다.

영적 지도자는 단순해야 한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해야 할 사람이 있다. 바로 영적 지도자다. 목사, 장로, 주일 학교 교사, 구역장 등은 영적 지도자다. 이들은 단순한 뭔가를 가져야 한다.

찰스 두히그는 《1등의 습관》애서 ‘탁월한 팀들의 공통점’을 이야기한다. 훌륭한 팀을 만드는 것은 팀원이 아니라 ‘규범’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적 지도자의 지침서는 단순해야 한다. 지침서가 단일화돼야 한다. 그 지침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단순함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진짜 필요한 사람은 영적 지도자다. 즉 교회 리더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영적 지도자인 아브라함은 단순했다. 단순했기에 롯을 구하기 위해 318명을 이끌고,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섰다.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 하나로 단순해야 한다. 영적 지도자는 영적이지 않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과 연결만으로 단순화해야 한다.

하나님과 연결하는 통로인 말씀을 읽으라 말씀하시면 ‘예!’라고 대답하고 읽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기도하라고 하시면 ‘예!’라고 대답하고 기도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영적 지도자였다. 그는 행동하는 데 단순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연결하고자 했다. 롯의 문제가 하나님과 연결되자, 구하기 위해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영적 지도자는 경청을 잘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영적 지도자였던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 경청을 잘했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 말씀 경청을 잘 못했다면, 롯을 구하러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롯에 대한 섭섭함으로 인한 마음 속 앙금을 내세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말씀 경청을 잘 했기에, 과거를 묻고 롯의 생명만 생각했다.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 말씀 경청을 잘 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 경청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 나아가 실행에 즉각 옮길 줄 안다.

반면 하나님 말씀 경청에 실패하는 사람은 행동의 결과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가 결국은 죄악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실패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아담과 하와다. 하나님의 말씀 경청에 실패하니 짓지 않아야 할 원죄를 졌다.

세상 삶에도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할 때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의사소통의 기본은 경청이다. 영적 지도자는 경청을 잘 해야 한다. 그럴 때 영적 지도자답게 살 수 있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이동규 교수는 책 《한국인의 경영코드》에서 의사소통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인간은 깨어 있는 시간의 70%정도를 타인이나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 즉 의사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이 의사소통 중 듣기가 절반 가량이다. 말하기는 35%이고 나머지는 쓰기, 읽기 순이다. 결국 듣기인 경청을 많이 한다. 문제는 제대로 듣기를 하느냐이다.”

성학(聲學)이란 것이 있다. 옛날 군왕이 알아야 할 국가 경영의 원리와 반드시 행해야 할 핵심 사항 등이 있다. 여기서 성(聲)이란 제왕을 나타내는 말이다.

성학(聲學)을 글자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임금은 입(口)보다 귀(耳)를 우선해야 한다’. 결국 리더는 말하는 것보다 주위 이야기를 듣고 사정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임금에게 의사소통은 신하와 백성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은 남의 조언을 잘 듣는 것이다. 성도에게 의사소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자신을 사용할 줄 알았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룬 비결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이다. 사울이 실패한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자는 경청의 대가여야 한다. 경청의 대가가 될 때 대가로 살아갈 수 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대가가 될 수 있다. 바울처럼 전도의 대가가 될 수 있다. 그 비결은 하나다. 하나님의 말씀 경청의 대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경청의 대가가 돼야 한다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 중 지도자는 더욱 중요하다. 그 중애서 영적 지도자는 훨씬 더욱 중요하다.

지도자가 중요한 것은 누가 지도자냐에 따라 조직, 사회, 나라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누가 영적 지도자가 되느냐에 따라, 생명의 문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윗 때문에 나라가 평안했다면, 사울 때문에 나라가 힘들었다.

세종대왕이 지도자였을 때 나라가 태평했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였을 때, 일본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도자가 되니 코로나19를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아브라함도 영적 지도자 중의 지도자다. 이런 지도자였기에 조카 롯을 죽음에서 건져냈다. 여호수아도 최고의 영적 지도자였다. 가나안 땅 정복전쟁에서 100전 100승했다.

아브라함이나 여호수아가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겻은 말씀경청을 잘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게 된 것은 하나님 말씀을 경청했기 때문이다.

마가가 바울에게 칭찬받은 것은 바울의 말을 잘 경청했기 때문이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저는 하나님 말씀을 잘 경청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씀을 잘 경청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 말에는 경청이 더 어렵다. 말을 많이 하고자 하지 잘 듣고자 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 말씀과 사람들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한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위대한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 경청 때문에 가능했다. 즉 예수님은 말씀 경청의 대가이시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 말씀 경청의 대가가 돼야 한다. 하나님 말씀 경청의 대가가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단순해야 한다. 더욱 단순할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청이다. 하나님 말씀 경청에 단순할 때 아브라함이 롯의 생명을 구했듯,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온 인류에 구원을 이루셨듯,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된다.

▲김도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김도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자와 묵상/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이기는 독서/절판》《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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