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신앙과 과학 18] 스탠리 밀러의 실험을 중심으로
화학 진화 실험적 증명하려는 노력 실패해
과학에는 분명한 한계, 기원 문제가 대표적
생명의 기원, 과학이 결코 해결할 수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라고 하면 하등한 생명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등한 생명체로 변화하는 ‘생물 진화’를 떠올린다. 하등한 단세포 생명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고등한 생명체로 소위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의 원동력으로 다윈이 제시한 자연선택과 더불어 신종합설(new synthesis)에서 주장하는 돌연변이와 기타 다른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생물진화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물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선 아무리 단순한 단세포 생물이라도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한 어떤 메커니즘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즉 무생명체에서 생명체로의 진화 과정이 필수적인바, 이를 ‘화학 진화’라고 부른다.
한편 무생명체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라는 필연적인 논리적 질문이 이어진다.
이에 관해선 138억 년 전 빅뱅에 의해 양자요동(quantum fluctuation)으로 소립자가 생성되고 시간이 지나 양성자를 비롯한 각종 원소들이 합성되었고 다시 이들이 결합하여 여러 무기물이 합성되었다는 시나리오가 있다. 이를 ‘우주진화’라고 부른다.
◈화학진화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
화학 진화는 생물 진화와 우주 진화의 사이에 놓여 있다. 모든 교과서에는 우주 진화→ 화학 진화→ 생물 진화로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화학 진화가 부정되면 뒤따르는 생물 진화는 저절로 부정되는 것이다.
우주 진화→ 생물 진화로 직접 진화가 이루어졌다고는 설명하지 않는다. 즉 생명 진화의 메커니즘이 아무리 정교해도 화학 진화 없이 생물진화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가 공급 되어야 하는데, 스위치를 열면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는 것과 같다. 컴퓨터의 구조가 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해도,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훌륭해도 전기 없이는 무용지물인 것이다. 이렇게 화학 진화는 ‘진화’ 과정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화학 진화가 교과서에 소개된 것은 당연하다. 7차 교육과정에서 고1 과학 교과서로 사용된 ‘융합과학’ 교과서에는 우주진화와 생물진화의 단원이 따로 있었고, 화학진화는 생물진화 단원에 소개가 되었다.
그러나 8차 교육과정의 ‘통합과학’ 교과서에서는 명시적으로 이러한 구분은 없앴지만, 내용 곳곳에 화학 진화가 들어 있다. 그럼 과연 화학 진화는 과연 일어났는지, 스탠리 밀러의 실험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자.
◈스탠리 밀러 실험과 이의 문제점
화학 진화의 증거로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실험은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의 실험이다.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에 관해선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원시 대기를 환원성으로 가정하고 커다란 둥근 유리구에 메탄, 암모니아, 수소, 수증기를 넣고 전기 방전을 시킨 후 합성된 물질을 분석하였더니, 단백질 합성에 쓰이는 몇 가지 아미노산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밀러의 실험과 삶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밀러는 버클리 대학을 졸업하고 21세에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첫 학기 세미나 시간에 중수소를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해럴드 유레이(Harold Urey)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당시 유레이는 화학 진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이미 1924년에 구소련의 생화학자 오파린(Aleksandr Oparin)은 화학 진화의 메커니즘을 제시하였고, 서구 세계에는 1938년에 그의 책이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유레이는 원시 지구 대기는 강한 환원성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이러한 환경에서 유기물이 합성된다면 생명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세미나에서 설명하였다.
이 강의에 감명을 받아, 밀러는 유레이를 찾아가 자신이 그 실험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 유레이는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에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하는 대학원생에게 그 실험은 위험 부담이 매우 컸기 때문에, 다른 실험을 제안했다.
그러나 밀러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1년의 기한을 두고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실험을 폐기하기로 하고 실험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고안된 실험장치가 지금 널리 알려진 바로 그 장치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 기본적인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고 처음 것과 비슷하다.
실험을 시작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밀러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합성된 물질을 분석한 결과 생체 내 단백질 합성에 쓰이는 글리신과 알라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험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밀러와 유레이는 곧바로 논문을 발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유레이는 자기는 저자에서 빠지겠다고 하였다. 자신이 저자로 등록되면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로 쏠릴 것이라며, 제자를 배려해 스스로 빠진 것이다.
이런 점은 오늘날 교수들이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투고했는데, 당시 편집장이었던 마이어호프가 이를 즉시 처리하지 않고 계속 미루고 있었다.
이에 유레이는 직접 편지를 써 빨리 처리해 주지 않으면 미국화학회지(JACS)로 돌리겠다고 하여, 1953년 5월 15일자 사이언스지에 단독 저자로 실리게 되었다.
이 실험은 전 세계 주요 신문의 헤드라인 뉴스로 소개될 만큼 큰 주목을 끌었다. 크게 명성을 얻은 밀러는 이후 샌디에고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7년 임종 때까지 비슷한 실험을 계속하였다.
기체의 조성을 바꾸기도 하였고, 에너지원으로 전기방전 대신 자외선을 쪼여주거나 열을 가하기도 하면서, 생명체의 필수 성분인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을 합성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사이언스와 같은 최고의 저널에 발표될 만큼 나름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밀러는 결코 화학 진화를 통한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단서를 잡지 못했다.
생명의 기원으로서 밀러의 실험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우선 원시 지구의 대기가 그토록 강한 환원성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질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고, 이를 의식하여 밀러는 훨씬 부드러운 조건에서 실험을 하였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자연계에 밀러 실험장치와 같은 정교한 실험장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 합성된 아미노산이 어떻게 저절로 중합되어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들이 꾸준히 제기되어, 비록 실험 자체는 인정하지만 생명의 기원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반론이 제기되어 왔다.
결정적으로는 생체 내 아미노산이 모두 왼손형인데 반해, 합성된 것들은 왼손, 오른손형이 모두 같은 정도로 존재한다는 손성(chirality) 문제가 있다.
밀러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뚜렷한 답을 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이 문제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다.
2002년 멕시코의 오악사카(Oaxaca)에서 열린 생명의 기원에 대한 13번째 국제학술대회에 밀러가 초청받았다. 당시 그는 거동이 불편하여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생명의 기원에 대한 그의 기여를 존중하여 초청받은 것이었다.
당시 참관했던 한 사람은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밀러는 그의 전 인생을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고자 헌신했지만, 가슴 아픈 현실은 그의 이러한 기여는 이제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밀러와 같은 명석하고 총명한 청년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일생을 거의 소득 없는 연구에 몰두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밀러는 과학자로서 정직하였다. 자신의 연구결과를 과장하여 선전하지 않았고, 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모른다고 시인하였다.
◈화학 진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화학 진화를 실험적으로 증명하여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은 실패하였다. 앞으로도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과학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과학이 발달하여 과거 초자연적인 현상들로 여겨졌던 것들이 과학으로 잘 설명되기도 하지만,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고 기원에 대한 문제가 바로 이에 속한다.
생명의 기원은 과학이 결코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생명은 생명을 주신 분께 물어야 한다. 화학진화는 결코 가능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어지는 생물 진화의 가능성도 없다.
김성현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부회장
건국대학교 시스템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