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서평] 지옥은 존재하는가?
지옥 논쟁
데니 버크 외 | 김귀탁 역 | 새물결플러스 | 326쪽 | 18,000원
이 책은 지옥의 존재를 긍정하고 부정하는 주장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네 명의 기고자는 지옥의 존재를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지옥의 본질과 특징에 대해서는 각자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필자도 처음에는 지옥의 존재 여부를 가지고 대립하고 토론하는 내용인 줄 알았으나, 지옥의 본질과 성격에 대해 심도있게 다루는 책이었다.
책에는 네 가지의 주장이 소개된다. 영원한 의식적 고통으로서의 지옥, 종결적 형벌(멸절주의), 보편구원론, 연옥까지.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옥의 존재를 믿을 것이고 지옥은 영원한 의식적 고통이 있는 곳이라는 전통적 견해를 따를 것이다. 이 주장을 하는 기고자도 이에 대해 열 가지 본문을 근거로 최종적 분리와 의식적 고통과 정당한 형벌이 있음을 논증한다.
멸절주의가 죄인에 대한 심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죄인에 대한 심판 후 지옥에서 사망으로 가득한 그의 존재는 우주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악을 싫어하고 미워하며 창조 세계가 선함으로 가득하길 원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을 따라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죄인을 우주에서 밀어내심으로 창조의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존 스토트와 하워드 마샬이 이 주장을 했고, 이들의 주장은 복음주의권에서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영원한 형벌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과 맞지 않다고 주장하고, ‘영원한’이라는 것을 질적 개념으로도 설명한다.
필자는 이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도 있었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천국이 양적으로 영원한 의미를 지닌다면, 지옥 또한 양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악인의 멸절이라는 개념은 성경에서 말하는 최후 심판과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보편구원론은 개인적으로 필자가 많이 동의하고 고민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구속이 우주적이고 그 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에, 우리의 생각으로 그 효과를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구원의 그 넓은 지평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남은 자가 누구인지 쉽게 예단할 수도 없고 주님의 구원을 제한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도 말하길 한 사람의 범죄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진리를 알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신다.
게다가 요한계시록에는 요한이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만국이 결국 주 앞에 나와 경배한다는 말씀도 있고, 모든 만물이 주님 발 앞에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최종적 선언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초대교회 때부터 많은 학자들이 펼쳤고(오리게네스, 유세비우스, 아타나시우스, 가이사랴의 바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등), 현대에는 우리가 잘 아는 칼 바르트가 펼친다. 그리스도 구속의 효과가 만물을 화해시켰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구속의 능력은 엄청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절대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지옥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같으나,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성경의 거대 서사에서 지옥은 설 자리가 없다 하고, 심판 후에는 모든 것은 이미 화해되었기에 회복된다고 한다.
성경에서 지옥은 가볍게 취급될 수 없다. 화해가 아무리 강조되더라도, 지옥을 약화시키는 화해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의 심판은 최종적이고 영원한 분리인데, 이들은 구원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탄의 존재와 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는 연옥 교리를 다룬다. 필자는 이 책을 보기까지 연옥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기고자는 연옥에 대해 말하기를, 천국에 들어가기 전 그곳에서 정화되고 거룩해지는 최종 관문이라고 한다. 즉 악인은 갈 수 없고 주님을 믿은 자들 중에 아직 회개와 성화가 남아있는 자들이 거하는 곳이다.
연옥 교리를 주장하는 자는 보속과 성화의 개념을 주장하는데, 필자가 볼 때 둘 다 비성경적 개념이다. 이미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에 더 이상 연옥에서의 그 부족함을 채울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인간의 영원은 죽음 전에 결정되지, 죽음 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죽은 후 연옥에서 성화를 거친다는 것이 성립될 수 없다. 더구나 인간의 영화는 한순간에, 홀연히 일어나는 것이지, 훈련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끝으로 지옥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은 죽고 나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 결정된다.
물론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과와 범위를 생각하면, 인간만이 아니라 피조 세계 전체의 구원을 포함한다. 그리고 보편구원론이 말하는 성경 구절들을 생각하면 확장되는 구원론이 성립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인다. 물론 성경을 통한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주님처럼 부활의 몸을 입게 되고, 의인은 생명의 부활로 악인은 심판의 부활로 떨어진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가 있는 반면, 기록되지 못한 자가 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사람들은 지옥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지옥이 나쁜 곳이라는 의식은 있다. 지옥이 무서운 이유는 사탄이 있고 불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지옥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해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옥이 두려워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주를 따르는 것이다.
지옥의 불은 정화와 소멸의 개념도 있지만 영원의 개념도 있다. 성경을 그 문맥과 맥락에 따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고 보여진다.
아무튼 우리는 지옥을 잘 설명해서 구원의 도를 전하려 하기보다, 인생을 긍휼히 여기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될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격한 복음 전파가 되어야지, 지옥의 공포 때문에 전하면 안될 것이다.
또한 지옥의 본질은 우리가 어떤 곳에서 구원받았는지 깨닫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세상에 공포를 주려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