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박사 기독문학세계] 한 마리의 꿩… 존재는 행위를 앞서야
여권 실세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서울시장 박원순 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그런 선택의 배경과 관련하여 정확한 정보를 알 수는 없으나, 언론들은 “전 여비서를 성추행하였고 피해자 여성이 이 사실을 경찰에 고발함”이라는 동기를 밝혔다.
故 박원순 시장과 비슷한 성향의 노선을 걷던 정치 지도자 가운데 분명치 않은 이유로 생을 마감한 경우로 노회찬 씨가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다 생명(生命)에게 주어진 “‘살라’는 명령”을 어긴 사람들이다.
OECD 국가들의 자살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꾸준히 증가해 제1위가 되었다. 한국에 이어 루마니아가 세계 제2위 국가라고 한다(2008년 통계청 보고). 그러니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 역시 OECD 국가 자살률 1위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현상일 수도 있다. 박 시장의 죽음은 분명 애석한 일이고, 한 인재(?)를 잃었다는 허망함도 크다.
그러나 필자에게 박 시장의 죽음은 ‘자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지고한 명 령 “살아라“를 내버린 한 존재에 대한 분노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 여성이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고통 때문이다.
피해 여성은 “살아야 한다”는 지고한 명령 때문에 고발을 결심했다. 그 결심을 하기까지 오랜 긴 침묵의 시간에 얼마나 힘들고 아팠겠는가.
한국에 이어 OECD 국가의 자살률 두 번째인 루마니아를 필자가 방문한 것은 2010년, 헝가리 펜클럽 초청으로 동유럽을 여행 하던 때였다. 불가리아 여행길에서 나는 운좋게 불가리아인 친구와 함께 헤르타 뮐러의 고향마을 니츠커도르프를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 태생 독일 작가로서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라는 작품으로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작품은 루마니아 차우체스쿠 독재 정권이 독일 소수민족들을 극심하게 탄압하던 때를 배경으로, 루마니아 작은 시골 마을에서 고역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던 가난하고 희망 없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의 고향 마을로 가는 도중 해가 질 무렵 한 수도원에 들렸다. 수도원은 평온했고 우아하고 적막했다. 이름 모를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섞여, 야트마한 언덕 위에 한 무리의 꿩들이 푸더덕 푸더덕 날아다니고 있었다. 스무 마리는 훨씬 너머 보이는 꿩떼가 요란스럽게 푸덕여 날개를 뒤흔들며, 비둘기 떼처럼 노을 속을 치솟아 올라가는 듯 했다. 그러나 꿩 무리는 새처럼 날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원래 꿩은 다른 새처럼 날지 못한다.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헤르타 뮐러는 새처럼 날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퇴화된 날개를 꿈꾸는 꿩을 인간의 삶에 비유 언어 예술로 형상화한다.
故 박원순 시장의 장례식 날, 그의 성추행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 측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필자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존재의 당위성에 대한 그녀의 당당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어떤 경우도 존재는 행위를 앞서야 함을 피해 여성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녀는 한 마리의 꿩처럼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오르려 해도, 실제로 다른 새처럼 날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노을 속을 날아오르는 다른 새들은 무지개를 만들지만, 꿩은 영원히 땅 주위를 맴돌며 무지개만 꿈꾼다는 것을. 이 또한 그녀의 고통이다.
그러나 문학에서의 꿩은 인간과 대비되는 속성이다. 다른 새와 다르게 꿩은 빛이나 광명의 세계를 암시한다. 늘 비상에의 꿈을 꾼다. 빛의 세계에 대한 욕망과 비상에의 욕망은 생명성에 대한 꿈이며 희망이다.
성경은 이를 영원을 사모하는 인간의 마음이라 하였다. 그 꿈 위에, 해는 다시 떠오른다.
송영옥 박사
영문학, 기독문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