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은보 옥한흠 목사 10주기에 만난 이동원 목사(下)
전편에 이어, 옥한흠 10주기를 맞아 그와 오랜 세월 함께한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와의 대담을 게재한다. 이번 편에는 코로나 등 최근 이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편집자 주
설교, 리더십, 영성 나누려 필그림하우스 세워
코로나19, 보이지 않는 청중들 가슴으로 안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설교할 수 있는 새 기회
동성애에 찬성하면 복음주의자라 보긴 힘들어
-요즘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은퇴할 때 가평에 필그림하우스 세우면서, 3가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먼저 후학들에게 설교를 나누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리더십입니다. 리더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는 영성입니다. 영성의 핵심은 기도이지요. 우리가 어떻게 기도로 내면을 준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 3가지 때문에 필그림하우스를 세웠고, 1년에 10번 이상 세미나를 하면서 리더들을 만나는 일들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활동하시던 당시만 해도 부흥이 일어나고 교회가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세대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옥 목사님을 좋아한 것은 ‘부흥’이라는 단어보다 ‘각성’을 좋아하셨다는 것입니다. 영적 각성이라는 단어. 사실 제1·2차 세계 부흥운동은 ‘영적 각성’을 통한 결과라고 봅니다. 그러한 각성은 회개 없이 불가능하지요. 옥 목사님은 그런 차원에서 ‘영적 각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 불신자들에 대해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영혼들의 구령을 위한 대각성 전도 집회를 매년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울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깨어 있는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한 생각을 갖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세상에서 욕을 많이 먹다 보니, 목회자들이 지나치게 방어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전도는 망각한 채, 방어하기 바쁩니다.
저도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집회를 했지만, 부흥회는 믿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옥 목사님의 대각성 전도 집회는 안 믿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참석했습니다. 교인들이 안 믿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데려왔습니다. 옥 목사님은 불신자들을 향한 영적 관심의 회복을 ‘진정한 부흥’으로 보셨습니다.”
-내년이면 하용조 목사님도 10주기가 되는데요.
“옥 목사님이 동굴을 파시는, 깊이 광맥을 파는 스타일이라면 하 목사님은 백화점을 만드시는, 창조적이고 다양한 스타일입니다. 하 목사님은 모든 것을 다 해봐야 합니다(웃음). 하 목사님이 왕성한 호기심과 창조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다양하게 만드는 분이었다면, 옥 목사님은 깊이 있게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신 분입니다.
저에 대해서도 묻는데, 옥 목사님과 하 목사님의 중간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홍정길 목사님도 독특하신 분입니다. 깊은 예술성이 있고, 눈물과 애국심이 있으면서도 복음에 대해 아주 깊이 천착하는 스타일입니다. 세례 요한 같은, 들의 사람 같은 자유인입니다.”
-홍정길 목사님은 작년 광복절 설교로 화제가 되셨고, 올해 총선을 앞두고 ‘말씀과 순명’ 기도회를 이끌기도 하셨지요.
“홍 목사님은 북한을 사랑하고 구제하는 의미에서 북한 돕기 운동을 했을 따름이지, 북한을 따라가는 분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이나 저나 복음주의자로서 복음을 설교하고 전도하는 일에 궁극적 관심이 있습니다. 저희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유주의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자유와 진정한 신앙의 자유가 지켜지기를 원한다는 관점에서는 저도 홍 목사님에 동의합니다. 작년에는 정부가 지나치게 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 때문에 경고 메시지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설교의 대가’로 불리시는데, 청중 없이 온라인 설교를 해야 하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준비 과정이나 스피치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지금 같은 상황이 기회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청중이 많이 모일 때는 아무래도 청중을 많이 의식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오직 하나님 앞에서 설교할 때 아니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청중을 가슴으로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서 가장 순수하게 설교할 수 있을 때가 지금입니다. 저도 요즘 온라인 부흥회 설교를 몇 편 부탁받아서 홀로 설교를 해 봤습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여러 번 설교를 해봤는데, 나름대로 매력이 있습니다. 저를 더 순수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정말 해야 할 소리를 하게 됩니다.”
-목사님은 주일 설교를 대부분 30분 이내에 끝내시는데, 40-50분 설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설교의 길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주일 설교는 항상 11포인트로 A4 4페이지입니다. 딱 25분, 아무리 길게 해도 30분 이내에 끝납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신앙이 깊은 사람도 있지만, 얕은 사람도 있고 심지어 기독교 진리를 찾아온 구도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설교자가 다가가려면, 너무 긴 설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부흥회나 특별한 설교는 다르지만, 주일 예배는 안 믿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는 시간입니다. 너무 길게 하면 그들에게 부담스럽고, 그들이 설교를 듣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 설교를 30분 이상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 당시 예배에 남성들이 많았습니다. 설교는 30분 내로 마무리짓고, 예배도 정확하게 1시간 내에 끝났기 때문입니다. 여성 성도님들이 남편 데려오기 좋다고 하셨지요(웃음). 더군다나 포스트모던 시대라 청중들이 멀티미디어에 익숙해져 있는데, 단조롭게 들려지는 소리만으로 40분이나 1시간씩 붙잡아 놓는 것은 고문이라고 봅니다.”
-멀티미디어를 말씀하셨는데, 갈수록 영상 시청 길이조차 짧아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예배도 지금처럼 유지될 거라고 보시는지요.
“그렇다고 너무 짧게 설교하는 것도 좀 그렇습니다. ‘15분 설교’에 대한 주장도 있는데, 15분 만에 복음의 진수를 다 전달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25-30분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짧은 것도 반대입니다. 뭐든지 너무 극으로 가는 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전달해야 할 복음은 전달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특히 개신교는 선포되는 케리그마, 메시지 없이는 고유의 특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 여정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과 잘한 것 한 가지씩을 꼽아 주신다면.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하나도 없고, 후회만 많습니다. 많은 후회들이 있습니다. 결국은 시간 관리, 타임 매니지먼트를 잘 하지 못해서 아내와 식구들에게 미안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시간은 그때밖에 없는데, 지나가면 끝 아닙니까. 아빠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후회로 남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거의 처음으로 가정 사역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정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말한 걸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항상 가정 사역에 대한 책에 대해 ‘수정증보판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웃음).”
-목회자 자녀(PK)는 목회자들에게 ‘아픈 손가락’ 같습니다.
“우리 시대 목회자들의 공통적 현상인 것 같습니다. 옥 목사님도 떠나실 무렵, 저희를 만나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 부분을 후회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자녀들을 위한 시간을 내어주지 못한 시대였습니다. 저희가 당시 배웠던 신학이나 목회란, 교회당을 위한 헌신과 희생,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것처럼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가장 커다란 희생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탕자가 돌아온 것이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를 수 있는,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예정을 강조한) ‘칼빈주의자’입니다. 제게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국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 자녀들이 일시적으로 방황할 수 있지만, 결국 다 돌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순교의 각오로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드려야 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성경은 두 가지를 다 가르칩니다. 공적 예배, 무리로서의 예배를 분명히 말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히 10:25)’는 말씀처럼, 공예배의 중요성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공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성경은 그런 공적 예배의 상황이 아닌, 에배의 본질로서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말씀하십니다(롬 12장). 그런 예배는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언젠가 공예배를 회복해야 하지만, 비대면 예배가 예배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예배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루살렘이든 사마리아이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직면하는 비대면 예배도 분명 하나의 예배라고 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그런 비대면 예배를 훈련시키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공예배로 돌아가야지요. 두 가지가 함께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월 중순에는 목회자들이 소모임 금지에도 거세게 반대했는데, 한 달 만에 비대면 예배도 수용하느냐는 말이 나옵니다.
“일관성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는 타이밍의 문제일 뿐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특별합니다. 노멀(normal)이 아니라 뉴 노멀(new normal), 어브노멀(abnormal)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수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의 방법이고, 코로나를 퍼트리는 주범이 돼선 안 되기 때문에 수용하되, 영원히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이밍의 문제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때가 오면 다시 공예배를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기다리면서, 이 시대를 훈련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복음주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수용되는 어떤 라인(line), 선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다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방법에 있어 광화문을 가느냐 안 가느냐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예절도 중요합니다. 사회 속에서 무례한 기독교로 비치는 것도 복음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무례하게 보임으로써 복음의 길을 막는 걸 조심해야 합니다.
동성애를 찬성한다면, 복음주의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적 복음주의자 중에 아주 소수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운동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별로 본 일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주의자라면 성경의 오류 없는 권위를 수용하는 일입니다. 어느 정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동성애를 긍정하기는 굉장히 힘듭니다.
이를 긍정하는 것은, 성경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의 동성애 반대를 빠져나가려는 것입니다.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명확한 동성애 금지 선언이 있습니다. 그것을 왜곡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코로나 때문에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국민들, 나아가 전 세계가 고통과 우울을 겪고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위로와 권면의 말씀을 해 주신다면.
“코로나는 처음이지만,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많은 전염병을 겪어왔습니다. 특히 1885년 한국에 처음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왔을 때도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매우 많았습니다. 선교사 자녀들은 대부분 그런 전염병과 풍토병으로 죽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전염병들이 창궐했을 때, 잘 견디고 인내하면서 이후를 준비하면 반드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평양대부흥도 그런 전염병의 위협 가운데 일어난 것 아닙니까. 이는 한국교회 기초를 놓는 중요한 사건이 됐습니다.
우리가 잘 인내하고 준비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축복이 될 것입니다. 새 시대가 열리고, 정말 부흥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를 불평만 하고 좌절해 버리면, 정말 우리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신앙의 선배들도 다 고난의 시대를 겪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얼마 전까지 너무 좋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고난이 무엇인지 모르는 시대를 한동안 살아 왔습니다. 고난의 가치를 배우면서 고난 이후 정결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부흥의 시대를 준비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럴 때 부지런히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의 한국 교회와 사회를 꿈꾸고 준비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