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예배와 신사참배, 국가와 종교의 관계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코로나 시대의 독서 5] 천황제와 일본 개신교

일본 특유 집단적 사고, 일본 선교에 큰 걸림돌
천황제 모르고 일본 선교? ‘앙꼬 없는 찐빵’ 돼
일본 선교, 성공주의 대신 ‘미련한’ 십자가로만

천황제와 일본 개신교
김산덕 | 새물결플러스 | 222쪽 | 13,000원

코로나 사태 이후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명목으로 한 ‘모임’ 주의보가 내려지고 특히 수도권과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비대면 예배’만 허용되면서, 한국교회의 ‘예배’는 급격한 위기와 전환의 때를 맞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현장 예배 유지를 주장하면서 자주 거론되는 사건이 ‘6.25 전쟁 때도 한국교회는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과 함께, 방역당국의 말대로 현장 예배를 중단하는 것은 ‘제2의 신사참배’라는 내용이다. 차별금지법 통과가 ‘제2의 신사참배’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상황이 어떻든 ‘정부 명령에 의한 조치’라는 점에서, 일제시대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으로 우상숭배가 아니다’는 일제의 위협 섞인 기만책에 굴복했던 과거 치욕의 역사와 비교하는 것이다.

책 <천황제와 일본 개신교>는 그 시대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신사참배’를 강요한 근본 원인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천황제’를 파헤치고 있다. 마침 지난 9월 9일은 1938년 총회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날이다.

일본그리스도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25년간 일본인들을 상대로 목회한 저자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통치하는 체제라는 의미에서 ‘천황제’는 메이지 유신 혁명 주도자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신앙을 강하게 지닌 국가종교 이데올로기”라며 “천황을 존경하는 차원을 넘어 신성시하고 종교적으로 신앙함으로써 국민의 정신과 사상을 통일시키는 통치방식”이라고 정의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탈종교화와 세속화가 일어났지만, 일본에서는 특이하게도 종교와 정치 권력이 제도적으로 합체하면서 ‘신정적 종교국가’를 형성하려 했다.

1부 ‘천황제의 태동과 발전’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천황제가 근대화 과정 속에서 하나의 신앙으로서 ‘천황교’를 국가의 중심으로 삼는 과정을 살펴본다. ‘천황’은 일본 국민들에게 그때도, 지금도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실재하는 ‘신(神)’이다.

메이지 정부는 애니미즘적·조상숭배적 일본의 토속 종교인 ‘신도(神道)’를 국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을마다 신사를 세우고 ‘국가신도’로 체계화했다. 그리고 신도는 황실의 정치와 교육으로서 유신(惟神, 신의 뜻)의 길이기 때문에 종교가 아닌 ‘국가적 제사’라고 주장한다.

이로써 1920년대 들어 신사참배도 종교가 아니라 천황의 신민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고, ‘천황과 그 통치에 충성하고 애국하게 만드는 실천교육’이라고 주장하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신사참배를 겪어야 했던 일본 개신교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당시 신사참배라는 광신적 집단 행동을 거부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만큼 두려운 일이었기에, 대부분 이를 쉽게 드러내지 못했다. 기후현 오오가키시 웨드너 선교사가 세운 ‘미노미션(美濃Mission)’에서 15명이 연행돼 2명이 고문으로 목숨을 잃는 정도의 사건이 있었을 뿐이다.

▲일제 시대 학생들이 신사참배하는 모습. ⓒ크투 DB

▲일제 시대 학생들이 신사참배하는 모습. ⓒ크투 DB

미노미션은 1933년 10월 일본 각 지역 교회를 향해 ‘전국 기독신도에게 고함’이라는 협력 요청문을 발송했지만, 일본 기독교계는 미노미션이 일본 문화와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아냥댔다.

“정부가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고 했으니, 신사참배를 하더라도 죄가 아니다”고 한 것이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습합(習合)’이라는 용어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일본 특유의 집단적 사고에 기인한다. 저자는 “일본 사람들에게 ‘일본적’이라는 형용사는 아주 민감한 뉘앙스를 가진다. ‘당신의 행동은 일본적이지 않다’ 또는 ‘일본인 같지 않다’는 지적을 받으면, 그때부터 일본 사람은 당황하기 시작한다”며 “그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답답하고 무거운 기분과 함께 따돌림(이지메)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훅하고 머리를 관통하는 것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나오듯 ‘후미에(예수상)’를 밟지 않는 한, 일본 땅에서 기독교는 머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선교는 반드시 천황교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일본적 기독교’가 돼야 가능했다. 토착화를 넘어, 변질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 기독교는 1912년 신도와 불교와의 소위 ‘삼교회동’을 통해 국가에 사실상 습합되어도, 1920년대 3차례 개정된 종교법안을 통해 신사참배와 천황제 국가윤리를 강요해도 오히려 환영한다는 황당한 반응을 보이고 만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일본 군국주의가 기독교를 신도와 불교와 같은 하나의 종교로 인정해 주었다면서 감개무량했던 것”이라며 “이로써 교회의 실질은 하나님의 약속에 있고 그 약속을 믿는 믿음에 의해 확보되는 것이지, 국가성이나 민족성에 근거한 약속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색해졌다. 교회는 종교적 신앙을 인간 내면의 문제로 스스로 제한시켜 버림으로써, 외면적 형태와 내먼적 실질이 따로 노는 종교로 전락했다”고 질타했다.

그래서 일본기독교단은 침략적 팽창주의 행위를 서슴치 않는 천황제 국가에서 어용적 국가교회가 되어, ‘황국의 도’를 걸어감으로써 생존의 젖줄기를 찾으려 했고, 식민지 조선 등 같은 ‘대동아공영권’ 기독교인들에게 “황운을 위해 협력해 달라”고 서한을 보내기에 이른다.

저자는 일본의 패전 후에도 일본 기독교가 외면적으로는 천황교를 신봉하면서, 내면화된 기독교라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그 이전의 체질을 계속 이어가고자 했다고 지적한다. 일본 교회는 패전 후 20-30년이 지난 후에야 책임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끝으로 저자는 “천황제를 모르고 일본 선교를 논하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 선교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기에 오히려 천황제와 유일하게 샅바를 잡고 겨룰 수 있는 것이 바로 교회”라며 “한국교회가 일본 선교에 접근하고자 할 때, 이 일은 십자가의 도라는 ‘미련한 것’이 돼야 한다. 성공지향적 선교주의는 값싼 복음을 파는 약장수일 뿐”이라고 제언한다.

읽다 보면 우리나라보다 먼저 복음이 전파된 일본 땅에, 유독 복음이 뿌리내려 꽃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다. 더불어 오늘날 전염병 사태로 일어나고 있는 국가의 종교 통제 움직임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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