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수가 성 여인, 사도행전 스데반 설교 등 인용
예배의 공간이 여기나 저기냐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참된 예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이재철 목사(100주년기념교회 전 목사)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 설교 등으로 성경적 해석도 시도했다.
그는 최근 공개된 CBS 유튜브 ‘잘 믿고 잘 사는 법’에서 “현재의 교회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슨 기회, 무엇을 위한 기회, 무엇을 향한 기회인지 구명돼야 한다”며 “그것은 현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성경적 관찰, 집중, 해석이 선행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먼저 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 땅 수가성 우물 곁에서 만난 여인과의 대화에 대해 “그 여인은 다섯 번 결혼했는데 다섯 번 실패하고, 지금도 어떤 남자와 동거하는데 그 남자는 남편이 아니었다”며 “그러니까 다섯 번 결혼에 실패하고 어떤 남편이 아닌 남자에게 얹혀산다면, 2천년 전 당시 도덕 윤리 상황에서는 인간 이하의 여자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다. 사마리아인이었던 그 여자는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을 만나뵙고 처음에는 빈정거리며 이야기한다”며 “그런데 대화 중 예수님이 예사로운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질문을 털어놓는다”고 전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사마리아에 있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는데, 당신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한다. 어디서 예배드리는 것이 진짜인가?”
그는 “자신의 기구한 처지를,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싶은 동기로 삼았던 여자였다”며 “그런데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리심 산 예배가 진짜인가, 예루살렘 예배가 진짜인가?’ 하는 말들이 나오니, 참된 예배를 드리고 싶었던 여인이 마음 속에 품고 있다가 그 질문을 내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이재철 목사는 “예수님 첫 대답이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고 하신다. 지금부터 당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내가 하는 이야기가 당신이 그 동안 지니고 있던 상식, 그 동안 갖고 있던 보편적 인식과 동떨어진 인식이라 할지라도 곧이곧대로 믿으라는 것”이라며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에게 예배드릴 때가 이르리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특정 공간의 예배가 진짜인가?’라는 것이다. 주님은 ‘특정 공간을 절대화하는 예배는 아버지한테 드리는 예배가 아니며, 지금까지 너희들은 아버지에게 예배드린 적이 없다. 이제 너희들이 아버지에게 예배를 드릴 때가 이를 것이다. 아버지에게 참되게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는 “공간이 여기나 저기냐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를 참되게 드리는 건 예배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그런 때가 없었다. 지금이 비로소 그때다. 바로 인간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예배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하시면서 유명한 말씀을 남기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하는가?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특정 공간에 갇혀 계시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특정 공간에 예속되는 한, 그 영에게 예배드릴 수 없다”며 “영이신 하나님께는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걸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온 영혼을 다해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 우리의 영과 온 중심을 다해야, 특정 공간에 갇히시지 않고 시공을 초월하시는 바로 그 분에게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철 목사는 “주님의 이 말씀의 의미를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인 스데반이 알아들었다. 그래서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 신성모독,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고 고발당한 것”이라며 “스데반이 자기 변증을 한 설교 내용이 사도행전 7장이다. 그 긴 내용을 압축하면,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갇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의 수가성 말씀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설교였고, 그 변증 이후 돌에 맞아 죽었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당시 모든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곧 하나님이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사람은 솔로몬으로,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성전을 짓고 나서도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솔로몬이 그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예배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땅 위에 거하시겠는가? 하늘의 하늘도 하나님을 온전히 모실 수 없는데, 어떻게 손으로 지은 이 집에 계시겠는가? 그러나 내 백성이 성전을 향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계신 곳, 하늘에서 응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드렸다”고 전했다.
또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지만,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이 갇혀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통로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께서 하늘에서 응답해 주십시오.’라고 했다”며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그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시기를 ‘내가 거기에 내 이름과 내 마음과 내 눈길을 두리라’고 하셨다. 성전 안에서 살겠다는 게 아니라, 너희들과 소통하면서 동행하겠다고 하셨다”고 강조했다.
이재철 목사는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면서,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이 돼 버렸다. 특정 공간이 우상화됐다. 그 공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으로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거룩한 곳이 아니라, 그 자체가 거룩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 거룩한 것이 돼 버렸다”며 “결국 시공을 초월하신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종교 행위를 하면서도 그 행위가 곧 하나님을 위한 예배였던 것처럼 사람들이 착각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종교적 상업 행위가 횡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그래서 이미 주전 7세기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대인들이 하나님 그 자체로 생각하는 그 성전 문 앞에 서서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선포한다”며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계속 그 성전을 하나님으로 대체했을 때, 그 성전은 바벨론 침공으로 주전 586년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들이 그토록 신성시하던 성전, 그 성전에만 들어가면 하나님과 만난다고 착각하던 그 성전이 훼파되고 이방 객지로 포로로 끌려가서야, 비로소 말씀을 통해 영이신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드릴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포로기가 끝나고 유대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다시 성전을 건축한다. 그 때는 성전 없이 말씀을 통해 영이신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드리던 그 심정으로 성전을 통로로 만들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또 다시 성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해 버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죽하면 그 성전을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셨겠는가”라고 개탄했다.
그는 “그 성전이 다시 하나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스데반이 사람이 손으로 지은 이 집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설교했다가 신성모독죄로 돌에 맞아 죽었다”며 “그러나 유대인들이 절대화했던 그 특정 공간, 특정 건물 역시 주후 70년 로마 제국 티투스 장군에 의해 돌 하나 남지 않고 초토화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재철 목사는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가?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보면, 로마가톨릭을 포함해 개신교까지 끊임없이 건물을 지었다”며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오스만 터키에 함락당해 이스탄불이 된다. 그전까지 콘스탄티노플이 있던 지금의 터키는 신약 성경의 보고였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다니던 도시들이 다 거기 있다.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성당을 지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 목사는 “1453년부터 오스만 터키가 지배하면서, 오늘날 그 땅에는 심혈을 기울여 지었던 성당들은 다 쇠퇴하거나 없어지고 폐허가 되거나 기둥만 남았다”며 “그래서 터키를 여행해 보면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집을 세우는 인간들, 그리고 끊임없이 그것을 허무는 하나님’”이라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