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설교연구원 설교] 기회는 잡는 자의 것이다
본문: 마가복음 10장 46-52절
기회는 붙잡아야 한다
그리스 시라쿠사 거리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고 합니다.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 동상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립니다. 앞머리에는 머리숱이 무성한데 뒷머리는 대머리이고 발에는 날개가 있고 손에는 저울이 놓여 있는, 이상하고 우스꽝스런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아래 글을 보고는 사람들이 많은 ‘감명’을 받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고 합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손에 저울이 있는 것은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함이다. 그의 이름은 기회이다.”
이 동상은 기회에 대해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정말 기회를 잡는 것은 쉽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합니다. 사라진 후에 잡으려고 하면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좋은 기회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좋은 기회를 잡지만, 어떤 사람은 그 좋은 기회를 잡지 못합니다. 좋은 기회를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 기회가 나의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그래서 먼저는 기회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붙잡는 것입니다. 기회는 붙잡아야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회가 많이 와도 내가 붙잡지 않으면 기회는 나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예수님께 소리 지르는 바디매오
예수님께서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막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찰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 때 시각장애인이면서 거지인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사람들의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원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청각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까?
바디매오의 귀에 수많은 이야기가 들렸지만 바디매오의 귀를 사로잡은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그 한 마디는 ‘나사렛 예수’라는 말이었습니다. 곧 나사렛 예수가 지금 이 곳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이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를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는 지금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도 모릅니다. 단지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이야기만을 듣고, 소리부터 지르고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그 순간이 자신들에게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만나주시기만 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회를 잡은 바디매오
가만히 길가에 앉아 있던 시각장애인 바디매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니까, 옆에 있는 무리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를 향해 꾸짖으면서 “조용하라”고 합니다.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왜 이들이 바디매오를 꾸짖는 것일까요? 시각장애인이면서 거지는 너 같은 사람은 주님을 만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쁜 예수님께서 너 같은 사람은 만나 줄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이번에는 목이 터져라 더 크게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디매오는 지금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면 다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잡기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주님은 그 소리를 들으시고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바디매오를 눈 뜨게 해주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기회를 붙잡아 치유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기회를 붙잡는 것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만일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그 순간 부르지 않았다면, 남들이 꾸짖는 다고 이 기회를 포기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거지로 평생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기회를 잡았을 때, 그는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면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듯 기회는 붙잡아야 내 것이 됩니다. 여리고에 살고 있던 시각장애인이 어찌 바디매오 한 사람 뿐이었겠습니까? 그 많은 시작장애인 중에 유일하게 여리고에서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된 사람은 바디매오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기회를 놓친 아간과 가룟 유다
성경에 보면 바디매오와는 대조적으로 기회를 놓쳐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여리고성은 가나안 땅의 첫 열매이기에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간은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금 오십 세겔을 몰래 숨겨놓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쉽게 물리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아이성에서 패배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했다고 책망하시면서 그 죄를 제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죄 지은 사람을 찾아내고자 제비뽑기를 하였고 아간이 뽑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직접 죄지은 사람이 아간임을 지적해 주셨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비를 뽑게 하셨습니다. 제비뽑기를 왜 하는지, 여호수아는 충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명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먼저 유다 지파가 뽑혔습니다. 아간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유다 족속 가운데 세라족속이 뽑혔습니다. 그 때도 아간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삽디의 가족이 뽑혔습니다. 아간의 가족이 뽑혔습니다. 그래도 아간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간을 설마 했을 것입니다. 결국 아간이 뽑혔습니다. 아간은 이 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간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다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제비를 뽑으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게서 아간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어쩌면 마지막 제비를 뽑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셨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마저도 놓치고 맙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 역시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그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는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 잡아야 합니다. 잡아야 내 것이 됩니다. 기회를 잡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기회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기회는 잡는 것은 낚시를 하는 것과 같다
기회를 잡는 것은 마치 낚시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낚시를 참 좋아했습니다. 낚시 전문가는 아니지만, 고기 잡는 손맛이 좋아서 가끔씩 낚시를 하곤 했습니다.
낚시를 하려면 찌가 필요합니다. 찌는 물고기가 미끼를 먹고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 볼 수 없으니, 물 밖으로 나와 있는 찌를 보고 판단합니다.
물고기가 입질할 때 보면 아무런 생각 없이 한 번에 미끼를 확 물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조금 조금 입맛을 봅니다. 그러다 미끼를 무는데, 그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그것을 ‘채임질’이라고 하는데, 채임질을 잘하는 사람이 낚시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고기가 입질을 할 때 채임질을 제대로 못하면 고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기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채임질을 잘해야 하는데 기회가 와도 채임질을 잘하지 못하면 기회를 잡을 수 없습니다.
작은 기회를 무시하지 마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 향해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기회를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인생 가운데 3번의 기회가 온다”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3번의 기회란, 인생 가운데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3번의 기회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많은 기회들을 준비해 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회들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큰 변화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나의 인생이 더 나아지는 작은 기회들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작은 기회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작은 기회들을 무시하면 결국 큰 기회도 잡을 수 없습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하라
기회는 붙잡아야 내 것이 되는데, 그냥 있는다고 해서 우리가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기회가 언제 우리에게 주어질지 모르게 때문에,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대충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올인’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다면 기회는 찾아오게 됩니다.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지만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준비된 사람은 기회를 잡습니다.
바디매오는 비록 거지에 시각장애인이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리만 들리면 무조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겠다는 준비입니다. 그 준비가 있었기에, 그는 나사렛 예수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란 말은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나사로는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구원자를 의미합니다. 바디매오는 이미 믿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앞에 가기만 앞을 볼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이런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준비된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무대의 위의 독재자’로 불리며 20세기 전반 세계 최고의 지휘자로 평가받은 사람이 바로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입니다. 그는 지휘자로도 뛰어났지만, 오페라 자체를 혁신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토스카니니가 활동하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오페라 공연 중 관객들이 오페라 가수에게 앵콜을 외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공연에 방해가 된다면서 금지시켰습니다. 공연이 시작된 후에는 관객들의 입장을 금지했습니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 오페라 극장을 현대적 모습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원래 토스카니니는 유명한 첼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탓에,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음악적 재능 덕분에 아홉 살 때 파르마 왕립 음악원에 입학해서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는데, 이외에 다른 음악교육은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근시가 심해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주를 하기 전에 악보를 모두 외웠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때는 본인 파트 외에 30개가 넘는 악기들의 파트 악보도 몽땅 외웠습니다.
이처럼 남들보다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이것이 그의 음악에 반영되어 정확한 리듬과 박자, 한 치의 과장도 없는 표정, 엄격한 음악의 법칙에 따라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열아홉 살에 파르마 음악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연극이나 음악 공연으로 돈을 버는 클라우디오 롯시라는 흥행사가 조직한 오케스트라에서 첼리스트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공연을 위해 브라질로 향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휘자가 공연 직전 주최 측과 다투고 떠나버린 것입니다.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시대였으면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지휘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게다가 불러온다 해도 3시간 30분짜리 오페라를 연습 없이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표값을 환불하고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 때 오케스트라 단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단원 중 악보를 다 외우는 토스카니니란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에 연습을 같이한 그가 앞에서 이끌어주고 단원들이 집중해서 한다면 연주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관계자는 지금 당장 대안이 없었기에 한 번 모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결국 지휘 경험이 전혀 없던 열아홉 살 짜리 토스가니니가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어리고 무명인 그가 지휘자의 자리에 올라오자 관객들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토스카니니는 야유에도 굴하지 않고 지휘대에 올라서서 제일 먼저 악보를 덮어버렸습니다. 야유를 보내던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해서 웅성거렸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암기해 둔 악보들을 떠올리며 거침없이 지휘를 했습니다. 청중들은 그의 지휘 실력에 압도되어 전체 4막 중 1막이 끝났을 뿐인데 모두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지휘자는 직접적으로 악기를 다루지는 않지만 여러 악기와 사람들을 하나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악기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감각을 익혀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휘자로 데뷔하는데 나이 제한은 없지만, 서른 살에 데뷔를 해도 굉장한 이슈가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휘 경험이 전혀 없던 토스카니니가 열아홉 살에 단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3시간 30분짜리 공연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이는 곧 세계적인 뉴스가 됐습니다. 이후 그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라 스칼라 오페라단 상임지휘자와 뉴욕 피하모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활동했습니다.
미국 NBC 방송국에서는 그를 위한 오케스트라를 조직해서 헌정했는데 바로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입니다. 어느 한 지휘자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심지어 그가 은퇴한 후에는 ‘토스카니니 없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스스로 해체했다고 합니다.
토스카니니는 자신의 약점으로 인해 오히려 악보를 통째로 암기하였고 그 준비로 인해 그는 유명한 지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준비된 자가에는 기회가 오기 마련입니다.
김난도 교수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회란 ‘준비’의 동의어입니다. 준비 없는 상태로 맞은 기회는 허망하게 날려버리기 십상이고 찾아왔는지도 모른 채 그냥 흘려보내기 마련입니다. 차근차근 준비를 마쳤을 때에만 작은 기회를 잡아 크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평소에 준비해야 합니다. 평소에 실력을 키우고 나를 가꾸어야 합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도전해야 한다
둘째,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하지 않고는 기회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때론 준비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디매오를 보십시오. 도전하지 않습니까? 바디매오가 소리를 지르니까,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 정도 되면 보통 사람 같은 욕 먹기 싫어서 조용히 합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더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시고, 드디어 바디매오를 오라고 하십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예수님이 가시는 것이 오히려 맞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을 시켜서 그를 불러 오라고 하십니다.
바디매오는 사람이 와서 예수님이 너를 부르신다고 하니까 겉옷을 던지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뛰어가고 있습니다. 도전하고 있습니다. 장애물이 있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을 뛰어넘어 도전하는 바디매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도전하는 오드리 헵번
영화 <로마의 휴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오드리 헵번이 있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연기할 수 없을 때 연기 제의를 받았다. 내가 노래할 수 없을 때 ‘화니 페이스’를 부르라는 제의를 받았다. 내가 춤출 수 없을 때 프레드 아스테르와 춤추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밖에 내가 준비되지 않았던 모든 종류의 것들을 제의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그것을 해내려고 노력했다.”
오드리 헵번은 한 마디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이 자신에게 맡겨졌을 때 도전했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내기 위해 도전했고, 이루어 냈습니다.
도전하지 않는 인생은 성취할 수 없습니다. 도전하지 않는 인생은 기회를 잡을 수 없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회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라. 좋은 기회는 위대한 재산이며, 때로는 한 번 뿐일 수도 있다. 기회는 바로 옆에 있는 것이며, 기회를 포착하는 것은 지혜다. 만일 기회가 없다면 만들면 된다.”
기회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옆에 있습니다. 그 기회를 잘 붙잡아야 합니다. 기회를 붙잡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도전해야 합니다. 또한 기회를 내가 만들면 됩니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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