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박사 기독문학세계] 교양 회복만이 개혁에 기여하는 길
가정에 뿌리를 두고 세상과 소통하는 인물들 통해,
개인이 어떻게 사회개혁 이바지하는지 보여준 소설
문학과 자연에서 신의 리듬 배우고 힘과 미 되찾아
전 인류가 문명의 대변혁기를 겪었던 2020년이었다. 아름다운 땅 호주는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산불로 십억 마리 이상의 동물을 잃었고 19만㎢의 땅이 타버렸다.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지면서 불이 붙은 전 세계 인종차별 반대 시위,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로 인한 대대적인 민주화 시위,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후보자 바이든 당선자의 승리 선언, 그리고 개인의 삶의 스타일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한 해를 뒤흔들었던 이 거대한 사건 속에서 참으로 미미한 것 같은 각 개인의 한 해는 무엇이었나. 새해를 맞으며 자신에게 묻고 있다.
생각해 보면 지난 나의 한 해는 전광훈 목사가 이끈 2019년 10월 9일 광화문 집회와 관계가 깊다. 그날 광화문 집회는 이른바 시민 혁명이었다.
내가 이 집회를 시민 혁명이라 이름하는 것은 세계사적 의미에서다. 다시 말하면 1848년 혁명(Revolutions of 1848), 또는 국민국가들의 봄(Spring of Nations)이라 일컫는 프랑스 2월 혁명을 비롯하여 빈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와 전 유럽적인 반항운동과 같다는 개인적 생각에서다.
집회의 목적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대로 자유와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것이며, 그 방법으로 문재인 정권 타도를 외치고 조국 법무부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였다.
집회 참석자는 언론 추산(영남일보 등) 천만명이었다. 나는 광화문으로 직접 나가지는 못하였지만, 집회 목적에 찬동하였으므로 많은 후원금을 보내 응원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집회는 겨울 내내 이어졌고, 나는 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서리가 오고 얼음이 얼고 눈이 와도,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들은 차가운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밤을 새우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대한민국을 공산화로부터 막아 달라고 울부짖었다.
친한 친구들도 태극기를 들고 나섰다. 대구에서부터 비행기와 열차로, 또 주최 측에서 대절해 준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외국에 머무르고 있는 나에게 실시간으로 집회 광경을 전송해 주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그 겨울 내내 함께 기도하고 행진하고 노래를 불렀다.
2020년 2월 우한 폐렴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직전에 나는 귀국하였다. 삼일절 기념 광화문 집회가 예고된 때였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였으므로, 결국 집회 참석을 포기하였다.
힘들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의 횃불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 같았고 개개인은 ‘어이없음’ 같은 일종의 낭패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도 어이없음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정치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광화문 시민 혁명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의 합리성과 공약의 진정성, 인간 문재인의 정직성에 대해 조목조목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직접 챙긴 코로나 백신, 모더나와의 합의 사항을 밝혔을 때도 나는 청와대 발표를 믿기 전에 먼저 모더나의 공식 발표, Press Release, Forward Looking Statement를 찾아보았다.
이런 불편한 관심 속에서 나는 2021년을 만났다. 많이 미안하고 좀 우울해서, 하루는 차를 몰고 산자락을 돌다 낮은 숲 언덕에서 한참 머물렀다. 눈발이 날렸다. 구름은 마치 은색의 지평선 위를 떠 다니는 깃털 같았다.
순간 갑자기 아달베르트 슈티프터(Adalbert Stifter, 1805-1868)의 장편 소설 <늦여름>이 생각났다. 괴테의 전통을 계승한 독특한 사실주의 문학 대가인 스티프터는 앞서 말한 국민국가들의 봄(Spring of Nations)이라 일컫는 독일 시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진정한 개혁이란 인간 개개인이 교양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인생의 ‘한여름’을 보내는 청년 하인리히 드렌도르프와 인생의 ‘늦여름’을 맞이한 노년 리자흐 남작의 이야기로 자신이 꿈꾸는 이상 세계와 전인적인 인간상을 제시한다.
이 작품의 두 가지 독특성은 교양을 쌓는 것이 자기 성장을 의미한다는 것과, 성장의 과정이 ‘가정, 즉 집’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스티프터는 가정에 뿌리를 두고 세상과 소통하는 인물들을 통해, 개인이 어떻게 사회 개혁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늦여름>에 대한 기억은 눈발 날리는 회색의 언덕 위로 비쳐오는 빛 한 줄기와 같았다. 정신은 고양되고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스티프터는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자연의 섭리와 개인의 교양 (성장)을 동일선상에서 묘사하여, 사회 개혁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으로 일체가 되어 흘러가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겨울 풍경이 어찌 이리 아름다울까. 2021년 새해의 이 시간, 나는 여전히 문학과 자연에서 신의 리듬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힘과 미를 되찾을 수 있음을 고마워한다.
송영옥 박사
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