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레 선교칼럼 3]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
포스트모던, 개인과 합리성, 효율성 반발 아닌
인간성 말살 시스템과 이기주의에 대한 반발
인간성과 개성, 행복 존중하라는 간절한 호소
인생 참 행복과 진리 찾아 떠나는 찰리 채플린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찾아 떠나는 길?
교회, 이들 위해 다시 소금과 빛 되어야 할 때
영국 런던의 거리를 걷다가 얼굴 볼에 별모양 문신을 새기고 귀와 코와 입술에 피어싱을 하고 분홍색 펑크파마머리를 머리부터 무릎까지 길게 늘어뜨린 채 가죽 자켓을 입고 오토바이에 걸처 앉아 있는 청춘남녀를 본 적이 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우리나라 길거리에서도 코에 피어싱을 하고 빨강색 짧은 머리를 한 청년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외모를 꾸민 청년이 교회 예배시간에 나타나자, 안내위원들이 나서서 ‘이런 청년들을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교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고 담임목사님께 건의를 했다고 한다.
교회는 그냥 두고보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그 청년은 교회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가 그들에게 가서 예수께로 인도하지는 못할망정, 교회에 오는 친구들은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친구들은 앞으로 더 많이 교회에 올 수도 있고, 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접근하려면 그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포스트모던이 무엇이고 왜 발생했으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해 보자. 그러면 교회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을 향해 무엇을 줄이고 강조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포스트모던(Post-Modern)이란 후기 이성주의라는 말로, 전기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운동이다. 그런데 반발이라 해서 이성주의에 대한 모든 면들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 문명은 종교권력의 반발로 일어난 계몽주의의 기둥인 개인과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개인의 의견이 합리적이고 사회 전반에 효과를 주는 것이면 누구의 의견이든지 존중되었고 사회에 실현되었다.
그런데 계몽주의가 발달하자 과학주의가 탄생했고 이어서 산업혁명이 발생하면서, 산업의 효과적인 생산을 위해 사람은 산업공장 시스템인 컨베이어 벨트와 함께 소모품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사람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면 일할수록 컨베이어 벨트를 조이는 뺀찌나 몽끼와 같은 생산시스템의 도구나 소모품일 뿐 인간의 인격이나 개성과 자율성은 말살되고 말았다. 이를 잘 나타내주는 영화가 바로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이다.
‘찰리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에서 멋진 양복을 입고 인생은 소풍이라는 의미로 모자를 쓰고, 나그네라는 의미로 지팡이를 들고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에게 일을 하라고 하지만, ‘찰리 채플린’은 일을 하지 않고 깔끔한 정장에 지팡이를 들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길을 떠난다.
한 번은 찰리가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시키는 대로 일을 했더니 결국엔 온 몸이 고장나서 전신을 붕대에 감은 채 들것에 실려, 입원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찰리는 미국 디트로이트 주의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심한 노동으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는 신문보도를 읽고, 아이디어를 착안해서 코믹 무성영화로 표현했다고 한다.
포스트모던은 개인과 합리성과 효율성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형식적인 시스템과 사람을 산업 도구로만 여기고 자본을 취하려는 이기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동시에 사람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성과 각 사람의 개성과 행복을 존중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이다. 이 호소가 참 인생의 행복과 진리를 찾아 떠나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이요, 어쩌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찾아 떠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교회가 이들에게 규격화된 형식적인 시스템은 가능한 제거하고, 좀 더 각 사람과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교제와 가장 관심이 많은 꿈과 꿈을 이루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와 자기 은사에 따라 섬길 수 있는 사역의 현장을 제공한다면 교회는 다시 한 번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해답은 자신이 소모품처럼 쓰임받고 취급되는 것이 싫어서 뛰쳐나온 영혼들이 소중히 존중받고 자기 인생의 목적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자아 실현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족과 학교와 직장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선교적 교회에게 있다.
장찬익 선교사
아일레 선교회 대표
광주중앙교회 협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