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신앙과 과학 48] 과학적 사고와 신앙적 사고
의심하면, 성경적 입장에 마음 전환되지 않는 경험
1. 객관적 사고: 신앙의 영역에서는 적용되지 않아
2. 합리적 사고: ‘합리’ 개념 왜곡… 영계와 종합을
3. 분석적 사고: 인격 포함 종합적 가치 판단 힘들어
철저한 무신론자로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영의 눈을 뜨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진화론과 무신론 등과 같은 논리보다 왜곡된 사고의 틀(프레임)이 신앙심에 더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진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반기독교적인 논리보다도 신앙심에 더 어려움을 준다는 뜻이다.
필자는 과학자로서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진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지만, 나도 모르게 과학적 사고방식을 영적 세계에 적용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나와 같은 실수를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간략히 소개하겠다.
첫째,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객관적 사고’가 있다. 진리 여부를 판단할 때, 판단하는 주체가 어느 쪽의 입장에 속하지 말고, 양쪽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른 생각하면 당연히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객관적 사고를 신앙의 영역에 적용하면, 문제가 생긴다.
필자의 경우를 소개하면, 성경 말씀을 읽다 의심이 들 때 성경 말씀이 맞는지 의심이 맞는지를 소위 객관적 사고로 판단하려 했다. 은혜 충만한 상태에 있다가 의심이 들면, 일부러 의심의 입장에서 한참 생각하고, 성경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심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성경의 입장으로 마음의 전환이 되지 않았다. 의심을 묵상한 후에는 그 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계속 의심이 드는 것이었다.
양쪽 입장에서 묵상한 뒤 성경의 입장이 더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는데, 오히려 의심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영적 혼돈 상태에서 힘들어하다, 다른 계기를 통해 가까스로 벗어나곤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는, 제 자신이 의심과 성경 사이를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즉 신앙의 영역에는 소위 객관적 사고가 적용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적으로 연약한 존재이며, 판단자의 위치에서 하나님과 사단 중, 어느 쪽이 맞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유를 해 보겠다. 어린아이가 집 밖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지금 너와 같이 사는 사람은 네 아버지가 아니야’란 말을 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어린아이의 지혜로는 낯선 사람의 말이 맞는지, 이제까지 함께 살았던 아버지의 말이 맞는지를 분별할 수 없다. 낯선 사람의 말을 들을수록 진짜 같고, 아버지가 의심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러기에 객관적인 자세로 두 사람의 말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낯선 사람의 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기에 어린아이가 취해야 할 바른 태도는 혼자서 어느 쪽이 맞는지를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아버지께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낯선 사람이 한 말을 아버지께 하면서, 아버지가 진짜인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진짜라면, 어린아이를 위해 친절하게 아버지임을 밝히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설명해 줄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가진 후, 의심이 들면 즉각 “이러한 의심이 생겼는데, 이 의심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기도가 끝나기 전에 의심을 이길 수 있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의심을 이기는 지혜가 떠올랐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짜 영의 세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의지하면,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충분한 증거를 주신다.
우리가 무조건 맹신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맞고 영의 세계가 있음을 실제 삶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다. 단지 믿음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고 증거를 가질 수 있기에, 선제적인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둘째,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합리적 사고’가 있다. 보편타당한 개념을 사용해서 논리적인 비약 없이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합리적인 개념으로 과학적인 것만을 받아들이고, 영적인 개념들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호르몬, 두뇌 등으로 설명하면 금방 받아들이는데, 하나님, 영혼, 사랑 등으로 설명하면 왠지 이해가 되지 않고 무언가 확실하지 않을 것으로 들린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적 개념만이 합리적인 것으로 세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신앙생활의 초창기에 영적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마음에서 합리적이지 않다고 거부하곤 했다. ‘합리’라는 개념 자체가 왜곡됐기 때문이며, 영계와 자연계를 종합하는 진정한 ‘합리’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분석적 사고’가 있다. 거시적 현상을 미시적인 구성물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거시적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열쇠는 미시적 세계에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적 사고는 전체를 분해해서 미시적 구성물의 단순한 조합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종합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기에 분석적 사고는 현상의 전체를 총괄하는 지휘자가 있는 경우에는 맞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는 하나님, 인간 등에 의한 인격적 활동으로 이루어지기에, 총괄 지휘자가 있는 경우로서 분석적 사고를 적용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과학적 사고는 인간 마음대로 조작이 가능한 하위 세계, 즉 물질계에는 적용 가능하지만, 하나님, 사단 등과 같은 상위 세계에는 적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 세계를 조작할 수 없으며, 오히려 연약한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길원평 박사
부산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동반연)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