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만이, 내가 몰두하는 삶의 유일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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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옥 박사 기독문학세계] 예수의 수난, 그리스도의 열정

3-4월이면 생각나는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수난 아닌 열정, 십자가 장면에서 받은 충격 때문
회초리로 시작했다 쇠도리깨에 가까운 채찍 고난

▲영화 &lt;패션 오브 크라이스트&gt; 중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중 한 장면. ⓒ영화사 제공

The Passion of The Christ

절기를 따라 생각나는 문학 작품과 영화가 있다. 마치 24절기처럼 사소한 일상과 문학의 작품들이 다정하고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5월이 되면 늘 생떽쥐베리(Antoine de Saint-Expery, 1900-1944)의 <어린 왕자>가 생각난다. 가을이 올 때엔 고독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를 생각하고, 10년 고투 끝에 완성한 그의 시 <두이노의 비가(1912-1922)>를 떠올린다.

한 해가 다 가려고 하면 <킬리만자로의 눈>을 생각한다. 눈 덮힌 킬리만자로의 서쪽 정상 누가예 누가이(하나님의 집)에 얼어붙은 표범은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어린 왕자 속에는 여전히 가슴 뛰는 열정과 온화함과 따뜻함이 있다.< 두이노의 비가>에는 생에 대한 집요한 열광과 관조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린 실존적 고독이 있고, <킬리만자로의 눈>은 죽음에 대한 탐구가 보석처럼 빛이 난다.

한 작가의 극기와 용기와 절제가 돋보이고 쓰라림과 눈물이 내 가슴에 고스란히 닿는다.

아마 문학의 이 추억들은 내가 그 당시 책을 읽으면서 작품 세계에 대한 내적 아름다움으로 불타올랐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나는 경탄하는 심정으로 그 세계를 사랑했고 그 세계에 다가가고자 하였으며, 작품 속에 내재하는 위대한 미지의 것을 동경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 정신이 나에게 새로운 꿈을 안겨줌으로써, 일찍이 역사에 없었던 위대함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고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었다. 이모든 것은 전적으로 문학에 대한 내 열정의 산물이었다.

‘열정’은 ‘Ardor(내 안에 신이 있다)’라는 희랍어에서 유래했다. 어쩌면 열정이란 어떤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항상 존재하는 사랑의 에너지이고,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신들린 상태를 일컫는지도 모른다.

올해는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 모르는 사이 사순절이 시작 되었다. 나의 문학적 일상처럼 해마다 3월이 되고 부활절이 되는 4월에는 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가 생각난다.

멜 깁슨 감독이 연출했고 2004년 개봉했던 영화, 예수 십자가형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그려 낸 영화이다. 《The Passion of the Christ》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의미하는 관용구이며, ‘The Passion’처럼 대문자로 쓸 경우 이 자체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뜻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항상 <그리스도의 열정(熱情)>이라고 번역하기를 더 좋아한다. 열정이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다.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을 쓰는 행위이다.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희생을 감수하며 혼신의 힘을 다 하는 행위, 그것이 열정이다.

필자가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그리스도의 열정’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고문과 십자가의 못박힘’ 장면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를 고문하는 방법으로 피와 살이 튀게 하는 잔인한 채찍 방법을 택한다.

처음에는 회초리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쇠도리깨에 가까운 채찍이 등짝을 휘감고, 피와 살점은 사방팔방에 날아다닌다. 옆구리에 박혔다가 살점과 함께 날아가는, 잔혹하기 이를데없는 채찍질이다.

결국 예수가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되었으므로 고문은 끝나고, 병사들은 예수의 팔을 잡고 질질 끌면서 형장을 벗어난다.

지금도 차마 말하기 힘들지만 십자가에 못 박는 장면, … 왼손을 못 박은 뒤 오른손을 못 박으려 하는데 손이 못 구멍에 닿지 않자, 밧줄로 오른손을 묶어 어깨가 탈골되도록 잡아당기는 장면이다.

예수는 왜 이렇게 극악한 고문과 참혹한 십자가형에 자신을 내어놓았을까. 나는 지금도 상상을 불허할 고뇌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의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나 이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숨을 고르고 정신을 집중하고 세포 하나하나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가. 관념이 아닌 그의 실체적 사랑 앞에서 나는 지금도 숨이 멎는다.

올해 사순절에도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떠올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문학에서 그러하듯 그리스도의 사랑의 열정에 내가 아름다움으로 불타오르고 있는가. 경탄하는 심정으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다가가고자 하는가.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이렇게 시작된다.

킬리만자로의 서쪽 정상 가까이에는 미라의 상태로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있다. “그런 높은 곳에서 그 표범이 무얼 찾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이처럼 작가의 존재 기반에는 항상 죽음에 대한 의식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답도 주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스도의 열정을 통해 이 물음에 나는 답을 할 수 있을까.

때때로 불안하고 때때로 두렵지만, 이것이 나의 고백이다. “그리스도만이 내가 몰두하는 삶의 유일한 기준이며, 나에게 의미가 있는 유일한 긍정성입니다. ”

송영옥 박사
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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