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추구하는 ‘교회다운 교회’ 회복 강조하는 신호섭 목사 (上)
신호섭 목사가 진단한 한국교회만의 폐단
1. 체면과 위신 지나치게 중요시, 성장주의로 연결
2. 목사·장로, 영혼 돌보기보다 수익과 성장에 열심
3. 담임목사 맹목적 추종하는 성도들 ‘부스터’ 역할
“교회는 평생 다니는 곳 아닙니까? 우리에게 교회는 너무 친숙하고 당연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교회가 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교회의 정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며, 목사·장로·집사 같은 직분자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잘 해 왔는지 말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활동이나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 성경적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번 기회에 그것을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교회다운 교회> 저자 신호섭 목사는 교회를 성경적으로 고쳐 나가자는 취지에서, 다소 신랄한 이야기들도 책에 조금 담았다고 한다. 나름 절제했지만, 실제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전달하려 했다는 것.
다음은 코로나 시대의 예배에 대한 전편에 이어, ‘교회다운 교회’를 위해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한 내용이다.
-유학 시절 미국과 영국 교회를 경험하셨는데, ‘교회다운 교회’에서 벗어난 ‘한국교회’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너무 많습니다. 이는 국민성과도 연관돼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지나치게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목사, 교회적으로는 공동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지나치게 의식합니다. 그래서 커져야 하고, 세력을 키워야 하고,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곧 교회성장주의, 체면과 허례허식으로 연결됩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목회 잘 하던 분들이, 한국 몇천 명 규모 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오면 떠납니다. 위임을 받았으면 평생 그 교회에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목회자들조차 명예와 위신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고, 기복적 교회성장주의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를 포함한 어떤 목회자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물론 저는 이 올곧은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대형교회에서 시무한다면, 사역 자체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 로망을 많은 목회자들이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폐단이고,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내부, 특히 당회의 문제입니다. 목사와 장로는 예배와 성례를 집례할 뿐 아니라, 성도들의 영혼을 감독하고 심방하고 돌아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회가 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조직을 관리하고 수익 창출을 위해 여러 위원회를 만들어, 교회를 좀 더 성장·확장시키려는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당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본질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회사 이사회처럼 기능하고 있을까요? 당회가 상당 부분 이사회 기능 내지 착한 일, 세상 사람들 보기에 좋은 봉사활동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2번째 병폐입니다.
목사는 설교와 예배를 집례하고, 장로는 심방하며 성도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할 줄 모르고,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장로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 모릅니다. 덕망과 신학적 지식이 있고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 기업가, 사장, 전무, 대표이사, 헌금액이 많은 사람 등 재정적으로 유력한 사람들 위주로 장로를 뽑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당회는 이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도 신학도 모르는데, 공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다운 교회 건설이 되겠습니까? 당회가 변해야 합니다. 한국의 당회는 다른 곳들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상업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본질에서 너무 떠나 있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 두 가지만 한국교회가 되돌려도, 상당 부분 건강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있다면.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담임목사에 대한 지나친 맹목적 추종입니다. 지금은 성도들이 많이들 깨어 있으시지만, 존경과 존중을 넘어선 것들 말입니다. 이는 목사와 당회가 그런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부스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추종 세력들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적으로 개혁하려 하면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수가 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표현하는 ‘덜 순수한 교회’가 됩니다. 벨직 신앙고백서는 이를 좀 더 세게 ‘거짓 교회’라고 합니다. 성경적 목회와 설교, 예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순수한 참된 교회가 될 가능성이 더 크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도 ‘교회다운 교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 프롤로그를 읽고 ‘교회다운 교회’의 책임이 ‘목사 탓’ 아니냐고 하십니다. 물론 맞는 말씀이지만, 성도들도 일조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이 목사와 장로, 당회를 대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함께 성경적 교회, 교회다운 교회 건설을 위해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고 서로 배려하면서 논의해 나가는 건전한 관계가 된다면, 교회가 좀더 성경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본질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데, 그런 추종 세력들이 있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목회를 하다 보면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제는 다를텐데, 목회를 직접 해 보시니 어땠나요.
“담임 목회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는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회란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늘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쉬운 사역은 아닙니다.
교수만 할 때와 목회도 함께할 때의 차이라면, 실제 목회 현장은 우리가 가르치는 신학의 현장보다 매우 전투적이고 실제적이며 피부에 와 닿고 매우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교수만 할 때도 목회에 관심이 있었고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르치는 것만으로 완전히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회와 교수 사역을 병행하며 느낀 점은, 신학교가 너무 이상적인 목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학문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신학이 학문적이어야 하지만, 지나치게 학문적인 목회자를 만들면 현장과 너무 괴리될 수 있습니다.
교수들은 비단 실천신학뿐 아니라 어떤 강의라도, 상당 부분 목회 현장에서 실천 가능하고 적용 가능한 강의를 해야 합니다. 교수님들에게는 그저 텍스트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실천 가능성이 있는 강의를 위해 연구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상아탑과 현장이 지나치게 괴리된 경우를 많이 보는데, 학생들이 그런 부분을 힘들어하곤 합니다.
현장에서 느낀 점은, 교인들이 많은 부분에서 생각 외로 지성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기초를 차근차근 밟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운 것부터 해서는 안 되고, 정말 쉽게 가르쳐야 합니다.
설교도 그렇게 하나 하나 해야 합니다. 신·구약의 총론을 어떻게 하면 단기간 내에 다 가르치고, 각론으로 들어가 전체를 가르칠 것인지 체계 있게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저기 피상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성경도 교리도 잘 모른 채, 기복적으로 대표되는 ‘종교생활’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활에서 탈피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회는 7년 동안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물론 지금은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한두 달 목회하고 그만둘 것도 아니고 한두 달에 바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조급하게 마음을 먹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현장과 신학교는 확실히 다릅니다. 이 괴리를 줄여야 합니다. 신학교는 이론 신학을 가르치되, 현장의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가르치는데 초점을 맞추면 좋겠습니다. 학문성만 생각해 학생들도 이해 못할 이론들을 가르쳐선 안 될 것입니다.”
-올곧은교회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교수 사역을 하면서, 언젠가는 목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는 결국 목회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목사의 영광이자, 꽃이라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다 교단 사태로 말미암아 개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 가운데, 또 다른 하나의 교회로 개척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 이름처럼 올곧게 예배드리고 설교하고 신앙생활하고 가르치는 교회를 건설해 보자, 그래서 기득권도 많이 내려놓고 목사로서 욕심도 부리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목회해도 성장할 수 있구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교회에 행사가 없습니다. 달란트 잔치, 전도 대폭발도 없습니다. 예배와 교리교육, 성경공부, 여름과 겨울 한 번씩 하는 부서별 성경학교 수련회뿐입니다. 성도들은 매년 전 교인 수련회를 갑니다.
새벽예배도 없습니다.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모임이 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인별 경건 시간을 갖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모범이 되는 일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많은 후학들과 후배 목회자들, 개척하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시작했고,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바람은 이런 교회가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더 성장했으면 합니다. 교회가 사역을 많이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인적·물적 자원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곧은교회는 지난 2014년 8월 17일, 장로님 한 가정과 저희 가정까지 두 가정으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매년 재정적이나 수적으로 성장해 왔고, 영적으로도 대단히 성장했습니다. 작년에는 코로나 가운데서 새가족이 20여명 늘었고, 올해도 늘고 있습니다. 직분자도 피택하면서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데, 조금 더 성장해서 이런 교회를 지향하는 많은 교회들을 섬기고 돕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분립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보에 ‘7대 목표’가 적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분립 개척을 지원하는 공동체입니다. 300명 이상이 되면 무조건 분립개척을 합니다. 대형화로 가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300명 이상도 할 수는 있겠지만, 제가 성도들을 양육할 수 있는 숫자는 300여명 정도로 봅니다. 그 정도 선까지는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를 개척하고 개척 목사들을 돕고,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성경적인 교회다운 교회에 투신하려는 젊은 후학들을 키워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교인들과 당회원들도 공유하는 비전입니다.”
-향후 집필과 번역 계획은.
“번역은 줄이고 있지만 계속 의뢰가 와서, 최소 1년에 1권 정도는 할 생각입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이 2권인데, 내년 상반기쯤 나올 것 같습니다.
저술은 생각이 많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생각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를 좀 더 발전시켜서 신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교과서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교회다운 교회’ 류의 책을 시리즈로 내고 싶습니다.
코로나 이후 일반 출판계는 독서 판매가 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출판계는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모여야 책도 읽을텐데, 그런 루트가 차단되니 책을 안 사는 경향이 심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책의 반응이 좋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인스턴트처럼 빠른 시간 내에 적용할 수 있는 책들도 인기가 있겠지만, 제 책의 반응이 좋은 것은 저자 입장에서 매우 고무적이고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읽고 나서,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읽기를 권한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한두 명이 외치기보다, 그들이 변해야 교회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목사 장로들을 바꾸는 것은, 경험뿐 아니라 공부를 통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