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법학회 제28회 학술세미나
기념물 기준, 역사성·예술성·학문성이 전제조건
불교와 유교 문화유산만 편중돼 보호받고 있어
불교 외 많은 종교문화 유산 존재, 보호 절실해
한국교회법학회(대표회장 이정익 목사, 이사장 소강석 목사, 학회장 서헌제 교수) 제28회 학술세미나가 7일 오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기독교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과 법’이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강봉석 교수(홍익대)가 ‘종교문화유산 관계법에 대한 검토’를 제목으로 발표했다.
강봉석 교수는 “우리나라 종교문화유산 중 특별법이 별도로 있는 불교(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나 유교(향교재산법) 외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의 종교 기반 문화유산도 다수 존재함에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입법은 없는 실정”이라며 “유독 불교나 유교에 기반한 문화유산들만 특별법에 의해 보호해야 하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그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종교문화 유산의 보호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한 것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며 기독교 유산이 다수인 독일 문화유산 법제도와 비교해 우리나라 법제도의 문제점을 살폈다.
그에 의하면 연방 국가인 독일은 연방 법률로 2016년 ‘문화재보호법’, 주마다 법률 형태로 제정된 ‘기념물보호법’을 갖추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를 불법 유통이나 반출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념물보호법은 기념물 발굴·보존·관리에 관한 주정부의 의무와 처리절차 등을 주로 담고 있다.
문화재보호법 주요 내용은 독일 문화유산의 일부인 국가문화재를 연방영토 밖으로 반출로부터 보호하려는 원칙(5조) 하에 문화재 목록을 등록하고(6조) 세제 혜택을 적용한다(12조). 등록된 국가문화재를 회원국이나 제3국에 임시 반출하려면 주 최고관청의 허가가 필요하고, 불법 반입·반출된 문화재의 반환 규정을 두고 있다.
교회 및 종교단체가 소유한 문화재에 대해선 별도 규정을 두고 있다. 교회단체 소유 문화재의 국가문화재 등록을 위해선 교회단체의 신청이 있어야 하고, 임시 반출하려면 주 최고관청이 교회단체와 협의해 허가할 수 있다(27조 1항). 영구 반출을 위해선 교회단체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해야 한다(27조 2항).
기념물보호법은 각 주마다 고유한 법이 존재하는데, 기념물의 기준으로는 역사성·예술성·학문성을 전제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종교적 기념물 특별규정에 의하면 자문기관에 교회 대표자를 반드시 참여시키고, 관청은 예배에 사용되는 기념물의 경우 종교단체가 확인한 예배 상의 이익을 우선 존중해야 한다.
종교문화 유산에 대한 조치에 앞서, 기념물 보호관청은 상급 교회관청 또는 유관 종교단체와 협의해야 한다. 교회 고유의 기념물에 대해선 수용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강봉석 교수는 “우리나라 헌법은 9조에서 기본 원리로 문화국가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우리 문화재보호법은 독일의 연방 문화재보호법과 주 기념물보호법 내용들이 종합적으로 규율돼 있다”며 “다만 문화재 반출 방지라는 세부적 문제의 규율에 대해선 독일에 비해 상세함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지정문화재는 총 1만 2,719건이며, 그 중 종교문화재가 4천여 건이다. 그 중에선 불교 문화재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유적건조물 5,843건 중 종교신앙 관련 유적건조물은 모두 1,598건이며, 불교가 1,369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외에 천주교 41건, 기독교 15건, 민족종교 6건, 민간신앙 91건, 제사유적 71건, 구비전승지 5건 등이다.
국가등록문화재 942건 중 종교시설은 90건이며 불교 9건, 천주교 40건, 기독교 23건, 원불교 4건, 기타 14건이다. 불교는 삼국시대 유래돼 고려시대 중흥하는 등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쳐, 종교문화 유산이 많이 남았다. 유교도 우리나라 도입 1천 년 이상 됐고, 조선시대 부흥기를 거치면서 의식과 예식, 학문 등에 큰 영향을 미쳐 많은 문화유산들이 남겨져 있다.
강 교수는 “문화재보호법은 종교문화 유산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적·보편적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문제는 불교 문화유산이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편중돼 보호받고 있다는 점”이라며 “불교 외에 많은 다른 종교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쳐왔고 그로 인해 불교 외에도 많은 종교문화 유산이 존재하므로, 이에 대한 보호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정교분리 원칙이 헌법에 규정돼 있는데, 전통사찰법과 향교재산법을 통해 불교·유교만 특별하게 보호한다는 것은 다른 종교를 차별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한다”며 “전통사찰이 민족문화유산의 일종이기에 보존·지원한다면, 기독교 교회 건물과 천주교 성당, 원불교 교당 등은 민족문화유산의 일종이 될 수 없는가”라고 반문했다.
강봉석 교수는 “무종교인들까지 이해시키려면,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종교문화유산 보호입법을 하면서 그것이 보호되는 이유가 특정종교와 관련됐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문화와 관련돼 하나의 문화적 가치가 있기 때문임을 충분히 밝히면 될 것”이라며 “이는 정교분리 원칙이 적용되는 종교의 영역이 아니라 헌법적 보호가치를 지닌 문화적 의미”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따라서 시급하게 모든 종교문화유산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종교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며 “문화재위원회를 대신하는 가칭 종교문화유산 보존위원회를 두는 등 종교적 특수성을 고려하는 제도들을 둬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후 이은선 교수(안양대)가 ‘한국 근대문화 형성과 기독교’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은선 교수는 “1884년 알렌이 북장로교 선교사로 입국해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기독교는 서양 근대문화가 조선에 들어오는 통로가 되어 근대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며 “병원을 통해 서양식 근대의료체계가 형성되고, 고등교육기관을 세워 근대 지식인들을 육성하는 등 선교사들이 세웠던 의료와 교육 기관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중요한 근대문화의 자산으로 남아 있고,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한글 보급, 남녀 평등, 천민 해방 등에 기여했고, 당시 문화 상황을 고려하면서 전통 한옥 양식을 가미한 기역자(ㄱ) 형 교회들을 건축해 주체적 수용의 측면을 보이기도 했다”며 “물론 처음부터 서양식 교회 양식으로 건축된 교회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당시 사농공상의 차별적 직업의식을 타파하고 노동이 소중하다는 청교도적 직업윤리를 확립시켜, 기독교인들에 의한 실업교육이 시행되고 대학에서 관련 학문들이 교육됐다”며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인들이 물산장려운동과 절제운동을 통한 경제실력 양성운동에 적극 가담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민주주의 발전에는 서재필 중심의 독립신문 발간과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인민들을 각성시키고 천부인권 사상을 심어주면서 정치에 참여하도록 국민을 계몽하고자 했다”며 “협성회를 통한 연설회와 토론회를 통해 민주주의 훈련을 시켰고, 이는 만민공동회로 발전해 이승만·안창호 등이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승만은 의회 개설 운동에 적극 참여해 공화제 실현 의도를 가졌고, 안창호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 공립협회, 대한인국민회 등을 통해 공화제를 주창했다”며 “이러한 흐름들이 종합돼 1919년 3.1운동 후 임시정부가 수립될 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가 제정될 수 있었다”고 정리했다.
발표 후 토론에는 명재진 교수(충남대)와 이영식 교수(총신대)가 각각 나섰다. 종합토론 및 질의응답은 학회 이사인 박요셉 목사가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