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교파·연령 망라 신학자 13인, 성경으로 돌아보는 2021년
올해 가장 많은 일반 교수들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이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고 쥐와 한 패가 됐음을 이른다.
교수신문 추천위원단 최재목 교수(영남대 철학과)는 “국정을 엄정하게 책임지거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일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통속이 돼 이권에 개입하거나 연루된 상황을 수시로 봤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이 ‘올해의 사자성어’나 영국 옥스포드 사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처럼, 대한민국 신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들도 2021년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올해의 성경구절’과 그 이유를 고르고 담았다.
신학자 13인은 2021년 연말을 맞아 본지 요청으로 지난 1년 한국 교계와 사회를 상징하는 성구를 선정했다. 교수신문처럼 사자성어 보기를 주고 설문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13인 모두 다른 성구를 선택했다.
시편을 3인, 히브리서를 2인이 각각 골랐으며, 전체적으로 계속되는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 믿음을 잃지 않고, 소망 가운데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으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가자는 권면을 담고 있다.
1.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숭실대 명예교수)
시편 90편 10절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인생의 시간이 신속히 가서, 날아간다고 표현했다. 시간 속에서 영원을 생각할 때다.
코로나로 인해 올해도 교회가 제대로 모이지 못했다. 이 가운데 신자들은 대면 예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이것도 은혜다.
사회적으로는 전직 대통령 두 분이 별세했다. 5.18 세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내년 3월 9일에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586세대의 운동권 시각에서 벗어나, 선진국 위상에 오른 대한민국의 품격에 걸맞게 자유민주를 바탕으로 약자와 소외자를 품는 선진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단합하여 동성애 풍조를 막아내고 낮아져, 이웃과 지역사회를 섬기고 세계 선교의 사명을 다하기 바란다.
2. 정장복 박사(한일장신대 명예총장)
시편 136편 23절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코로나19라는 역병으로 온 세계가 신음하는데,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자칫 우리는 “21세기는 한국이 지배한다”고 말한 토인비를 비롯해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 했던 앨빈 토플러와 그 외 미래학자들의 예찬에 도취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비참한 처지에 있었을 때부터 붙잡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이 우리의 원동력임을 명심하고 감사하면서, 새해의 행진을 계속하자.
3. 이상규 박사(백석대 석좌교수, 고신대 명예교수)
누가복음 6장 45절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한 사람의 신앙이나 인격, 사람됨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척도는 그 사람의 ‘말’이다. 한 사람의 언어 사용은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이다.
한 사람의 언어가 그 사람의 행동양식과 가치관, 인생관 그리고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리고 더 깊은 곳의 내밀한 영적 상태를 보여준다.
그래서 누가복음 6장 45절에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할 따름이라”고 지적한다. 밖으로 나온 말은 마음 속에 저장돼 있던 것(stored up in his heart)의 노출일뿐이다.
그저 한 마디 던지는 것 같지만, 그것은 한 사람의 은폐된 내면세계의 적나라한 노출이다. 때로 그럴듯하게 꾸미고 치장하지만, 한 마디 말은 그 모든 위장을 일거에 드러낸다. 그러기에 말은 힘을 지니고 있고, 이규호의 ‘말의 힘’은 저자의 언어철학과 무관하게 공감을 주었다.
어떤 사람은 이곳에서의 말이 다르고 저곳에서의 말이 다르다. 그러니 행동의 일관성이 없고 임기응변식 거짓을 반복하고 있다. 거짓이 드러나다 보니 또 다른 거짓으로 덮어야 하고, 그것마저 거짓으로 확인되자 더 큰 거짓을 말하게 된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할 뿐이고, 마음이 악한데 선한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마 12:34)”. 그러니 “실과로 나무를 알게 된다(마 12:33)”.
일생 동안 남을 욕하고 비판하고 재단(裁斷)하는 일만 하고 산 사람이 있다. 자신의 들보는 무시하고 남의 티끌을 침소봉대하여 공격하며 자신은 의인인 양 한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5)”는 말씀이 새삼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연말이다.
4. 박명수 박사(서울신대 명예교수,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지금 우리는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을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남을 대접하는 것(남의 이익)과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것(나의 이익)을 나누고 있지 않다.
진정한 나의 이익은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저술한 토크빌의 “합리적으로 이해한 자기의 이익”이다.
새해에는 한편은 망하고 다른 한편은 승리하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승리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5.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신발 회사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경쟁을 해 왔다. 근래 나이키가 아디다스를 10배 정도 앞질렀다. 아디다스는 60조 원을 벌지만, 나이키는 200조 원을 번다고 한다. 메타버스 기술을 도입한 결과이다.
나이키는 전 세계인이 하루에 몇 보를 걸으며, 몇 발짝을 뛰었는지, 어느 도시 사람들이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뛰는지, 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미래 예측’이다. 과거의 기억이나 역사 개념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메타버스 세계이다. 초월 세상, 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만화, 소설, 영화에만 접할 수 있던 가상 세계가 우리의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다.
필자는 초연결망 온라인을 넘어, 유비쿼터스와 메타버스 방식으로 전도자, 설교자, 목회자를 양성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필자의 신학강의를 수천만 명이 동시에 수강하고, 필자가 잠자는 동안에도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필자의 신학교 교실은 학습공간이 아니라 유비쿼터스-메타버스 창작공간이다.
사도 바울은 메타버스 현실 세계, 영적 현실 세계를 경험한 듯하다(고후 12: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 11:1). 영적 현실을 끌어당겨 현실에 적용하면, 믿음으로 바라는 것들을 현실의 실상으로 만들 수 있다. 가상 세계의 축복을 현실에서도 누릴 수 있다.
믿음의 세계에서 위기는 언제나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유비쿼터스-메타버스 방식의 신학교육, 전도자-설교자-목회자 양성을 원하신다. 필자는 저비용 고효율의 선교에 협력할 후원자와 동역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6. 김재성 박사(국제신대 전 부총장, 한국복음주의신학회·한국개혁신학회 전 회장)
히브리서 10장 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에 힘쓰라는 성경 말씀을 선정해 상기하는 이유는, 예배의 회복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2021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모임으로부터 접촉을 중단해야 하는 단절의 시대였다.
대단히 안타까운 것은 교회 출입에 제약을 받아, 말씀을 듣고 주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삶이 흐트러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새해에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찬미의 제사를 올리는데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7. 이상원 박사(총신대 전 교수,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로마서 13장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위 본문은 언뜻 읽으면 국가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을 명령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 국가에 대한 저항권을 강하게 암시하는 본문이다.
로마 황제는 자신을 신성화하고 정치권력의 기원이 자신이라고 생각했으나, 본문은 황제의 신성화와 자율적 권력관을 비판하면서 황제와 황제의 정치권력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많은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이 본문의 가르침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지키다 순교의 길을 갔다.
2021년은 국가의 반성경적·반창조질서적 정책 추구를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한 해였다. 동성애 합법화 비판, 낙태죄 폐지 비판, 코로나를 빌미로 한 예배 통제 비판,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부터 사회주의 국가로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 비판 등 국가의 왜곡된 정책들에 저항해온 한 해였다.
새해는 대통령을 새롭게 선출하는 바,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하고 국가를 바르게 이끌어갈 정부를 탄생시키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국가가 반성경적·반윤리적 정책 추구를 계속하는 경우 모니터링과 비판을 멈추지 않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8. 안명준 박사(평택대 명예교수, 전 한국장로교신학회 회장)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의 이기적인 삶을 위해 이웃의 삶을 파괴하는 경우가 매스컴에 자주 나온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 또 자기부정은 어떤 외형적인 절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큰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보다, 투쟁욕과 이기심이라는 가장 무서운 전염병을 우리 마음의 왕국에서 뽑아버리는 것이다.
2022년에도 사라지지 않을 팬데믹과 같은 어려운 시대에, 투쟁과 이기심을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기부정의 삶을 살아가길 기대한다.
9. 정상운 박사(대학총장포럼 회장, 전 성결대 총장)
빌립보서 4장 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최근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가 코로나19 팬데믹이 2024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코로나19의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한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와 염려가 엄습해 온다.
이 재앙이 그치고 자유로운 일상을 회복할 때가 언제인가?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 어느 한 구석을 돌아보아도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난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10. 최더함 박사(바로善교회, 개혁신학포럼 책임연구위원)
시편 13편 1-2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역경에 부딪쳐 보지 않은 성도는 없다. 더욱이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땐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다윗 왕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선정한 본문뿐 아니라 22편 1-2절에서도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을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내 신음을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하고 탄식하고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렇게 시편에는 유난히 탄식의 시가 많다. 주로 이 표현들은 ‘어찌하여(Why do~?, How do~?, 2:1, 3:1, 10:1)’라든가, ‘어느 때까지(How long~?, 4:1, 13:1)’, ‘무슨 이유로(Why are~?, 22:1)’ 등의 의문문으로 나타난다. 이런 의문들이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다.
성도의 믿음의 분량과 그 단단함의 어떠함은 고난의 때에 가려진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저주하고 이방신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 개종을 자처한다. 생활이 조금이라도 곤고해지면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금방 불안해하고 근심과 염려로 밤잠을 설친다.
특히 현대의 성도들에게 돈 문제는 가장 큰 근심거리이다. 돈이 바닥나면 좌불안석이 되고, 혈색이 흑색으로 변하여 모든 시름을 안고 앓아눕는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권면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믿음 위에 당신의 복을 내리시고 더하신다. 믿음이 없으면 어떤 축복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마 6:25, 28, 31, 34)’고 경고하셨다. 시편 기자도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노래했다.
무엇보다 사도 바울의 권면에서 위로를 얻으시길 바란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hard pressed)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not crushed), 답답한 일(당황스러운 일, perplexed)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not in despair), 박해(persecuted)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not abandon), 거꾸러뜨림(struck down)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할 것(not destroyed)입니다(고후 4:8-9)”.
지금은 인내가 답이다. 곧 새벽이 동틀 것이다. 역경이 깊을수록 은혜가 더해질 것이다. 오히려 이런 시국에 신앙이 정금처럼 단련될 것이다. 아멘.
11. 정성욱 교수(미국 덴버신학대학원)
디도서 2장 11-14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예수님의 재림과 역사의 종말을 행복한 사건,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밝은 사건이라고 묘사한다. 또한 밝고 행복한 종말론으로 무장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한국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어둡고 두려운 종말론이 지배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특별히 지난 2021년 한해가 코로나 팬데믹 상황 아래 있었고, 이 코로나 팬데믹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밝고, 행복하고, 희망차고,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성경적 종말신앙을 갖추라는 것이다.
주님은 한국교회가 무너진 종말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건강하고 균형잡힌 종말론으로 새롭게 무장하라고 요구하신다. 이 주님의 거룩한 요구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조국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12. 김구원 박사(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아가서 8장 6-7절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 사람이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이 구절은 사랑을 세상을 지배하는 세 가지 힘, “죽음”과 “많은 물” 그리고 “가산”과 대조하고 있다. 이 세 힘들은 고대 근동 신화에서 신으로 그려지는 것들인 동시에, 현대인들이 섬기는 우상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돈(가산)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폭력(많은 물) 앞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여기며, 죽음을 이기는 것은 더더욱 없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본문은 사랑이 돈의 힘이나 기관의 힘, 심지어 죽음의 힘보다 강함을 가르친다. 특히 고대 근동에서 죽음의 신들이 대부분 역병의 신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본문은 코로나 감염병 사태의 해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한다.
지난 2년 간, 코로나의 감염병 사태로 이 세상은 죽음과 폭력과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2021년 한 해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보냈거나 죽음의 두려움 가운데 살았으며, 국가의 강제적 방역조치 아래 고통당했으며, 부자 나라들은 돈으로 백신을 독점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감염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의 그늘을 벗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본문은 이에 대한 해답이 ‘사랑’임을 가르친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사람이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현대인들은 사랑이 돈의 힘, 국가의 힘, 심지어 죽음보다 강함을 믿기 힘들어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다. 믿고 행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2022년 한 해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코로나를 이기는 기적의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13.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신원 겸임교수)
고린도전서 12장 27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작금의 세태는 개별화를 신봉하고, 다원화를 숭상한다. 신앙 안에도 개별성과 다원성이 존재하지만, 그 근저에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라는 연합의 기반이 놓여있다.
반면 현재의 세태가 추종하는 개별성과 다원성은 비현실적 상대주의에 함몰되어 쾌락에 대한 무제한적 방임을 정당화하는 파편화의 이념으로 굳어지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압박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 한국교회는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위기를 맞아, 성도 간의 온전한 교제와 굳건한 연합마저 위협받는 고난의 시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은혜와 진리에 터를 잡은 신앙의 공동체를 지켜내려는 순전한 의지로 충만한 신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인 것이다.
제자도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위에 언급한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을 중심으로,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지상에 남은 교회와 성도들 사이 연합의 비밀을 탐구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현존이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성도의 교제>)”.
성도들의 굳건한 연합과 친밀한 교제 없이, 지상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은혜와 진리에 뿌리내리지 않은 원칙없는 개별화와 다원화를 강요받는 한편, 코로나 위기로 모이기를 힘쓰는 연합과 교제의 노력마저 훼방을 받았던 고통스러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 극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온갖 지혜를 발휘해 그리스도의 몸과 그 지체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분투했다.
새해에도 이러한 노력을 흔들림 없이 경주하여, 곧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확고하게 실현하는 교회로 예비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