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신년 대담] ‘백 년 믿음’ 김형석 교수(上)
변이를 거듭하며 물러가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동거해야 했던 2021년도 끝나고, ‘검은 호랑이의 해’라는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드리운 절망 가운데 반드시 희망을 꽃피워야 하는 2022년, 크리스천투데이는 올해 103세를 맞는 ‘백 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교회와 사회, 그리스도인 개인의 나아갈 길을 청취했다. 김 교수는 얼마 전 <김형석 교수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펴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김 교수는 1920년 지금의 북한 지역인 평안남도 대동에서 출생해 일제시대를 거쳐 공산 치하 북한과 6.25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등을 모두 지켜본, 우리나라 교회와 사회의 ‘산 증인’이다. 최근에는 칼럼과 인터뷰 등에서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형석 교수와의 대담은 두 차례에 나눠 게재된다.
교회, 교회주의 빠져 사회보다 성장 못해 수준 낮아져
교회, 하나님 나라 과정… 교회에서 끝나면 희망 있나
교회 통한 코로나 확산은 없어야… 이웃 사랑 기회로
-1년 전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를 쓰셨습니다. 1년 사이 한국교회가 좀 달라졌다고 보시는지요.
“과거에는 기독교인들의 수준이 사회보다 높았습니다. 일반 국민들에 비해 교육도 많이 받고, 문화적으로도 수준이 높았지요. 희망도 줬습니다. 그러니 일반 국민들이 ‘우리도 저 사람들 따라가야겠다’ 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난 뒤 교회가 교회주의에 빠졌다고 할까, 스스로 만족하면서 성장하지 못했어요. 그 사이 사회가 교회보다 더 성장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교회를 나가지 않습니다. 제 손주들도 의무적으로 교회에 가지만, 교회에서 뭘 배웠다거나 깨달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희망이 없습니다.
한완상 교수가 ‘영락교회 교인과 사회 일반인들의 의식구조’를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영락교회 교인 수준이 사회보다 높아서 희망이 있었는데, 이제 영락교회보다 수준 높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성장할 사람을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독교가 되면 안 된다고 했지요.
저는 이게 상당히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연세대학교를 떠났는데, 한 25년 전쯤 연세대 교목실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세대 신입생 중 크리스천이 몇 %냐’고 물었더니, 28%래요. ‘그럼 졸업생 중 크리스천은 몇 %냐’고 했더니, 32% 정도래요. 4%라도 올라갔으니 다행이지요. 그런데 4% 중에 절반은 천주교라는 거예요.
교목실장이 ‘개신교 대학인데 왜 천주교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길래 이야기했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볼 때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들이 있으면 성당에 가야겠다 싶을 텐데, 개신교회는 어느 목사님처럼 되고 싶다, 따라가겠다 할 만한 분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한 번도 교회를 걱정한 일이 없었습니다. 목적이 하나님 나라에 있으셨습니다. 큰 교회, 성공한 교회 걱정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교회 걱정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만드는 과정일 뿐인데, 교회에서 끝나 버리니까 희망이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강연을 끝내고 돌아오는데, 서울대 교수라는 분이 ‘저도 장로입니다’ 하더라고요. 그런데 장로라고 어디서 말을 못 한대요.”
-3년 전 인터뷰에서 한국교회 연합의 필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나쁜 것이 안에서 교파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기독교장로회(기장)와 예수교장로회(예장)가 갈라진 것이 (6.25 전쟁 당시) 부산 피란 시절이었습니다. 공산군이 들어와서 나라가 무너지게 됐습니다. 공산당이 들어오면 군경 가족들은 다 죽으니 오키나와로 보내고, 크리스천들도 피해를 받으니 제주도로 보내자고 할 정도였습니다.
정부에서 그런 안을 세우고 있는데, 우리 목사님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이건 정말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너무 실망해서 방청하다 나와서 대청동인가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죽은 자들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례 지내게 하고, 너는 하늘나라 복음을 증거하라’ 하는 음성이 들렸어요. 날씨도 맑은데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아, 주님께서 교회 안에 들어가서 저렇게 살지 말아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젊은이 하나를 키우는 것이, 교회 안에서 병든 젊은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보다는 나아요. 그래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바이블 클래스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2년간 교회는 코로나19 방역을 명분으로 부당한 제재를 많이 받았고, 특히 예배가 금지되거나 교회가 폐쇄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교회나 교회 기관들 때문에 코로나가 확산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성당에서 코로나가 확산됐다는 말은 좀 적어요. 우리도 큰 교회는 괜찮지만 작은 교회들의 모임에서 가끔 나오는데 그래선 안 되겠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교인들이 기도 드리는 시간을 좀 더 가지고, 성경을 좀 더 깊이 읽으면서 오히려 인간애를 더 느끼고 이웃 사랑을 코로나 때 더 많이 느끼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갈등 없이 평화롭게만? 성장 못하고 오히려 타락해
교회 넘어, 안창호·조만식처럼 사회와 민족 위한 삶
인격 갖춘 대통령 뽑아야… 文, 정직함 찾기 힘들어
-우리 사회 수많은 갈등의 해결 방안이 무엇일까요.
“아무 갈등 없이 조용하게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게 살면 사람이 성장을 못 해요. 오히려 타락하기 쉽습니다.
남태평양에 가면 원주민들이 다 없어졌어요. 아무 시련도 갈등도 없이 열매 따먹고 편안히 살다 보니, 생각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만 종족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개인도 사회도, 갈등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갈등은 성공과 성장의 원동력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바울 사도도 어려운 문제와 시련이 다가오는 것은 좀 더 좋은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교훈과 진리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갈등을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그 확신을 가진다면, 기독교가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 메르켈 수상이 16년 총리직을 하고 물러나는데, 모두 존경하지 않습니까. 독일은 기독교 사회이기 때문에, 그분이 기독교인이라는 말은 굳이 안 씁니다. 메르켈은 이 어려운 시기에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총리직을 수행했습니다. 메르켈 수상 같은 지도자가 열 명만 있었어도, 지금 세계가 어떻게 변했을까요.
정리하면 우리가 각종 갈등에 대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올해는 대선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자세로 투표에 임해야 할까요.
“대통령을 뽑을 때 몇 가지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자라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를 듣고 교회보다 더 높은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은, 내가 가진 마음 그릇이 작으면 그것만 갖게 되고, 그릇이 크면 더 많이 담을 수 있고, 그릇이 완전히 깊으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들은 교회 위해 사니까 그 정도 그릇만 가지고 있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이나 고당 조만식 장로 같은 분은 항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그만큼 그릇이 큰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사회가 되려면 중산층이 있어야 합니다. 이 중산층에서 지도층이 나오고, 그 지도층에서 대통령과 지도자가 배출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산층이 없으니 지도층이 없어요. 그러니까 지도자가 나오질 않습니다. 도리어 지도자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만 나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임시정부에 있을 때, 당신은 낮은 위치에 있고 김구나 이승만 등은 다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분 일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누가 누구와 싸워서 화해시켰다. 누구한테 가서 오해를 풀어줬다’는 것입니다. 좌우 대립도 독립할 때까지는 잠잠하자고 권했습니다.
그러다 도산 선생이 꺼내신 지도자론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지도자가 없는 건 아니다. 지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데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지도층 사람들이 지도자를 뽑으면 지도자인데, 그 사람을 받들어 주고 지도자로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가 없는 게 아니라, 지도자로 키울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야당을 봅시다. 국민의힘이 야당으로 쭉 있다 보니 인재가 없었는데, 윤석열 씨가 들어가니 거기 있던 분들이 기득권을 뺏기는 거 같이 느끼나 봅니다. 그러니까 홍 아무개나 당 대표까지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다 주인 노릇 했는데, 이거 다 뺏기겠구나’ 그러니까, 윤석열 씨가 하면 자꾸 반대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거, 일반 세상 사람들도 안 합니다. 우리는 크리스천답게 섬길 줄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다음 하나는 좀 미안한 이야기입니다. 대통령은 인격이 중요합니다. 그릇이 아름다운, 인격을 갖춘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첫째로 정직한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문재인 대통령에게서는 정직함을 도대체 못 찾겠거든요. 정직한 사람, 편가르기 안 하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다음에는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이기주의자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자유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임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에 방향을 두는 사람을 뽑아야지요. 그렇게 보면 아마 우리가 좀 알지 모르죠.”
고향은 보금자리… 사랑 남지 않은 곳엔 고향도 없어
북한, 진실·정의·자유·인간애 없는 사회, 우리도 위험
북한, 태어난 곳이지만 네 가지 없어… 고향 잃어버려
-북한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해방되고 2년 동안 북한에 살다가 왔습니다. 북한에서 제가 문제 삼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기독교가, 교회가 없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북한이 왜 저렇게 지옥 같이 됐습니까? 진실이 없어요. 정직하질 못해요. 두 번째는 정의가 없어요. 우리도 ‘내로남불’이라고 말하잖아요. 제가 떠날 때쯤에는 자유까지 없어졌어요. 이후 마지막으로 인간애가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교회가 없다고 걱정하지만, 이 네 가지가 없는 사회는 기독교도 없습니다. 진실과 정의와 자유와 인간애가 없는 사회.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너무 많지만, 지금 이 네 가지가 거의 다 없어져가고 있거든요.
교회가 많은 것이 성공이 아니고, 진실이 있고 정의가 있고 자유가 있고 사랑과 인간애가 있는 것이 성공적인 사회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이 필요한 분은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을 이웃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옥이 땅 속에 없는 건 다 알지만, 북한이 지옥 됐다는 걸 우리가 좀 알아야 하는데… 오히려 그걸 지금 걱정하는 건 (우리 정부가 아니라) 유엔입니다.
우리 정부가 지금 큰 실책하는 것이, 북한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줄까보다, 북한 정권과 어떻게 가까워질지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제가 볼 때 문재인 좌파 정부 안에는 대한민국이 중국과 비슷해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정권과 권력이 거기에 있거든요. 정권과 권력을 잡게 되면 중국 같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거든요.
중국도 그걸 바꾸는 데 30-40년이 걸렸는데, 중국도 이제 등소평 대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지요. 다시 올라가려면 40-50년 걸리죠 어떻게 보면 좀 암담합니다.”
-북한은 교수님 고향인데….
“고향이란 사랑의 보금자리인데, 사랑이 하나도 남지 않은 곳에는 고향이 없습니다.
제가 꿈에 고향에 가서 어렸을 때 친구를 만났어요. 공산당원이었는데, 평양에 살았어요. 꿈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친구를 만났는데, 뒷산에 올라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다 어른이 됐어요.
그 꿈에서 제가 ‘고향이 없어졌다. 자유가 없고 사랑이 없으니까 고향이 없어졌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니, 북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고향이 없다. 이제 우리 고향은 없어졌다. 옛날 같이 사랑이 없고 자유가 없어졌다.’
북한은 참 사람 살 곳이 아니지요. 제 마음이 좀 답답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