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 “가장 고통스러울 때, 신의 은총 느껴”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죽음은, 컵이 깨지는 것… 그 속 공간이 영성
컵의 빈 공간과 맞닿은 태초의 은하수로 귀향

▲이어령 선생의 과거 본지 인터뷰 모습. ⓒ크투 DB
▲이어령 선생의 과거 본지 인터뷰 모습. ⓒ크투 DB

암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 신의 은총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령 선생은 최근 조선비즈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밤중에, 새벽 3-4시에 가장 아프다. 그때 나는 신의 존재를, 은총을 느낀다”며 “고통의 한가운데서 신과 대면한다. 동이 트고 고통도 멀어지면 하나님도 멀어진다. 조금만 행복해도 인간은 신을 잊는다(웃음)”고 말했다.

최근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를 담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펴낸 이 선생은 1일 공개된 새로운 인터뷰에서 “여기 컵이 육체라면, 죽음은 이 컵이 깨지는 것이다. 유리그릇이 깨지고 도자기가 깨지듯 내 몸이 깨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선생은 “그러면 담겨 있던 내 욕망도 감정도 쏟아진다. 출세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돈 벌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다”며 “안 사라지는 건, 원래 컵 안에 있었던 공간이다. 비어 있던 컵의 공간, 그게 은하수까지 닿는 스피릿(spirit), 영성”이라고 전했다.

영성에 대해선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원래 컵은 비어 있다. 거기에 뜨거운 물 담기고 차가운 물 담기는 것”이라며 “말 배우기 전에, 세상의 욕망 들어오기 전에, 세 살 핏덩이 속에 살아 숨 쉬던 생명. 어머니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을 때의 허공, 그 공간은 우주의 빅뱅까지 닿아 있다. 사라지지 않는다. 나라는 컵 안에 존재했던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스피릿이다. 우주에 충만한 생명의 질서”라고 풀이했다.

또 “죽음 앞에 식은땀 안 흘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며 “다만 죽어도 영성의 세계를 갖고 간다, 그게 나의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령 선생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인간도 반전의 역사를 반복했다. 36억 년 전 진핵세포가 여기까지 진화한 것은 선한 의지의 힘이었다”며 “모든 생명체가 그 방향을 알기에, 캄브리아기보다 더 많은 생명체가 지상을 덮고 있다. 그러니 절망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 선생은 “마지막에 믿을 건, (오징어 게임 주인공) 성기훈처럼 자기 안에 있는 휴머니티다. 자기 안의 세계성, 자기 안의 영성… 그것이 치킨 게임 같은, 오징어 게임 같은 세상에서 여러분을 아름다운 승자로 만든다”며 “착한 자가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믿으라. 여러분이 보는 악한 현실과는 다른 원리가 역사를 지배해 왔다는 것을. 지금 그것을 한국인이 만들어 퍼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생은 선물이고, 나는 컵의 빈 공간과 맞닿은 태초의 은하수로 돌아간다”며 “그러나 또 한 번 겸허히 고백하자면, 나는 살아있는 의식으로 죽음을 말했다. 진짜 죽음은… 슬픔조차 인식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참 슬픈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 슬픔에 이르기 전에 전한다. 여러분과 함께 별을 보며 즐거웠다. 하늘의 별의 위치가 불가사의하게 질서정연하듯, 여러분의 마음의 별인 도덕률도 몸 안에서 그렇다는 걸 잊지 말라”며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라.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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