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레 선교칼럼 25] 이슬람권에서 복음 쉽게 전하기
1. 성경책 변질? 언제 어디서 됐는지 반문하라
2. 하나님=알라? 기독교, 삼위일체 하나님 믿어
3. 예수=하나님? 성육신하셔서 시간 속에 오심
4. 십자가 죽음? 못과 창에 찔린 육체 보이셨다
모든 전투에는 공격과 수비가 있는 것처럼, 이슬람권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투에도 공격과 수비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무슬림들의 기독교에 대한 공격적인 질문과 기독교인들의 수비와 반격은 무엇인지 Q&A로 살펴보겠습니다.
1. 무슬림의 질문: 기독교의 성경책은 변질됐는데, 어찌 성경을 믿을 수 있나요?
기독교인의 대답: “쿠란은 성경이 변질되었다고 말하는데요. 만일 성경이 변질되었다면 언제, 어디에서 누가 성경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변질시켰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면 아무도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변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근거가 바로 사해사본입니다. 무슬림들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쿠란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인데, 쿠란은 내용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말로만 성경이 변질됐다고 주장합니다.
2. 무슬림의 질문: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같은데, 왜 기독교인들은 알라를 믿지 않습니까?
기독교인의 대답: 완전히 다릅니다. 이슬람의 알라 신은 무함마드 쿠라이쉬 종족의 달 신의 이름이었다가, 무함마드에 의해 유일신(one God) 으로 바뀐 신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의 삶에 아무런 간섭도 영향도 없이 존재하는 초월자이십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Oneness, trinity God)으로, 초월적 존재이시면서 내 삶에 간섭하시고 영향을 주시는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무슬림의 질문: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기독교인의 대답: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나를 보내신 이가 누구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요?”라고 묻자,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I am that I am)”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존재를 현재, 과거, 미래라는 시간에 상관없이 항상 현존하시는 본체(I am)임을 설명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네 나이가 50도 안 되었는데 네가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 너는 누구냐?”라고 묻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은 나 보기를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현재형을 써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even born I am)”고 하셨습니다. 시간에 상관없이 항상 현존하시는 하나님 본체이심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요 10:31)”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본체이시지만,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우리와 같은 육신을 취하여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빌 2:6).
4. 무슬림의 질문: 예수는 알라의 거룩한 선지자이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그와 똑같은 형체를 가진 자로 바꾸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말합니까?
기독교인의 대답: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갔고, 그 자리에 예수의 형상과 똑같은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초대교회 때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고 믿습니다.
이유는 첫째로 로마의 군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죄수가 바뀐 것을 몰랐을까요? 지켜보고 있었으니 알았을 것입니다.
둘째, 구약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미 예언(사 53:7)하셨고,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도 죽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세 번이나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셨는데 멀쩡하고 멋진 모습이 아니라, 손에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이 있는 상처난 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의심 많은 도마가 예수님의 상처를 직접 만져보며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하필이면 예수님은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한데로 고난받지 않은 멋지고 영광스러운 몸을 보여주지 않으시고, 반대로 가시 면류관과 못과 창에 찔린 상처난 몸을 보이셨을까요? 내 죄를 담당하셨고 또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시려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것을 보여주심으로 믿게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믿는 자에게는 지옥 심판이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고 천국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요 5:47).
이처럼 우리가 이슬람권에서 복음을 전할 땐 복음에 대한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그들이 궁금해하고 의심하는 관점에서 복음을 설명하는 복음전도가 필요합니다.
장찬익 선교사
아일레 선교회 대표
광주중앙교회 협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