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칸타타 전곡 한국어 가사 번역 수록
영화 <검은 사제들> 구마 의식 나올 정도의 대중성
서양 음악의 아버지, 곧 교회 음악의 아버지 의미해
종교개혁시 성도들 말씀 이끄는 촉매제, ‘어시스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
나주리 해제 | 이기숙 역 | 마티 | 1,168쪽 | 44,000원
“바흐의 칸타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예술로 존재해오고 있다. 그것은 바흐가 20대에 이미 결연히 세워 밝힌 ‘정연한 교회음악이라는 궁극의 목표(den Endzweck einer regulierten Kirchenmusik), 이후로도 늘 오롯이 바라보고 다진 그 궁극의 목표가 거둔 찬란한 결실일 것이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J. S. 바흐(1685-1750)는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수난곡, 모테트와 미사, 협주곡과 소나타, 모음곡, 푸가와 카논, 변주곡 등 수많은 장르를 작곡했다. 형식도 독주곡과 기악곡, 성악곡을 아우르고, 대중성까지 갖춰 오늘날 광고와 영화, 드라마 등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악령들이 싫어한다’며 구마 의식에 바흐 칸타타 제140번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를 틀어놓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 영화에서 (여고생 영신의 몸에 들어간) 악령은 “빌어먹을 바흐!”라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바흐 음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칸타타. 그래서 그는 ‘교회 음악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교회에 소속됐던 그는 절기도 아닌 ‘매 주일마다’ 예배 중 연주할 수많은 칸타타를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말할 수 없이 고된 작업이었겠지만, 덕분에 우리 후손들은 절기마다, 주일마다 뛰어나고 다양한 찬송들을 드릴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바흐의 칸타타를 마티 출판사에서 최초로 전곡을 한글 번역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J. S. Bach, Die Kantaten)>라는 이름으로 독일어 원문과 함께 수록 출간했다.
출판사에서는 바흐 칸타타가 독일어 가사 때문에 쉽게 즐기기에는 ‘허들’이 높은 편이라, 칸타타 모두를 번역해 한 권으로 엮은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고 한다. 성경 구절과 당대 시인들의 시구에서 따온 빼어난 문장을 모른 척 하고 칸타타를 듣기란 불가능하기 때문.
출판사는 그런 책을 ‘기다리다 안 나와서, 우리가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번역 대본은 가디너의 바흐 칸타타 전집에 실린 텍스트와 최고의 칸타타 해설서로 알려진 뒤러의 Die Kantaten을 사용했다.
바흐는 교회력에 맞춰 대강절부터 성탄절, 사순절과 부활절, 오순절과 삼위일체주일 이후 오래 이어지는 기간까지, 가히 1년 내내 부를 수 있는 곡들을 만들었다. 총 185곡으로, 책 분량이 1,200여 쪽에 달하는 이유다. 교회력 순서대로 매주 몇 곡씩 1년 내내 바흐 칸타타 전곡을 들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바흐의 활동 무대였던 라이프치히에서 바흐를 전공한 나주리 교수(동덕여대)가 바흐의 칸타타를 상세하고 포괄적으로 해설해 주고 있다. 나 교수에 따르면 “칸타타는 바흐의 장르”이고, 바흐는 ‘칸타타 작곡자’로 여겨진다.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칸타타(Cantata)는 당대 음악을 지배했던 서사적이고 극적인 오페라(Opera)에, 시적이고 서정적인 울림으로 맞선 장르였다. 순수 기악곡인 신포니아(Sinfonia)가 가사를 달고 시작을 알리면서, 뒤따를 악장의 분위기를 미리 돋우어준다.
이때 성경 메시지를 담은 대규모 합창이 함께하며, 레치타티보(recitativo. 말하듯 노래하는 형식)는 상황을 서술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상황이나 문제, 감정은 뒤를 잇는 아리아(Aria)에 의해 해석되거나 심화된다.
이때 하나 혹은 여러 대의 독립적이고 필수적인 오블리가토(obbligato) 악기가 노래 성부가 끌어내는 감정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아리오소(Arioso)로는 예수의 말과 같은 중요 메시지를 전달하고, 찬송가인 코랄(choral)로 끝맺는다.
바흐가 칸타타에 천착한 것은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의 산물이었다. 예전(禮典, Liturgy) 중심의 가톨릭과 달리 프로테스탄트(개혁교회)의 중심은 1시간 가량 이어지는 설교였고, 칸타타는 설교 전 연주되며 설교를 보완했다.
칸타타는 다채로운 음악적 표현으로 봉독된 성경 구절을 풀이하거나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이 경건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들을 준비를 하도록 도우면서 예배 중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때로는 설교 후나 성찬의식 중 추가 연주되기도 했다.
당대 교회가 잃어버렸던 ‘말씀의 회복’을 중요시한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에게, 바흐의 칸타타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이끄는 촉매제이자 ‘어시스트’ 역할이었다. 해제에서는 바이마르와 쾨텐, 그리고 가장 왕성히 작품활동을 했던 라이프치히에서의 칸타타 작업들이 시기별 특징을 담아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나주리 교수는 “바흐의 교회 칸타타 5분의 2 가량은 사라졌다. 세속 칸타타들의 보존 상황은 더욱 심각해서, 소실된 것으로 확인되는 수가 보존된 것의 수를 넘어선다”며 “이러한 대량 소실은 분명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지만, 보존된 200여 곡의 칸타타가 바흐의 창작 소재와 기법, 양식과 언어를 견고하고 인상적으로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하며, 바흐의 칸타타가 지니는 본질과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칸타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바흐의 칸타타는 그의 여타 장르의 작품들, 특히 기악 작품들에 비해 더 강력하게 당대에 속해 있다. 300여 년 전 독일 루터교회의 예배와 전통, 바로크 궁정의 음악문화에 깊이 발을 딛고 있다는 뜻”이라며 “그중에서도 양적·질적으로 중요한 영역을 이루는 교회 칸타타는 수년 동안 중단되기를 반복하면서 세 시기에 중점적으로 작곡됐다. 이는 바흐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직업 음악가’이기도 했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나 교수는 “성실한 직업 음악가이자 교회 음악가의 교회 칸타타는 그의 창작 전체에서 어느 모로 보나 특별하고 월등한 위상을 점한다. 바흐 작품 번호(Bach-Werke-Verzeichnis, BWV)가 교회 칸타타로 시작하는 이유”라며 “바흐의 교회 칸타타는 곧 당대를 넘어, 그의 창작을 넘어 서구 문화의 정점, 서구 예술의 기념비, 기독교적 신앙 및 정신의 정수로 자리매김했다”고 정리했다.
책은 절기 순으로 구성·배치돼 있으며, 한 절기 안에서는 작곡 연도 순으로 배치했다. 곡마다 작곡 및 초연 연도와 악기 편성, 작사가에 조성과 박자, 빠르기와 성악 파트까지 기재해 놓았다. 맨 뒤 ‘찾아보기’에서는 작품 번호 순으로 다시 찾아볼 수 있도록 표기해 놓았다.
이처럼 악보만 빼고 모든 것이 담겨 있어, 바흐의 곡을 ‘텍스트’로 감상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유튜브 등에서 관련 곡을 찾아 들으면서 연주에서는 들을 수 없는 한글 가사를 음미한다면 금상첨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