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지휘자가 심혈 기울여 파고든 바흐의 생애
바흐에게 기독교는 정신적·실천적 응용, 이성으로 뒷받침
교회 칸타타뿐 아니라 협주곡, 기악 모음곡에도 신앙 담겨
음악과 신학 가장 깊게 융합하는 장면, 침묵하는 마디에서
바흐: 천상의 음악
존 엘리엇 가디너 | 노승림 역 | 오픈하우스 | 1,028쪽 | 50,000원
“바흐에게 덧씌워진 하나님 같은 이미지는 그가 겪은 예술적 고뇌를 가리며, 그를 더 이상 탁월한 음악 장인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 그동안의 바흐 연구는 단지 동전의 한 면에 불과하다.”
<바흐: 천상의 음악>은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라는 영국의 세계적인 지휘자가 ‘성실하고 거룩한 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의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오랜 연구와 자신의 연주 경험을 토대로 바흐라는 인물 자체에 깊이 파고드는 작품이다.
저자는 ‘작품 속 인간과의 조우(rencontrer I’homme en sacreation)’를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기존 연구가 바흐의 음악에 집중한 나머지, ‘인간 바흐’를 여전히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는 바흐가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후세에 ‘오로지 음악으로만’ 말하고 있기 때문. 그 음악조차 상당 부분 소실됐다. 하지만 바흐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듣고 가슴 벅차게 느꼈던 영감(靈感)의 원천과 비결에 대해서도 별다른 기록이 없다. “부지런한 게 답이지”라는 교과서적 답변 뿐.
그리고 “칸타타, 모테트, 오라토리오 및 미사곡과 수난곡을 통해, 바흐가 자신의 폭넓은 세계관뿐 아니라 자신의 사고방식과 선호하는 기질(하필 그 가사를 선택한 이유로 들 수 있는)을 얼마나 명확하게 드러냈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자신의 연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가면 갈수록 인간 바흐가 그의 불가해한 음악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을 실감했다. 그의 주요 걸작인 합창곡들을 연주할 때조차도 중요한 퍼즐 조각이 하나 빠져 있는 듯 허전했다.”
저자는 바흐의 주요 작품인 ‘칸타타’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탐구하고자, 그 음악을 주로 ‘사용하는’ 교회와 청중들의 경건함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바흐에 대해 평생 느끼던 매력으로부터 유래된 직관에서 시작된 발상으로, ‘바흐 칸타타 순례’를 시도했다.
이는 기독교 절기에 맞춰 1년 동안 칸타타 전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바흐를 닮은 부지런함으로 새천년을 맞이한 2000년, 예수 탄생 2000년과 바흐 서거 250주년을 기념해 바흐의 연주 생애를 따라 장소를 옮겨다니며 총 93회 콘서트와 198편의 작품을 완주하는 ‘음악 순례’라는 장대한 서사시를 완성했다.
이를 통해 ‘무표정해 보이는 칸토르의 가발 밑에서 어떻게 이처럼 활력과 판타지 넘치는 음악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 중 하나다.
“그의 음악이 우리에게 그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보라고 손짓하는 내내, 능숙한 예술가의 시선은 마치 이것이 그 안에서 인간으로서의 스케일과 시야를 온전히 실현하는 방식임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따라서 꼭 연주만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그 음악들을 가까이서 공부하고 듣는다면 어쨌든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바흐는 작곡가 겸 연주자로서 그의 음악의 모든 줄기를 탐구했기 때문에, 그 음악을 해석하는 사람들 또한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듣는 이들은 깨달아야 한다.”
저자는 바흐가 직접 그린 악보 등을 토대로 그의 작업 방식과 순서를 분석해보기도 하고, 요한수난곡 전체를 마치 연주자 모두를 이끌며 지휘하듯 들려주기도 한다. 저자는 바흐가 음악을 시각화했다고 표현했는데, 저자 자신도 하나의 칸타타 작품을 그렇게 구현했다.
특히 제5장 ‘신앙의 기술’에서는 바흐와 그의 작품을 신앙적으로 분석한다. “그처럼 세속적이면서도 호소력을 담은 명확성은 근본적으로 종교적 세계관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에게 종교는 도그마를 넘어 정신적일 뿐 아니라 실천적 응용이었고, 이성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바흐는 자신의 종교를 직업적 실천에 적용한 구조적이면서도 체계화된 방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저자는 ‘신앙의 기술’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바흐를 인간으로서나 작곡가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심해야 할 대상이다.
“신의 영광을 위한 그의 예술적 헌신은 머리글자 ‘SDG(Soli Deo Gloria, 오직 여호와께 영광)’를 가지고 교회 칸타타를 노래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좌우명은 그가 남긴 협주곡, 파르티타, 그리고 기악 모음곡에도 똑같은 정도로 적용됐다.”
저자는 바흐가 ‘비극(Actus tragicus)’으로도 불리는 ‘신의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BWV 106)’에서 자신의 음악 디자인을 신학적 원칙에 접목하기 위해 계율과 복음을 대칭적으로 정리하는 등 ‘고유의 음악적 스트럭처’를 도입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바흐가 이룩한 음악과 신학이 가장 깊게 융합하는 장면은 중심부의 침묵하는 마디에서 일어난다. 그것을 듣고 있는 우리로서는 불가항력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대가다운 바흐의 풍모는-신자들이 처한 신앙의 위기와 신성한 도움의 강력한 요청을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음조상 애매하게 남겨둔 소프라노 음표들에서 볼 수 있다. … 이어지는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심지어 바흐의 음악은 오늘날 무신론자들의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의식적으로 나는 확실히 무신론자다. 하지만 이를 밖으로 떠들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바흐 앞에서는 내가 무신론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의 믿음의 방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의 음악은 기도를 절대로 멈추는 법이 없다(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쿠르탁).”
이처럼 그의 음악은 거룩하지만,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끝으로 저자는 바흐에 대해 “천상의 성의 음악을 작곡하고, 신의 음성을 인간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사람”이라며 “그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그의 음악의 완전성으로 우리의 불완전함을 극복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신성한 것을 인간적으로 만들고, 인간적인 것을 신성하게 만들면서”라고 평가하면서 이 아름다운 분석을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