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가 그림으로 담아낸 ‘그리스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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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어두움마다 비추는 불빛, 반 고흐 <밤의 카페>

가스등에서 나오는 불빛, 침침한 공간 밝혀
여러 곳 가스등, 실제 광경 아닌 ‘연출’ 의도
방 안 사람들에 하나님의 자비와 위로 나눠
방황하는 사람들 찾고 계신 심정 표현한 것

▲빈센트 반 고흐, &lsquo;밤의 카페&rsquo;(1888, 캔버스에 유채, 72.4 x 92.1cm, 예일대 아트갤러리 소장).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1888, 캔버스에 유채, 72.4 x 92.1cm, 예일대 아트갤러리 소장).

헤밍웨이(Hemingway)의 단편 <깨끗하고 밝은 곳(A Clean, Well-Lighted Place)>은 어느 카페의 모습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밤이 깊었지만 카페안의 노인은 귀가할 뜻이 없어 보인다.

젊은 웨이터는 자신의 퇴근이 늦어질까 노심초사하지만, 동료인 나이든 웨이터는 노인을 서두르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준다. 한참 후에야 노인이 계산을 하고 힘없이 나간다. 손님이 떠난 후 나이든 웨이터는 인생에서 무서운 것은 두려움도 공포도 아니며 바로 ‘허무’이고, 인생은 결국 허무하기 때문에 ‘깨끗함’과 ‘밝은 불빛’이 필요하다고 혼자 말을 내뱉는다.

여기서 ‘깨끗하고 밝다’는 것은 바깥의 어둠과 대비되는 공간으로, 어두운 세상의 희망을 표상한다. 어떤 의미로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고자 하는 인본주의자의 바람을 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깨끗하고 밝은 곳’을 희망처럼 말하지만, 잠시의 망각 뒤에는 어김없이 낙담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회의는 삶의 의욕을 꺾어버릴 뿐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포기해 버리는 ‘사고의 빈곤’을 입증한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밤의 카페>(1888)는 현실의 좌절과 그곳에 임한 구속의 손길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가 된 이 카페는 그가 머물고 있는 건물에 딸려 있었다.

“오늘 밤부터 내가 세든 카페 실내를 가스 등불 아래에서 그리기 시작할 거야. 사람들이 ‘밤의 카페’라고 부르는 곳인데, 밤새 문을 열어두지. 방세를 낼 돈이 없거나 너무 취해서 여관에서 받아주지 않는 ‘밤의 부랑자들’은 여기서 쉬어갈 수 있어.”(1888. 8. 6)

고흐는 이곳의 방문자들을 중의적으로 파악한다. 어떤 사람은 하룻밤을 묵고자, 또 어떤 사람은 향락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림 속 시계 바늘은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고, 빈 테이블에는 술잔과 술병이 나뒹굴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취객의 모습도 눈에 띈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며 “카페란 자아를 파멸시킬 수도 있고, 미쳐버리게 하거나 죄를 범할 수도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했다. 고흐가 읽었던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는 술 취한 사람들의 말다툼과 싸움이 빈발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 당시 프랑스 카페가 어떠했을지 분위기를 짐작케 해준다.

고흐가 찾은 아를의 카페는 ‘밤의 유랑자들이 밤의 유랑을 마무리하는 곳’(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이었다. 그러니까 고흐가 이 그림에서 다루고자 한 것은 이 카페가 일차적으로는 ‘밤의 유랑자들’의 피난처가 되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흐는 이곳이 취객과 창녀들, 포주들이 만나는 장소로 이용되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동료 화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밤의 카페를 찾았을 때 “포주와 매춘부가 막 다툼을 마치고 난 직후 여인은 시큰둥하고 잘난 체 하는 데 비해 남성은 그녀를 구슬렸다”(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고 했다. 당구대 뒤편으로 나 있는 계단은 윤락 장소의 입구임을 암시한다.

고흐가 이곳을 그린 이유가 궁금하다. 이곳의 주인 지누(Joseph-Michel Ginoux)는 그와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고흐는 지누와 지누 부인과의 친분으로 부인의 초상을 그려주기도 했다. 화면의 중앙에 흰 옷을 입고 서 있는 인물이 카페 주인인 지누이다.

아마도 고흐가 이 곳을 택한 것은 삶의 명암이 교차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클리프 에드워즈(Cliff Edwards) 역시 빈센트가 실내를 성스럽게 만들어 안전한 공간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위험을 경고하는 장소라고 보았다.

고흐가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우리가 선과 악이 직조되는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릇된 길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이 아닐까?

반 고흐는 평소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구빈원의 사람들과 목공소나 세탁업 종사자들, 열악한 환경에서 직물 짜는 사람들, 실직자들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는 카페 그림을 그리기 바로 전날 동생 테오에게 “그림으로 음악처럼 위안이 되는 것을 말하고”, “실제적인 광선과 색채의 파장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 옛날에 후광(halo)이 상징하던 것과 우리가 찾던 남자와 여자를 그리고 싶다”(편지 531)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실제적인 광선과 색채의 파장’은 천정과 벽, 그리고 바닥에 반사되는 빛을 발산하여 화면 전체를 에워싸고 있다.

고흐는 위험한 장소를 감싸는 비가시적인 요소, 즉 ‘위로’와 ‘후광’에 대해 언급하였다. 다시 한 번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나타난다.

여러 번에 걸쳐 그는 자신의 그림이 밀물과 썰물처럼 변하는 바다의 모습처럼, 사람을 그렇게 사랑의 힘으로 변화시키고 싶어했다. 비록 어둠과 죄에 빠져 있더라도 그곳에 따스한 자비의 손길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에 등장하듯 인생의 허무 때문에 괴로운 사람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는다면 주저 없이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그것의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그림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닥이나 테이블이 아니라 천정에 달린 가스등이다. 카페의 사람들에 가려 천정의 가스등이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그림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가스등에서 나오는 불빛이다. 영롱한 불빛을 침침한 공간에 비추는 불빛이야말로 고흐가 강조하려고 했던 이미지이다.

이상하게도 작가는 가스등을 한 군데만 비추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있는 곳마다 그들을 환하게 비추게 하였다. 이것은 실제 광경이라기보다 고흐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연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빛은 방 안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위로를 나누어 준다. 그것은 <감자먹는 사람들>(1885)의 궁핍하고 초라한 사람들에게 임했던 ‘은총의 불빛’이고, ‘구원의 불빛’이다.

어쩌면 이 그림은 지금도 어디선가 방황하는 사람들, 그들을 애타게 찾고 계신 그리스도의 심정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고흐는 절망스러운 상황 아래 놓인 이들에게 한줄기 빛이 비추어, 하나님의 은총이 그들에게 내려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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