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 통해 푸틴에게 알려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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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택 목사의 인문 고전 읽기 39] 19세기 러시아 그린 기념비적 걸작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에 초점
깊은 철학적 논쟁과 세심한 역사적 비평,
민속 이야기 전개 기발하게 번갈아 서술
거대한 스케일, 완벽한 예술적 표현 조화
역사 지배하는 것, 소수 개인 아닌 ‘숙명’
전쟁? 사랑·자비·용서, 언제나 승리할 것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송광택 목사님께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 서평을 특별기고 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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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세트.

전쟁과 평화(전 4권, 세트)
톨스토이 | 연진희 역 | 민음사 | 2,988쪽 | 51,000원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중부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크림 전쟁에서 복무한 후, 그는 영지로 은퇴해 글쓰기, 농사짓기, 그리고 대가족 양육에 헌신했다. 그는 자신의 소설과 거침없는 사회적 논쟁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전쟁과 평화』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 소설로 잘 알려진 캐릭터들 중 세 인물을 보여준다. 즉 그의 유산을 위해 싸우고 영적 성취를 갈망하는 백작의 사생아인 피에르 베즈호프 백작,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가족을 뒤로 하고 싸우는 안드레이 볼콘스키, 그리고 귀족의 아름다운 어린 딸로 두 남자 모두를 유혹하는 나타샤 로스토프.

톨스토이는 소작농과 귀족, 민간인과 군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시대, 역사, 문화에 따른 문제와 씨름하는 과정을 훌륭하게 따라간다. 그리고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이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특수성을 초월하여, 세계 문학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인간적인 모습들 중 일부가 되었다.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톨스토이가 36세이던 1864년이었다. 톨스토이는 같은 해 1월 20일자 편지에서 누이동생에게 “1812년부터 취재한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이 작품을 탄생케 한 직접적인 동기는 1856년 유형지에서 귀환이 허용된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 1825년 12월 26일에 무장봉기를 일으킨 러시아 혁명가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들의 활동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였다.

말하자면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들의 혁명운동을 중심으로 한 소설을 쓰고자 했고, 스스로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데카브리스트의 성격과 세계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어떻든 그보다 한 시대 이전의 러시아 국가가 당면했던 역사적 대사건이며, 당시 청년층에 커다란 영향을 준 나폴레옹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는 1812년의 전쟁을 불쑥 묘사하지 않고, 거기에 이르는 역사적 정세를 1805년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는 풍부한 자료를 구사해 가며 집필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특히 개인의 회상과 편지 종류에는 각별히 유의했으며, 당시의 사회 정세와 주인공들 가정생활의 진실을 전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전쟁과 평화』는 전 4편 및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제1편에서는 평화로운 생활 장면을 배경 삼아 사교계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으며, 그 바탕에는 닥쳐올 위기에 대한 예감이 깔려 있다.

제2편에는, 1805년 전쟁과 중간기를 그리면서 피에르와 안드레이, 거기에 로스토프 가와 볼콘스키 가의 가족이 등장하고, 그들의 생활을 통하여 조국 러시아의 실태가 선명하게 묘사되고 있다. 더욱이 이 제2편은 전체 4편 중에서도 가장 시적인 부분으로, 아름답고 인상적인 장면이 다수 전개되어 있다.

제3편에서는 보로디노 전투를 중심으로 러시아 민족의 줄기찬 잠재력이 묘사되고 있으며, 제4편에 이르러서는 전쟁에 대한 큰 전망이 나타나 있다. 이상이 이 대장편을 이루고 있는 4편의 주요 테마이다.

세계 문학에 금자탑처럼 우뚝 솟아 있는 이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긍정적 평가가 이루어져 왔으며, 부정적인 견해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종래의 소설 범주를 벗어나 있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깊은 철학적 논쟁과 세심한 역사적 비평, 그리고 민속 이야기 전개 등을 기발하게 번갈아 서술하고 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이렇게 훌륭한 글쓰기 방식으로 엮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걸작이라는 이름을 받기에 충분하다.

톨스토이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과 평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서정시도 아니다. 역사 기록의 종류는 더욱 아니다. 『전쟁과 평화』는 각자가 현재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로 표현하기를 원했고, 또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역사적 사건의 기술에 대한 태도에서 역사가와 예술가로서의 입장을 뚜렷하게 구별하여, 역사가가 다루는 것은 사건의 결과인데 비해, 예술가는 사건의 사실 그 자체를 다룬다고 주장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역사를 지배하는 것은 소수의 개인이 아니라 일종의 ‘숙명’이라는 입장에 서 있다. 구(舊)소련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점에 대해 그의 역사관을 심하게 비판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입장에서 완성된 이 장편소설에는 수백 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너무 현실적이다. 그들은 다양한 환경 속에 자주 서로가 모순되는 감정과 행위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 완벽한 예술적 표현 속에 훌륭한 조화를 찾아낸 것은 참으로 세계 문학에 있어 하나의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국가 생활과 개인 생활과의 온갖 현상, 갓난아이의 첫 울음소리에서 죽음에 이른 노인의 신음소리에 이르는 인간의 모든 희비와, 친구의 돈을 훔치는 도둑의 비열한 감정에서부터 가장 숭고한 영웅주의에 이르는 인간의 모든 정신적 양상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두 중심인물인 안드레이와 피에르는 톨스토이 내면의 상반되는 양극을 구체화한 것이며, 발랄한 생명의 상징인 나타샤와 더불어 단지 그 시대의 인물로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인간적 전형으로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왼쪽부터) 톨스토이와 푸틴.
▲(왼쪽부터) 톨스토이와 푸틴.

톨스토이는 묘사의 달인이다. 그는 섬세한 묘사를 통해 말한다. 그의 서술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며, 사실 책의 길이에 비해 대화 내용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러나 그의 서술력의 초점은 단순히 풍경 묘사가 아니라 제스처, 얼굴 표정, 사건의 사회적 맥락에 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대화 중심적이고 액션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사라진 미묘함이며, 대부분의 현대 작가들에게는 거의 생소한 것이다. 일상생활, 사회, 갈등, 죽음, 전쟁 사이의 균형이 이보다 더 고르게 맞춰질 수는 없다.

톨스토이는 등장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모든 장면들에 독자를 바로 끌어당기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은 그의 미덕이다.

호기심, 열광, 청소년기 사랑, 열정, 친밀감,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 등 이 모든 것이 작용한다. 등장인물들은 지혜, 용기, 애국심, 충성심, 음모, 자기 의심, 의분, 경건함, 순진함, 허영심, 자부심 등 매우 인간적인 자질을 풍부하게 발휘한다.

이 작품에서 러시아 군대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단의 전투 장면은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을 기록하려는 것이 톨스토이의 의도는 아니다. 그는 그 역사를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문화적 주제, 즉 그 당시 러시아 귀족들의 문화를 드러내기 위해 더 많이 사용한다.

그는 특히 전쟁에 대해 철학적이다. 사실 그 누구도 전쟁의 혼돈을 소설에 다 담지 못한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그것을 산문으로 담아냈다. 그의 소설에서 독자는 허무와 죽음의 혼란 속에서 던져진 젊은 보병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비할 데 없는 필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성취, 그리고 공허함의 전 영역을 헤쳐나간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고 풍부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19세기 초 러시아로 이동시킨다. 독자는 이 소설에서 나폴레옹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모든 세대를 위한 이 기념비적 작품에서, 독자들은 인간의 경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철학적인 수준에서 역사, 전쟁, 종교, 철학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볼 수 있다.

톨스토이는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는 큰 삶의 질문들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들, 전쟁의 공포와 삶의 공허함에 대한 질문들이 그것이다. 『전쟁과 평화』는 인생, 역사, 가족, 그리고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멋진 이야기다. 이 책은 엄청나게 밀도가 높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다.

이 소설은 적어도 이야기꾼, 역사학자, 철학자의 세 가지 다른 서술적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각각은 매우 훌륭하다. 톨스토이는 19세기 초반의 러시아를 잘 이해하고 있다. 나폴레옹과 천재 역사가들에 대한 톨스토이의 풍자적인 논평은 근거가 충분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를 대영 제국의 폭압으로부터 해방시킨 비폭력 혁명을 이끌도록 영감을 받은 것이 이 작품이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인종적 편견에 맞서 비폭력 혁명을 이끌도록 영감을 준 것도 이 작품에 나타난 비폭력 철학이었다.

『전쟁과 평화』는 19세기 초 러시아 사회를 그린 러시아 문학의 걸작일 뿐 아니라, 19세기의 소설 전부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 대해 “거짓 겸손을 빼놓는다면, 이것은 『일리아스』와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폴레옹의 교만함을 이렇게 지적했다. “하나님은 파멸시키려는 사람에게서 먼저 이성을 빼앗는다.” 이것은 오늘날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이 경청해야 할 말이 아닐까.

하나님은 억압에 대응하기 위해 증오와 폭력 이외의 다른 방법을 모색하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 작품을 사용해 왔다. 불행하게도 전쟁은 죄인의 세계에서는 항상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 자비, 용서는 언제나 승리할 것이다.

송광택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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