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장군의 수염부터, 큰 바위 얼굴까지… 선생님과의 인연
수염 따라하지 않아 고립된 철훈… <장군의 수염>
하나님과 예수 알았지만, 교회 다니는 이들과 구별
세례 공표된 후 심경과 세평의 괴리로 시작된 강좌
곁에서 허물없이 뵌 시대의 지성, 마지막까지 지조
“난 딱딱한 육체를 가진 젖먹이 동물이에요. 누에처럼 아름다운 비단과 나방으로 변신하는 재주가 없는 동물이에요. 소설을 쓰세요. 소설은 어떻게 끝나죠? 역시 주인공은 수염을 기르지 않나요?”
“그래 난 소설을 쓰겠어. 이번만은 타인을 돕는 것이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는 비극이 되지 않도록 하겠어….”
“장군의 수염은 비가 오는 어느 여름 밤에….”
1966년 이어령 원작 소설을 1968년 김승옥이 영화 대본으로 각색한 <장군의 수염> 막바지에 나오는 신혜와 철훈의 이별 대사이다. 해방의 서사와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시대 면면을 점령한 혼잡다단한 그 시절이 배경이다.
철훈의 현실 참여는 때때로 정의롭지만 여전히 일반적이지 않고, 사교적이나 친절하지 않다. 몰락한 지주의 막내아들이다.
신혜는 강직한 시골 목사의 딸이다. 떠밀리듯 홀로 나선 피난여정 중 중공군에게 겁탈을 당한 사건 이후 아버지의 신앙과는 결별하지만, 아버지를 돌보고 나약한 인간(철훈)에게 연민하는 여인이다.
그리고 집요하리만큼 현행법 집행에 성실한 공적인 삶에 투철한 박 형사가 주요한 인물 축이다.
철훈의 죽음으로 비롯한 살인사건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살인 주범은 말미에 형사의 독백으로 밝혀지는데, 수갑을 채우지도 법정에 세울 수도 없는 ‘고독’이었다.
<장군의 수염>은 독립운동을 한 난세의 영웅과 그의 군대들이 전시 상황에서 부득불 깎지 못했던 수염이 영웅,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메타포로 활용되었다. 철훈의 고독은 그 수염을 끝끝내 따라 하지 않아서 고립된 자신이 투영된 소설 중의 ‘액자소설’이다.
어른이 또 한 분 먼저 그 길을 가셨다. 2월 초 무안의 고구마 장인이 이어령 선생님께 고구마를 보내드리고 싶다고 연락을 주셔서, 심부름차 사모님 강인숙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음식을 넘길 형편이 아니시다.”
그 때부터였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어른과의 인연이 제법 여럿 떠올랐다. 그 기억의 처음, 청소년 시절 접했던 이상한 영화가 떠올랐다. 집에서 밤에 혼자 그 영화를 보다 잠들었던 기억이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 만화 속 수염을 한 말 탄 장군과 그의 군대들, 그리고 나약한 남자! 훗날, 그 영화가 이어령 소설 <장군의 수염>의 원작 동명 영화였던 것을 알고 짐짓 놀랐었다. 그 만화는 찾아보니 신동헌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세상에!
이어지는 인연의 깊은 기억은 남편 이재철 목사와 함께다. 주님의교회에 강사로 오셔서 식사를 대접하던 날이다.
한 말씀이 잊히지 않았다. “지능이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모른다 할 수 있겠는가?!”였다. 그 때 교회에 오신 까닭은 “교회 밖에서 본 교회”를 이야기하러 오셨다. 어른은 하나님과 예수를 알고 계셨다. 다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과 구별되고 싶으셨다.
이후 꽤 오랜 시간 가까이 뵙지 못했다. 그러다가 세례를 받으셨다는 기사를 접했다. 할렐루야! 드디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과 섞여 살기로 작정하셨음에 맘으로 축하를 드렸다. 그리고는 얼마 후 뵙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골몰했던 작업이 100주년기념교회의 ‘목요강좌’였다. 본의아니게 세인들에게 공표하듯 세례를 받으신 어른은 심경과 세평의 괴리를 인지하시고, 가끔 우리 부부와 식사를 하시며 이런저런 당신의 생각의 변화를 공유해 주셨다. 그 때 필자(홍성사)가 제안했던 기획이었다. 이어령의 지성이 묻고 이재철의 영성이 답을 하는 10회 강좌였다.
이 기획을 100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문화원 사업으로 하고 싶다 하셔서 홍성사가 양보한 프로젝트였다. 결국 이 강좌는 <지성과 영성의 만남>으로 출간되었다. 그래서 두 분 모두 인세를 받지 않으셨고, 홍성사는 책의 제작에 공을 들였다.
어른이 그 곳에 가셨다. 글을 남기시고 말을 남기셨다. 시대의 지성을 곁에서 허물없이 뵌 인연이 행운이었다. 다시 숙제…, 마지막 어른의 야윈 모습이다.
인간의 지조를 지키며 자연 수를 하고 가신 이어령 선생님은 ‘큰 바위 얼굴’이 되셨다.
정애주
홍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