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프로테스탄트 조각가, 에른스트 발라흐
독일 군인 추모 의뢰받아 만든 막데버그 기념조각에
전쟁의 부당함, 그로 인한 인간들의 비극적 측면 부각
약자에 관심, 마르크스 아닌 기독교적 관점에서 조명
공중 매달린 조각의 천사, 악행 보며 깊은 애통 상상
나치즘 광기 종말 후 존경받는 예술가로 재평가받아
루터가 교회 개혁자였다면, 발라흐는 예술의 개혁자
전쟁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시대 상황과 맞물려
불의 저항한 기독교 예술가 삶, 예리·묵직한 메시지
독일 조각가 에른스트 발라흐(Ernst Barlach,1870-1938)는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전쟁의 부당성과 비극을 환기시킨 작가이다.
루터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런데 그가 살던 시대는 야만이 폭주하는 난폭한 시대였다.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젊은 시절에 민족적 애국주의에 빠져 열렬한 전쟁 지지자로 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하여 참전하였지만 회의를 느끼고 전쟁 반대자로 돌아섰다.
그의 전쟁에 대한 공포와 회의는 작품에 반영되었다. 참전 전 작품 <복수>가 적개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강조했다면, 전역한 뒤의 작품은 반대로 전쟁의 부도덕과 반인륜성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급선회하였다.
그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은 1929년에 일어났다. 발라흐는 막데버그시에서 기념조각에 관한 주문을 받았는데, 조국을 위해 싸운 독일 군인을 추모하는 조각품을 제작해 달라는 취지였다.
발라흐는 요청을 수락하고, 두 사람의 조수와 함께 <막데버그 기념조각>(1929)을 완료했다. 그런데 그것은 시(市)에서 내심 바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작품은 묘비에 서 있는 군인들과 앞줄의 피해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각각 다른 세대에 속한 뒷줄의 세 군인들은 전쟁의 기간이 적힌 십자가 묘비 주위에 모여 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전쟁에 뛰어든 헐렁한 옷을 입은 소년병, 그 옆 건장한 청년은 맹목적으로 상부의 지시에 따르는 군인을, 좌측의 노병은 어떻게든 책임을 완수하려는 굳은 의지를 각각 표명하고 있다.
전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아랫줄의 세 인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 사람이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두건을 뒤집어쓴 채 겁에 질려 있는 여인, 전사한 군인, 그리고 방독면을 쥐고 괴로워하는 남성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임을 나타낸다.
작가는 기념조각을 통해 전쟁의 부당성과 그로 인한 인간의 비극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시청에서는 이 작품을 의뢰할 때 전몰자에 관한 영웅적 이미지를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발라흐는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보다는 전쟁의 참상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참한 것인지 일깨워주었다.
그는 전쟁의 비극을 고발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동료 인간에 대한 애정을 피력하였다. 동료 인간에 대한 그의 헌신과 사랑은 기독교적 가르침에서 온 것이며, 그런 종교적 배경이 그의 예술을 성숙시켰다.
그렇게 된 데는 잊지 못할 체험이 있었다. 드레스덴과 함부르크, 파리에서 미술을 수학하였던 그는 앞으로의 방향을 궁리하다가, 러시아를 여행하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는 황실이 급속히 기울어 도탄에 빠진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하던 시기였다. 발라흐는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길거리의 굶주린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후 그의 작품에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인체가 등장한다. <접시를 든 러시아 거지>, <맹인 거지>, <러시아 여자 거지>, <천을 뒤집어쓴 여자 거지>, <목발을 쥔 거지> 등이 그러하다.
거지는 아닐지라도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노인, 소녀, 장애인, 노동자, 갇힌 사람 등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궁핍한 사람, 약자,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이 점은 그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모두 구걸하는 존재”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삶에 미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한 줌의 흙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니까 이런 작품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의 사랑과 그 분의 자비에 힘입어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가 나약한 사람들을 조명한 것은, 피조된 인간으로서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생애는 고난으로 얼룩져 있다. 나치가 집권하자 핍박이 한층 노골화되었다. <막데버그 기념조각>은 국가 이념에 어긋난다는 구실로 철거되었고, 그의 많은 작품들은 ‘퇴폐 미술’로 분류되어 불태워졌다.
발라흐 자신은 조각가로서 활동을 금지당했고, 예술 아카데미 회원 자격도 박탈당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마저 나치의 책동에 휘말려 유태인이자 볼셰비키 추종자로 비난받으며 죄인처럼 지내야 했다.
귀스트로 기념관에 설치된 <매달린 천사>(1927)는 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을 담은 작품이다. 이 청동조각상은 흥미롭게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입상이나 좌상이 아니라, 공중에 매달려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눈을 감은 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천사는 지상의 어떤 것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거기에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는 안타까움이 감추어져 있다.
작가는 부유하는 천사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였다. 발라흐는 인간이 서로를 죽이고 있을 때, 천사는 사람들의 악행을 보며 깊은 애통을 느낄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같다.
그의 존재는 한때 잊혀지는 듯하다가 나치즘의 광기가 종말을 고한 후부터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으며, 이후 존경을 받는 예술가로 재평가되었다.
한 예로 이탈리아 루터복음공동체(CELI)가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맞추어 개최한 에른스트 발라흐의 특별전 인사말에는 그에 대한 존경심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루터가 교회의 개혁자였다면, 발라흐는 예술의 개혁자였다.”
불의에 저항한 기독교 예술가의 삶은 현재도 전쟁의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시대 상황과 맞물려 우리에게 예리하고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