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성경 2] 사순절, ‘베드로의 저주’를 생각해 봅니다
성경 말씀, 습관적 아닌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보자
마태복음, 베드로 세 번 부인 삼단강조법으로 표현
‘단순 부인→ 맹세하며 부인→ 저주하며 부인’까지
병행 복음서로 비교하다 보면, 사복음서 특징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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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독교엔 두 개의 큰 축제가 있는데, 성탄절과 부활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두 축제가 주는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태어난 날입니다. 천지가 진동하고 인류의 역사가 뒤바뀌는 엄청난 대사건의 날이었지만,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새로 태어난 아기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습니다. 동방박사도 별의 인도를 받아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를 찾아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무덤에서 나오신 부활절은 우리 인간이 비로소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또 손으로 만져본 날입니다. 이런 점에서 부활절은 우리 시공에 구속된 인생이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와 처음으로 직접적 접촉을 갖게 된 매우 소중한 날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탄절보다 부활절이 더 ‘인간의 눈높이에 맞는 절기’이며,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는 ‘가장 귀하고 귀한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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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귀한 부활절을 앞두고 우리가 고난주간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게 된다면, 부활절을 맞이하는 기쁨도 두 배로 커질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사순절 기간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이야기’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베드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잘 곱씹어 보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교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말에도 ‘고기는 씹을수록 맛’이라고 하였지만 성경 말씀도 습관적이 아니라 늘 새로운 마음으로 읽게 되면, 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교훈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이야기는 사복음서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마 26:69-75; 막 14:66-72; 눅 22:56-62; 요 18:25-27). 복음서 모두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마태복음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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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네 번째 날(목요일) 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붙잡힌 후 대제사장 가야바 집으로 끌려 가시자, 베드로는 바깥 뜰까지 몰래 따라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한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본 것입니다. 여종이 베드로가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주장하자, 모든 사람들의 눈이 베드로에게 집중됩니다. 이에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된 베드로는 바로 “부인하며”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번에는 다른 여종이 베드로를 발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던 자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하며 다시 부인하여” 예수라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반박합니다.
조금 후 마지막 세 번째로 베드로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나와서, 베드로가 예수 도당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기를 계속 하며 가로되”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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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읽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읽으신 독자라면, 마태복음에서는 다른 복음서와 약간 다른 이야기 전개가 있었음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신분이 탄로나 자신도 잡히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과정에서 마태복음은 독특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즉 베드로가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이야기의 강도를 점점 증가시키는 문학적 표현기법, 즉 ‘삼단강조법’을 활용하여 드라마 같은 극적 요소를 가미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단순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주장이 먹히지 않자, 이번에는 ‘맹세’까지 하게 됩니다. 맹세는 하나님 이름으로 하는 것으로, 베드로는 자신의 주장에 신뢰를 더하기 위하여, 하나님 이름까지 ‘망령되이’ 거론합니다. 그러나 이 맹세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베드로는 마침내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여 독자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도록 합니다.
즉 마태복음은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때 다른 복음서들처럼 그 과정을 세 번 임의로 나열하지 않고, 점층적인 방법을 이야기에 사용하여 점점 더 긴장감이 넘치도록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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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마태복음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건을,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단순 부인→ 맹세하며 부인→ 저주하며 부인’이라는 점층적인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과거의 고백을 다 잊어버리고 자신의 생명만을 구하고자 하는 베드로의 나약한 마음을 극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맹세하며 저주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베드로는 닭 우는 소리에 비로소 “닭이 울기 전 세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집밖으로 뛰어나가 심히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통곡조차 베드로의 행동을 바꾸지는 못하였습니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던 나머지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막상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자 심한 통곡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버리고 갈릴리로 도망을 쳤던 것입니다.
이 ‘베드로의 저주’ 이야기는 일년을 지내며 다시 부활절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교훈을 줍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동안 늘 함께 다녔던 베드로조차, 막상 자신이 위기에 처하면 ‘맹세’는 물론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늘 겸손한 자세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작년보다 더 확신에 찬 올 부활절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맹세’에서 ‘저주’에 이르기까지 악의 끝판왕으로 곤두박질 치는 베드로의 두려움에 대하여, 한 번 깊은 묵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속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두려움에 대하여 되돌아볼 수 있다면, 부활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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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더 제안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 성경 순서대로만 읽지 말고, 각 이야기들을 복음서마다 비교하며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냥 순서대로 읽게 되면 다 비슷한 이야기로 보이기 때문에 각 복음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들을 간과하게 됩니다.
각 복음서의 특징을 비교하며 읽기 편하도록 편집하여 놓은 책이 바로 <병행 복음서(Gospel Parallels)> 입니다. 이런 류의 책(필자 추천: 정훈택 저, 『병행 사복음서』)에 나오는 복음서들을 주의 깊게 비교하며 읽다 보면, 각 복음서의 특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 특징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태신학, 마가신학, 누가신학, 요한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우리에게 복음서를 네 개나 주신 것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 복음서의 특징들을 잘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예수님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면, 우리의 신앙 생활도 그만큼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