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풍경화, 하나님 은혜 없이 살 수 없음 상기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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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판 만더 이후 네덜란드 풍경화

무치아노 촉발시키고 판 만더 소개한 바니타스 풍경
여러 화가 확산돼 네덜란드 풍경화 주요 부분 정착해
폭포, 역경과 시험 암시하고 덧없음과 사라짐 보여줘
본 것들 재현할 뿐 아니라, 실재의 본질적 구조 표현

▲농가의 착유 장면(자크 드 헨, 에칭, 1603년).

▲농가의 착유 장면(자크 드 헨, 에칭, 1603년).

판 만더의 <인간 삶의 알레고리>를 신호탄으로 풍경 속에 삶의 진실을 환기시키는 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에는 유리잔, 해골, 꽃병과 같은 바니타스(Vanitas)적인 이미지와 함께 폭포나 연기, 순례자와 같은 이미지들도 포착된다. 특히 화면 오른쪽 산 바로 아래에는 폭포가 눈에 띈다.

여기서 폭포는 단순히 자연의 이미지를 기록한 것이라기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기용된 것인데, 이 이미지는 특히 후대의 미술가들에게 전승되었다.

이런 요소들은 판 만더에 의해 선보였으나, 그 도상적 원형은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다. 지롤라모 무치아노(Giroamo Muziano, 후일 코르넬리스 코르트(Cornelis Cort)가 재제작)의 <풍경 속의 오누프리스(Onuphrius in Landscape, 1574)>는 ‘사막의 수행자’로 불리는 오누프리스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인데, 주인공은 깊은 산림 속에서 기도와 명상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림의 배경으로 사막 대신 숲을 선택했지만, 이 그림에는 몇 가지 상징적 장치가 숨겨져 있다. 폭포와 바위, 그리고 흩어진 그루터기와 같은 이미지들은 존재의 일시성과 함께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은혜 없이 존재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이 무섭고 위험한 환경을 헤쳐갈 수 있는 것은 전능자의 보호 없이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도상은 네덜란드의 얀 브뤼헬(Jan Brughel)과 파울 부릴(Paul Bril) 같은 풍경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월포드(John Walford)는 그들이 네덜란드 북부에서 개신교의 예술적 감수성에 맞게 수도자 이미지를 피하고 창의적으로 변형시켰다고 보았다. 네덜란드 지형에는 없는 웅장한 산의 이미지도 기용됐는데, 이는 판 만더의 그림에서 보이는 산의 이미지에서도 똑같이 점검된다.

지롤라노 무치아노에 의해 촉발되고 판 만더에 의해 소개된 바니타스 풍경은 이후 여러 화가들에 의해 확산되어 네덜란드 풍경화의 주요 부분으로 정착된다.

그것은 먼저 헨드릭 홀치우스(Hendrick Goltzuis)의 <폭포를 바라보는 연인들(Couple Viewing a Waterfall)>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잘 차려 입은 연인들이 바라보는 폭포는 무치아노의 수도자 풍경과 유사하고, 판 만더의 알레고리 작품과도 흡사하다.

이 그림에서 홀치우스는 수도자 이미지 대신 우아한 옷을 입고 전망을 즐기는 현대적인 연인들로 대체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폭포는 앞으로 다가올 ‘역경’과 ‘시험’을 암시하는 동시에, ‘덧없음’과 ‘사라짐’을 의미하는 이미지로 풀이된다.

두 연인은 지금 평화롭게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죽음의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이와 비슷한 특징은 자크 드 헨(Jacques de Gheyn)의 <농가의 착유(搾乳) 장면(Milking Scene before a Farmhouse, 1603)>에서도 엿볼 수 있다. 홀치우스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종교적 인물을 포기하고 ‘농경생활의 시놉시스’라고 불리는 장면을 제시한다.

자크 드 헨의 판화는 목가적인 사랑과 같은 낭만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자크 드 헨은 여기서 알레고리적인 함의를 지닌 모티브를 다루고 있다.

그는 죽음 앞에 선 젊은 연인들의 알레고리를 홀치우스의 폭포보다 더 긴장감 있게 다루고 있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은 홀치우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연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농가는 거의 허물어지기 전이고, 문짝은 반쯤 뜯겨져 나갔으며, 창문은 깨졌고 굴뚝에선 연기가 나오며 주위에는 세찬 바람으로 생의 불연속성(inconstancy)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소 옆에 세워진 부서진 바퀴인데, 이 이미지는 그림의 색다른 요소로 도입되었다. 망가진 바퀴를 화면 전면에 배치한 것은 의도성이 개입된 설정이다. 이것은 지상적인 일들의 썩어짐을 명시하는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이런 부패의 이미지는 네덜란드 화가들이 애용한 장치였는데, 그것은 정물화에서 죽은 꽃이라든지 타버린 촛대 또는 풍경화에서 종종 나타나는 고사목, 산 풍경에서 폭포의 이미지와 견줄 수 있다.

자크 드 헨의 판화는 알레고리를 보다 사실적인 현실공간 안에서 전개시켰다는 특징을 지닌다.

▲모래언덕의 농가(살로몬 루이스달, 1626년경).

▲모래언덕의 농가(살로몬 루이스달, 1626년경).

또한 살로몬 루이스달의 <모래언덕의 농가(Farm in the Dunes, 1626년 경)>을 보면 드 헨의 작품보다 서사적 이야기들이 축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을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친절하게 제시돼 있지 않지만, 앞의 그림들보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림의 우편에는 한 사람이 강아지와 함께 비스듬히 앉아 있고, 좌편의 지팡이를 든 사람은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다. 그 인물은 판 만더의 그림에 나오는 여행자를 연상시킨다.

그림을 통해 우리는 부패와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농가 근처에는 낡은 수레바퀴가 위치해 있고, 다 허물어져 가는 헛간과 울타리, 굴뚝의 연기 등은 전체적으로 삶의 불안전성을 말해준다. 암묵적으로 억새로 엮은 초가지붕과 먹구름, 세찬 바람 등은 상처 입기 쉬운 삶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림에 어두운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먹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빛줄기가 오두막과 울타리, 길가, 전면 우측에 처량하게 앉아 있는 인물을 비추며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비슷한 예는 얀 반 호연(Jan van Goyen)의 <시골길(Country Road, 1633)>에서도 찾아진다. 화가는 특정한 장면을 재현할 뿐 아니라 풍경의 중요한 구조를 증시한다.

이런 나무가 등장하는 구도를 반 호연은 즐겨 사용하였는데, 화면에는 잎이 무성한 참나무와 바로 그 옆에는 고사목을 설정하고 시냇물이 흐르는 전면에는 이와는 별개의 기물이 위치해 있다.

그것은 살로몬 루이스달이나 자크 드 헨, 그리고 동시대 풍경화가들의 그림에 종종 등장했던 부서진 수레바퀴의 이미지이다.

네덜란드 화가들은 그들이 본 것만을 재현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이 ‘실재의 본질적 구조’에 대해 아는 것을 표현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 같은 사실은 1620년대와 30년대에 활동했던 살로몬 루이스달이나 피터 몰레인(Pieter Molijn), 피터 판 산트포르트(Pieter van Santoort)와 같은 화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즉 그들은 풍경화를 제작할 때 자연에 모방에 그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풍경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물하신 공간이자 하나님이 인류에게 나타내신 매개물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계시의 세계를 묘출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풍경을 포함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화면의 구도를 설정할 때 풍경과 함께 인물이 들어선 복합적인 회화를 계획해야 했음을 말해준다.

만일 특정한 ‘이야기’가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의 경우 피조된 자연세계, 즉 풍경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됐고, 이는 본질적으로 선하신 창조주의 성품에 대한 반영으로 비추어졌다.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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