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 총대주교 푸틴과 침공 두둔 행보에 “동의 못해”
우크라이나 ‘악’ 규정, 푸틴 도덕·종교적 뒷받침
전쟁,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어긴 것으로 규탄
양국 협상 계속하고 유혈사태 막을 방법 찾아야
러시아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 산하에 있는 우크라이나정교회(Ukrainian Orthodox Church)가 지난 5월 27일(현지시간) 러시아 본교단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이들은 이날 이러한 내용이 담긴 ‘우크라이나정교회 평의회 결의문’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 우크라이나정교회는 성명을 통해 이 같이 천명하면서 “러시아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Patriarch Kirill)의 전쟁과 관련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우크라이나에서 계엄령이 선포된 후, 러시아 지도부와 관계는 사실상 끊긴 상태였다”고 폭로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로마가톨릭 교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동방정교회에 속해 있고, 1억 1천만여 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정교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를 논의한 뒤, 완전한 독립과 자치를 선언하기로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하고 동방정교회 최대 교파인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가 이를 계속 정당화하면서 지지하자, 러시아정교회 산하인 우크라이나정교회가 러시아 교회와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분리 독립을 천명한 것.
성명서에서는 “우리는 전쟁을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으로 규탄하며, 전쟁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에게 애도를 표한다”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협상을 계속하고 유혈사태를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을 위한 적절한 말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진 키릴 총대주교는 전쟁을 비판하기는커녕, 우크라이나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푸틴 대통령을 도덕적·종교적으로 뒷받침해 왔다. 또 우크라이나 소도시 부차에서 발생한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정황 발견에도, 자국의 침공을 두둔하고 애국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러시아 계열인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 교회와 우크라이나 계열 교회로 양분돼 있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분리 추진 등으로 양측은 갈등의 골이 벌어진 상태였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소속인 우크라이나정교회는 이날 발표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키릴 총대주교에 대한 충성을 유지해 왔다.
키릴 총대주교가 러시아와 푸틴 옹호 발언을 계속하면서, 동방정교회 내에서 키릴 총대주교에 대한 논쟁이 격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키릴 총대주교는 특히 러시아정교회 한 방송에서 평화주의를 배격하고 전쟁을 옹호하는 설교를 전하기도 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지난 4월 24일 키릴 총대주교가 집전한 부활절 미사에 참석해 “정부와 생산적 협력을 진전시킨 데 감사하다”고 했다.
194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키릴 총대주교는 1970년 현지 신학대학을 졸업한 이후 꾸준히 입지를 키워 2009년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에 올랐다. 키릴 총대주교의 기행(奇行)과 관련, 정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1990년대 공개된 옛 소련 비밀문건을 바탕으로, 그가 KGB 요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동방정교회 바르톨로메오스 1세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는 키릴 총대주교의 이런 행보를 거세게 비판했고, 러시아 내에서도 정교회 성직자 273명이 전쟁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 전쟁을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다르지 않다고 비난한 정교회 신부를 기소해 벌금형에 처하는 등, 교회들의 움직임을 거세게 탄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