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를 위해”, “한국교회의 문제”라는 공허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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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간 여행, 신앙 여행 (2)] “한국교회, 한국교회”, 이제 그만

가나안 성도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안 버려
기독교 세계에 등 돌렸을 뿐… 그들 편에 서야
한국교회 운운하는 이들, 누워서 침뱉기일 뿐
우리 각 사람이 한국교회… 영국에서 답 찾기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잠들어 있는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박양규 목사 제공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잠들어 있는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박양규 목사 제공

우리는 설교를 들었다 하면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유명한 목회자들뿐 아니라 신학생들도 아이들에게 설교할 때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언급한다.

조심스럽게 이런 표현을 정의한다면, 한국교회에 대한 ‘타자화(他者化)’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한국교회’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한국교회, 한국교회’를 두드려야 나는 괜찮은 목회자, 신자라는 의식이 반영된 표현일 테다.

분명한 것은 A, B, C 세 사람이 저마다 “한국교회가 어떻다!”라는 말을 하지만, A나 B나 C의 눈에는 모두 ‘한국교회’ 속에 포함된 ‘개체’로 보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세를 휩쓸었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한국교회’는 존재하는가? 중세 스콜라 학자들의 최대 담론 말이다. 한국교회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면 ‘실재론’이라 하고, 한국교회는 말장난일 뿐 A, B, C 라는 개체의 교회들만 존재할 뿐이라면 ‘유명론’이라고 한다.

과연 ‘한국교회’는 존재할까?

영국에 입국하기 전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만난 인물은 천재 철학자로 알려진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elard, 1079-1142)다. 그는 명석한 두뇌와 빈틈없는 논리로 ‘실재론’이 난무하는 중세 시대에 ‘개념적 실재론’을 주창했다.

개념적 실재론이란, ‘한국교회’는 존재하지 않고 개별 교회만 있을 뿐이며, 각 교회 속에 포함된 공통적인 ‘한국교회’라는 개념만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그의 논리를 반박할 수 없었으나 그는 ‘괘씸죄’로 수많은 적들을 만들었고, 엘로이즈(Héloïse)와의 사랑으로 인해 강제로 거세당했던 비운의 인물이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수백 년이 지난 후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나란히 합장돼 누워 있다.

아벨라르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던 또 다른 천재가 페르 라셰즈 묘지에 잠들어 있다. 그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다. 잘 생긴 외모, 천재 작가, 심미주의(審美主義)의 전형적 인물이었으나 수많은 논란에 휩싸이며 영국을 떠나야 했다. 두 번 다시 가족과 재회하지 못하고 이 묘지에 잠들어 있다.

그의 삶은 여러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그의 작품은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 선생은 어린 시절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읽으며 작가의 길을 가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오스카 와일드는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기 위해 이런 작품들을 기록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천재 작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오스카 와일드는 조국을 떠나 이곳에서 쓸쓸히 잠들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로비,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우리는 못들은 척 하자구!”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을 찾아온 여행자 모습. ⓒ박양규 목사 제공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을 찾아온 여행자 모습. ⓒ박양규 목사 제공

이 말은 오스카 와일드의 유머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생애를 감안하면 이것은 의미 없는 농담이 아니라 처절한 고통을 유머로 승화시킨 눈물겨운 표현이다.

‘로비(Robbie Ross, 1869-1918)’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스카 와일드의 곁을 지켜준 친구였다. 마지막 나팔이 울리는 순간, 오스카 와일드는 기독교 세계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드러냈다. 즉 그는 그리스도를 불신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기독교 사회에 마음이 닫혀 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시대에 수많은 ‘가나안’ 성도들이 있다. 내가 만난 대다수 가나안 성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단지 기독교 세계에 대해 등을 돌렸을 뿐이다.

수많은 가나안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로비’가 되어 주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음행 중에 잡혀온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의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며 그녀의 편에 서 주셨기 때문이다.

다시 피에르 아벨라르를 생각해 보자. ‘한국교회’란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각 개체 교회만 있을 뿐이다. “한국교회, 한국교회”를 외치며 자신은 흠결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한국교회를 형성하는 개체다.

한국교회는 우리 각 사람이 전체의 ‘개념적 실체’를 만들어 나간다. 더 이상 “한국교회, 한국교회”를 외치는 것은 공허할 뿐 아니라, 누워서 침뱉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교회의 개념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 영국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영국 주요 작가들의 작품과 주 무대. 이들이 한 달간 돌아보게 될 지역들이다. ⓒ박양규 목사 제공

▲영국 주요 작가들의 작품과 주 무대. 이들이 한 달간 돌아보게 될 지역들이다. ⓒ박양규 목사 제공

박양규 목사
교회교육연구소
<리셋 주일학교>, <구원으로 가는 9개의 이야기 계단>,
<인문학은 성경을 어떻게 만나는가> 등 저자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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