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레 선교칼럼 36] 일상생활에서의 ‘산 제사’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자아상으로 사는 삶
하나님께서 주신 직업을 축복의 통로 삼는 삶
‘코람 데오’, 결과가 어떻든 감사하며 사는 삶
성경이 말하는 산 제사란 죽은 제사의 반대말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제사, 일상생활에서 살아 움직이는 삶으로 드리는 제사(a living sacrificie)를 말하는 것이다. 바로 선교적 삶(missional life)을 말한다. 그렇다면 ‘산 제사’로 드리는 선교적 생활이란 어떤 것일까?
첫째,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자아상으로 사는 삶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수많은 연구 끝에 다음 3가지로 결론을 내렸다. ①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사는 허무한 존재이다 ②거짓과 불의와 추악스런 죄악으로 죄책감에 시달려 무기력과 열등감과 우울증에 눌려 사는 존재이다 ③그러다 결국 병들고 죽게 되는 절망적이고 허무한 존재이다.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무신론자 니체는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리고 사는 존재에다,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모르고 사는 병에 걸린 허무한 존재라고 말했다.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죄를 범함으로 미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람은 죄인이 됐고, 죄의 대가로 사망에 이르게 됐다. 그런데 사람의 죄와 사망을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셔서 새로운 자아상으로 살게 해 주셨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에게 새로운 자아상이 주어졌다. 어떤 자아상일까? 이사야 53장 4-5절과 로마서 8장 1절 말씀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정처없이 떠도는 허물 많던 나그네 삶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가 됐고, 자녀답게 온전히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는 삶이 됐다(요 1:12; 딤후 3:16).
나는 누구인가? 거짓과 불의와 추악한 죄악을 행하는 삶에서 거룩한 영이신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선한 일을 온전히 행하는 삶이 되었다(딤후 3:16; 엡 2:10).
나는 누구인가? 저주와 징계와 가난과 이기적인 삶에서 하나님과 평화와 부유함을 누리고 또 이웃에게도 평화와 부유함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 복된 삶이 되었다(갈 3:13; 고후 8:9).
나는 누구인가?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모든 질병에서 나음을 얻었고, 모든 장애를 극복하는 삶이 되었다(벧전 2:24).
나는 누구인가? 죽음으로 끝나는 절망적이고 허무한 삶에서, 죽음 이후에도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게 기쁘고 즐겁게 교제하며 영원히 사는 삶이 되었다(요 14:2-5: 고후 5:1).
이제 앞으로의 삶은, 받은 은혜와 축복을 믿음으로 얼마만큼 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느냐를 의미한다(고후 5:17).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직업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누리고 전하는 자리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직업을 소중하게 여기자.
둘째, 직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다.
오스 기니스는 가톨릭은 직업을 성과 속으로 나누어, 성직은 거룩한 일이고 일반직은 세속적인 것이라며 이원론적으로 나누어 버렸다고 말했다. 반면 개신교는 직업의 귀천 없이 이윤과 이익만을 추구하게 해, 직업을 세속적인 도구로 왜곡시켜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올바른 성경적인 직업관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직업이 성직이든 일반직이든, 차별없이 재능과 적성과 소명에 맞는 직업이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성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직과 지혜와 최선을 다하는 성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는 생명을 구하고 생활에 유익과 편리함을 줌으로써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하, 넌 역시 달라! 그리스도인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칭찬과 격려로 서로 화답하는 것이다.
어떤 건설 공사현장에서 세 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뭘 하고 계십니까?”라고 묻자, 첫 번째 사람은 “돈 벌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일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알 것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보수를 받고 있었지만, 일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은 너무 달랐다.
셋째, ‘코람 데오’, 그리고 결과가 어떠하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다.
‘코람 데오’란 무슨 일을 하든 항상 하나님 앞에서 일한다는 마음으로 하되, 결과는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의미이다. 일을 할 때나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할 때나, 코람 데오 정신을 항상 최우선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난다.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성당 천정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천정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 거꾸로 누워서 그려야 했다. 무려 4년이나 걸렸다. 극심한 노동으로 몸이 많이 쇠약해졌고 목 디스크에 걸렸다.
그때 하루는 친구가 찾아와 말했다. “여보게 친구, 누가 그렇게까지 본다고 세밀하게 그리나? 대충 그려 대충.”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보냐고? 저분이 보시잖아, 저분이!”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그 유명한 <천지창조>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미켈란젤로의 믿음과 최선을 다한 성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보이면서,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온 세상에 나타내고 있어 감동이 느껴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신 목적은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고,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받을 때, 이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받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안에는 이 능력이 내재돼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라. 그리스도인의 직업관을 가지고, 꿈을 향해 믿음으로 달려가 보라. 너의 삶이 하나님께 산 제사가 되고, 너의 직업이 이웃에게 촉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리라!”
당신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가 되고, 이웃에게 사랑을 주고 받는 21세기 선교적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귀한 하나님의 걸작품인 당신의 일터가 하나님의 축복의 현장이 될 것이다.
장찬익 선교사
아일레 선교회 대표
광주중앙교회 협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