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문턱 높이고 문 닫아야, 신앙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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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간 여행, 신앙 여행 (3)] 교회는 원래 이러해야 한다?

교회 연령은 노쇠해지고, 젊은 세대는 줄어
페로네 무덤처럼 신앙의 의미 잃을까 두려워
그럴수록 문턱 낮추고 타인 향해 문 열어야
세상 속에서 교회의 생명과 자부심 지킬 것

▲영국의 관문, ‘화이트 클리프’.

▲영국의 관문, ‘화이트 클리프’.

마침내 영국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영국의 관문이 되었던 흰 절벽, ‘화이트 클리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화이트 클리프 앞에서 정복자 줄리우스 시저도, 나폴레옹도 움찔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영국 사람들에게 화이트 클리프는 자존심을 넘어서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의 ‘명동성당’과도 같은 ‘캔터베리 대성당’이다. 캔터베리 대성당은 12세기부터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국왕 헨리 2세와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베켓(Thomas Becket, 1118-1170)은 영국의 최고 권위자 자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세금을 확보하기 위해 교회를 발 아래 두려던 헨리 2세. 반대로 로마 교황을 섬겨야 했으므로 헨리 2세에게 복종할 수 없었던 토마스 베켓의 대립은 11세기의 ‘카노사의 굴욕’ 사건은 물론,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헨리 2세가 자객을 보내 토마스 베켓을 무참히 살해했으나, ‘민심’이라는 역풍에 직면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토마스 베켓은 ‘성인’이 되었고, 영국에서는 캔터베리로 향하는 순례가 시작됐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캔터베리로 순례를 떠난 사람들이 런던의 한 여관에 모여 각자의 이야기 들려주었던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캔터베리 이야기>다.

캔터베리 대성당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역사의 페이지’가 돼 있다. 과거를 기념한 ‘기념물’만 남았고, 그것이 현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우리는 어떤 ‘소통’을 나눌 수 있을까? 우리의 교회를 위한 유산은 무엇일까?

▲영국의 &lsquo;명동성당&rsquo;인 &lsquo;캔터베리 대성당&rsquo;.

▲영국의 ‘명동성당’인 ‘캔터베리 대성당’.

역사를 조사하던 중 흥미로운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많은 성도들이 사랑하는 찬송가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찬송가 36장)’의 가사를 쓴 에드워드 페로네(1721-1792)가 여기 잠들어 있는 것이다.

페로네는 프랑스인이었고, 프랑스 개신교도인 ‘위그노(Huguenot)’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이유는 프랑스에서는 개신교도들이 극심한 박해로 인해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로네는 프랑스와 가까운 영국 캔터베리에 잠들어 있다.

신앙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조국을 떠나야 했던 불편함과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런 그가 감리교에서 복음을 듣고 목회자가 되었다. 그런 그가 타향에서 지어 불렀던 찬송 가사가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였다. 신앙을 위해 삶의 터전과 성공, 물질을 버리며 하나님을 찬양했던 페로네를 생각하면, 천국에서 어떻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더 놀라운 사실은 캔터베리 대성당 관리인조차 ‘에드워드 페로네’가 누구인지 몰랐고, 그의 무덤을 찾지도 못한 것이다. 성당 명부를 뒤져서야 겨우 찾은 그의 무덤은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마모되가고 있었다. 마치 유행가처럼 교회에서 ‘소비’되는 CCM 감성에 밀려, 찬송가와 신앙의 의미를 잃어가는 우리 자화상은 아닐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접하면서, 우리의 미래는 어떠해야 할지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와 똑같을 질문을 이 현장에서 던진 인물은 <황무지>의 작가 T. S.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이다. 그는 1935년에 <대성당의 살인(Murder in the Cathedral)>을 발표했다.

▲캔터베리 대성당에 있지만 관리인조차 알지 못했던 &lsquo;에드워드 페로네의 무덤&rsquo;.

▲캔터베리 대성당에 있지만 관리인조차 알지 못했던 ‘에드워드 페로네의 무덤’.

역사 속에서 기독교를 주도했던 국가들이 벌이던 ‘세계 대전’과 그 전쟁에 동조했던 각국의 교회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T. S. 엘리엇은 1170년 토마스 베켓의 암살 사건을 모티브로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 <대성당의 살인>의 한 장면은 이렇다.

헨리 2세가 보낸 자객들이 토마스 베켓을 암살하기 위해 캔터베리 대성당에 도착했다. 그때 사제들이 토마스 베켓 대주교를 보호하기 위해 소리쳤다. “문을 잠가라. 문이 잠겼다. 이제 우리는 안전하다.” 그 때 토마스 베켓이 소리쳤다.

“문을 잠그지 마시오. 문을 여시오. 그리스도의 교회이자, 기도하는 집을 나는 요새로 만들고 싶지 않소. 교회는 교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오. 나무와 돌로 교회 문을 잠근다 해도, 그것은 썩어 없어질 것이오. 어떤 것으로도 막지 마시오. 교회는 견딜 것이오. 교회의 문을 여시오. 우리의 원수들에게까지도 교회의 문을 여십시오!”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것이다. 교회는 문턱을 높이고, 문을 닫을 때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심지어 원수에게까지 교회의 문을 열 때, 교회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이것이 교회의 능력이고, 신비이다.

교회 세대가 급변하고 있다. 교회의 연령은 노쇠해지고 있고, 젊은 세대들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마치 에드워드 페로네의 무덤처럼, 신앙의 의미는 흔적조차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교회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문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교회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럴 때 교회의 생명을 지킬 수 있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화이트 클리프’와 같은 자부심은 위풍당당하게 설 수 있을 것이다.

박양규 목사
교회교육연구소
<리셋 주일학교>, <구원으로 가는 9개의 이야기 계단>,
<인문학은 성경을 어떻게 만나는가> 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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