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이정일 목사 (1)
교회든 사회든 힘든 삶 속, 문학 숨 고를 여유 줘
자기계발서는 남의 답, 소설은 내가 찾아내는 답
덜 유명 작품? 매일 먹는 밥에서 느끼는 맛 있어
“제가 그리스도인에게 굳이 문학을 일 년이라도 읽으라고 권유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시대의 빠른 변화에서 살아남으려면 획일적인 신앙 교육, 표준화된 공과 교육, 신앙서만 읽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읽고 또 그걸 자신의 직업과 일상 속 콘텍스트와 연결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배우지 못하면 당분간은 버티겠지만 결국엔 도태될 것입니다(104쪽).”
2020년 코로나19 한가운데에서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라는 첫 작품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본지 선정 ‘올해의 책’에까지 오른 이정일 목사가 2년 만에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를 펴냈다.
이전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문학의 필요성’을 총론으로서 설파한 글이었다면, 이번 책은 실제 국내외 9편의 문학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고전’이나 ‘기독교 문학’은 없다. 저자 중에는 김훈 작가가 가장 유명해 보이는데, 그나마 가장 덜 알려진 단편집 <강산무진(2006년)>이다.
대신 2021년 나온 국내 작가의 청소년 소설 <순례 주택>부터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 <임계장 이야기(2020년)>, 몰몬교 근본주의자 아버지 밑에서 기초교육을 받지 못한 미국 작가의 회고록 <배움의 발견(2020년)> 등 최근 작품들에 집중돼 있다. 히트작 드라마 <도깨비>의 극본(2017년)도 포함돼 있다. 물론 한 작품마다 우리가 아는 시와 소설이 쏟아져 나오고, ‘같이 읽으면 좋은 책들’도 소개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문학’을 보급하고자 하는 저자 이정일 목사는 미국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고, 신학을 하기 전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후 뉴욕주립대 영문과에서 미국 현대시를,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제3세계 작가들을 연구하였다. 대학에서 세계문학과 영어를 가르쳤으며, 전방 포병대대 교회에서 군(軍) 선교사로도 섬기고 있다. 다음은 이정일 목사의 첫 번째 이야기.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이정일 | 예책 | 308쪽 | 20,000원
-첫 책이 나온 후 2년 동안, 생각이든 반응이든 어떤 변화가 있으셨는지요.
“사람들이 문학과 성경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몰랐는데, 책을 읽고 연결의 가능성을 봤다고 하셨습니다.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문학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학업을 하면서 소홀해졌지만 한때 문학 소년을 꿈꾸는 분들이 많았죠. 그 시절 감각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셨을 겁니다.
교회에서든 사회에서든 한국에서 산다는 것이 참 힘겨운데, 문학은 숨 고를 여유를 경험케 합니다. 독자들이 ‘밑줄 칠 문장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2/3 정도 밑줄을 쳤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온라인으로 보여주시는데, 저자로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그 책은 앞으로 쓰고 싶은 책들에 대한 서문 형식으로, 압축적으로 다양한 이슈들을 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책은, 그 1장에 해당합니다. 독자들이 한 권의 책을 깊이 있게 읽는 경험을 원했기에, 9권을 선택해 읽었고 그 중 7권이 한국 작품입니다.
고전도 있고 외국 좋은 작품들도 많지만,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뛰어난 통찰이나 문학적 사유가 위대한 작품들에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별미를 먹을 수 있지만, 매일 먹는 밥을 통해서도 맛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평범한 삶이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 속에도 얼마나 깊은 하나님의 통찰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내 삶과 겹쳐 읽을 수 있습니다. 해외 작품들이 뛰어나지만, 문화와 배경이 달라 찾아봐야 하는 수고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2000년 이후 나온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2년 전 작품이 2권, 작년 작품도 1권입니다. 이렇게 선정한 것은 동시대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지금 내가 숨쉬고 사는 현재의 삶을 보여줍니다. 책에 나오는 9권의 작품들은 현 시대의 삶이지만 보는 각도가 조금씩 다릅니다. 상실과 이별부터 사랑, 아픔, 사랑의 기쁨 등이 담겨 있습니다. 각 장 끝에는 함께 읽을 책을 소개해, 비슷한 주제를 조금 다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잘 모르는 소설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읽지만, ‘굳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유는, 자신의 고민을 일목요연하게 완결된 형식으로 해결책과 함께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원하는 것을 고민하지 않고 풀 수 있도록, 정답까지 정리해서 주는 완벽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 개별적으로 경험하는 많은 문제들은 사실 솔루션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경험도 있어야 하는데, 항상 익숙하고 간결하게 정리된 답만 보기 때문에, 내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당황하는 것입니다.
반면 소설은 모호하고 애매하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혼탁함이 정화되듯, 소설은 읽고 나면 조금씩 정리가 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주인공의 삶과 나의 삶을 겹쳐 읽다 보면, 그의 기쁨이 내 기쁨 되고 그의 아픔이 내 아픔 됩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굳건하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읽다 보면 와닿는 한 문장이 생깁니다. 그 문장이 내가 그동안 그렇게 찾고 있던 문제에 대한 해결책임을 스스로 확신하게 됩니다.
자기계발서가 남이 답을 주는 것이라면, 소설은 내가 그 답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수동적인 것과 능동적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직접 터득한 것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그런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정답이 분명하지 않고 굉장히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갈 때, 소설은 내가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해석한 대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소설 속 인물이 과연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평범하지만,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이기에 독특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정도가 되면 인물들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순>이나 <바깥은 여름> 등의 인물들은 지극히 일상적입니다.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렇게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릅니다. 드라마 속 내용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몰입이 되는 것은, 감성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한 번 몰입하면 미처 몰랐던 것이 보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젖어듭니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로 보이거든요.
그 순간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남 이야기로 여겼는데 어느 순간 내 이야기로 느껴지고, 그래서 가슴앓이도 하는 것입니다.
<7년의 밤>은 예외적인 경우이겠지요. 하지만 TV 드라마도 평범한 작품만 보진 않지 않나요. 예외적인 작품들을 통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이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가 나옵니다. 형제 간의 살인은 흔치 않은 이야기이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생각이 있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간접 경험으로라도 상상해 보고 경험해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평생 살면서 ‘한겹’의 인생을 삽니다. 나의 생각과 감정, 좋아하는 음식과 맛집과 기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소수만이 이웃이 될 뿐, 넓은 세계로 가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합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보면 테러범이 아닌, 평범한 이슬람 사람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습니다. 논문으로는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지만, 소설에서 다루는 두 여인의 삶을 통해 그곳의 삶과 아픔이 단번에 보입니다.”
문학 통한 간접 경험, 나와 성경 인물들 삶 읽어
자기 힘으로 살기 경험하라고, 모세에 광야 허락
하나님께서 주신 두 가지? ‘자유의지와 상상력’
-소설을 통해 성경을 읽을 수 있군요.
“성경이 많이 다루는 약자들의 삶에 우리가 공감하지만, 구체적 삶의 모습은 알기 힘듭니다. 하지만 소설 속 여인들에게서는 그것이 단번에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7년의 밤> 작가는 추리와 달리, 스릴러를 썼습니다. 범인이 누군지 독자들에게 알리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때문에 작가는 거침없이 범인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입니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벼랑 끝에 서 보기 전까지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법입니다. 주인공 최현수도 벼랑 끝에 서서야 자기 삶을 처음으로 복기하고,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성경에서 그런 삶을 찾는다면, 야곱이 있겠지요. 얍복강에서 그는 처음으로 절망하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기도합니다. <7년의 밤>에서는 최현수가 그렇게 등장합니다. 우리는 야곱이 얍복강에서 어떻게 기도했을까 상상만 하지만, <7년의 밤>을 읽으면 단번에 입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학은 그런 경험을 하게 합니다. 감정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간접 경험의 힘을 통해, 나를 읽고 성경 인물들의 삶도 읽어냅니다.
우리는 모세를 위대한 선지자, 예언자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기 전, 긴 절망의 시간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다시 부르심을 받을 때 그는 80세였습니다. 그 전 40년은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매일 양을 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매일 사막의 먼지를 마시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에 대해, 자기 인생에 대해 많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런 고민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경 인물들을 선만 꽂으면 바로 행동하는 로보트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짓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경험해 보라고, 모세에게 광야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가 자유의지와 상상력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엄청난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그런 상상력이 취미생활이나 재능, 직업, 신앙생활, 교회 직분에까지 연결되면 우리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요.
SF를 읽으면 우리가 사는 좁은 세계에서 우리 시선이 은하계 끝까지 가게 됩니다. 그 넓은 은하계 바깥에서 한 사람을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욥입니다. 하나님 시야에서는 욥만 보였습니다. 시야를 넓히고 좁히는 훈련을 해야, 사고력이 증진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이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이, 10대 때 SF 매니아였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