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기독교 정신을 근대 문학에서 발견한 반 고흐
일부 학자들 반 고흐 생애 절반 기독교 버렸다 주장
성경 옆 에밀 졸라 『삶의 기쁨』 소설 배치 증거 삼아
빈센트 생애에서, 기독교 신앙 중단 없었던 점 간과
동시대 문학 등장, 성경과 함께 읽으면 유익 알리려
뉘엔 시절에 제작한 <성경이 있는 정물>(1885)은 <감자먹는 사람들>(1885)과 함께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감자먹는 사람들>이 등장인물을 신중하고 주의 깊게 처리한 데 비해, <성경이 있는 정물>은 갈색 테이블 위에 성경과 소설책을 숨가쁜 붓 터치로 그려낸 유화이다.
<감자먹는 사람들>과 표현상 차이가 나는 것은 고흐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렘브란트(Rembrandt)와 프란스 할스(Frans Hals)의 그림을 보고 받은 감동이 컸기 때문이다.
한 번의 붓질로 인물을 그려내고 별다른 수정을 가하지 않는 것을 그는 신기하게 여겼다. 이후 빈센트는 “나도 번개처럼 빨리 그릴 것이며 더 많은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그림은 목사였던 부친 테오도루스가 사망한 직후에 제작한 작품이며,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 테오도루스가 사망하자 빈센트는 평소 부친이 사용하던 성경책에 주목하였다. 교회는 설교단의 성경책을 보관하였고 미망인이 가족의 성경책을 보관했기 때문에, 어머니 안나 코르넬리아가 동생 테오에게 부쳐 주라고 하여 빈센트가 잠시 맡아 보관중이었다.
성경책은 모서리에 구리를 대어 만들고 이중 놋쇠 장치로 되어 있다. 빈센트는 성경책을 펴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거룩한 희생 제물이 되신 메시아를 예언하는 이사야 53장이 보이도록 하였다.
작가는 탁자 위에 천을 깔아 그 위에 성경을 올려놓았고 책 앞에 노란빛이 감도는 에밀 졸라(Emil Zola)의 『삶의 기쁨』(La Joe de vivre)을 배치하였다.
빈센트가 책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집안 환경과 관련이 있다. 빈센트 가족은 목사관에서 매일 저녁 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또 가족은 함께 소리를 내어 책을 읽었는데, 이는 가족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신앙을 내면화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의 집안에서 성경은 단연 최고의 책으로 손꼽혔다. 테오도루스 집안 아이들은 유년시절 성경과 함께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인어공주』와 같은 이야기와 헤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디킨스와 에드워드 불워 리턴의 최신작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빈센트가 청년이 되어서 항상 책을 옆에 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 그림을 아버지와 아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서 나온 책자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생활관의 차이를 상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세속 소설을 읽을 가치가 없는 것, 타락한 영혼의 산물로 폄하한 반면 아들은 세속 소설을 아버지에게 권할 만큼 애정을 갖고 있었다. 『삶의 기쁨』 책자가 덮여 있는 것은 근대문학에 대한 아버지의 불편한 심경을 표시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점점 나이가 들고 계시고 너나 내가 동의할 수 없는 편견과 낡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내가 미슐레나 빅토르 위고가 쓴 책을 읽는 모습을 보시면 아버지는 도둑질이나 살인, 혹은 ‘부도덕’을 연상하시지. 터무니없는 일이지 않니?”(1881. 11. 18)
부자는 세속 소설에 대해 번번이 시각차를 보였으며, 이는 아버지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결과만을 안겨주고 말았다.
어떤 사람은 이 그림을 두고 빈센트가 복음을 떠난 표시로 본다. 츠쿠사 고데라(Tsuksa Kodera)는 반 고흐 생애의 절반은 광적인 신앙에 빠진 시기이고 나머지 절반은 자연신앙을 좇아 기독교를 완전히 버린 시기로 간주했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면 졸라의 소설을 배치함으로써 전통적인 기독교를 부정하였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빈센트의 생애에서 기독교 신앙이 중단 없이 이어졌다는 것을 간과한 분석이다. 아를에서 빈센트와 지냈던 고갱은 “네덜란드인다운 그의 두뇌는 성경으로 불타고 있었다”고 전했다.
부자 간의 대립으로 보는 학자들은 빈센트가 아버지의 권위적인 종교성을 나타내기 위해 성경을 크게 그리고, 현대의 악덕에 대한 관용을 상징하는 소설을 작게 그려 상충된 가치관을 표상하였다고 여겼다.
근래에는 두 서적의 상반된 측면보다는 같은 메시지에 주목하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술사학자 나오미 M. 마우어(Naomi Margolis Maurer)와 케슬린 에릭슨(Kathleen Erickson)은 빈센트의 기독교 영성에 주목하여, 두 책의 기조에 같은 흐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우선 <성경이 있는 정물>에서 성경이 펼쳐진 이사야 53장 3-5절은 그리스도가 희생양으로서 겪을 수난을 예고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들 학자는 『삶의 기쁨』에 타인을 대신하여 희생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삶의 기쁨』은 나자레(Lazare)와 파울린(Pauline)이 중심 인물이다.
나자레가 동료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반해, 파울린은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배반당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불쌍한 고아 파울린은 라자레가 낳은 아이까지 거두지만 철저하게 이용만 당한 후, 역설적으로 그 가정에 희망이요 등불이 된다.
빈센트가 성경책과 졸라의 소설을 한 공간에 배치한 것이 우연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면서도 사랑과 긍휼을 잃지 않은 파울린에게서 ‘위대한 슬픔의 사람’(Great Man of Sorrows)(사 53:3), ‘병든 영혼의 의사’(눅 4:23)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것이다. 빈센트가 주목한 인물은 그리스도와 같이 ‘슬픔 중에도 기뻐할 줄 아는’(고후 6:10) 파울린이었다.
그가 동시대 문학을 등장시킨 것은 성경을 소설과 동격으로 보거나 대체하려는 뜻이 아니라, 소설이 성경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과 소설을 함께 읽는 것의 유익함을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기독교 정신을 잘 이해시키는데 예술작품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졸라의 소설 속에서 복음을 보았듯이, ‘렘브란트 속에 복음서’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빈센트의 뜻을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으로 남지만, 그가 기독교 정신을 그 시대문화 속에서 찾아내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받을만하다.
같은 예술품이라도 해도 육체의 눈으로 제작된 것이 있고, 하나님에 의해 각성되고 밝게 비추어진 상상력으로 그려진 것이 있다. 고흐는 후자가 기독교 고전 작품뿐 아니라 일반 작품에도 내재해 있다고 보고, 이를 동시대 몇몇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찾아내고자 했다.
그는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영토라는 점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그 점이 그가 적극적으로 문화예술에 참여하고 참신한 동시대의 언어로 복음을 탐구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의 자세는 기독교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와 호흡하는 예술에 관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 예술가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주리라 생각한다.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