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선교’ 전면에 내세운 유일한 워크숍 취소돼”
화해와 일치 목소리 계속, 우크라이나 사제 격려도
한국인 배현주 박사 한 시간 성경공부 인도도 호평
불협화음 많은 시대, 하나되자 외침 아름답고 고상
독일 카를스루에(Karlsruhe)에서 8월 31일 개막한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가 중반에 접어든 가운데, 현지에서 총회를 참관하고 있는 최덕성 총장(브니엘신학교)이 소회를 전했다.
이번 총회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Christ’s love moves the world to reconciliation and unity)’이며, 전 세계에서 3천여 명이 모였다. 한국에서도 2백여 명이 현지까지 가서 참석 중이라고 한다.
최덕성 총장은 3일 오전(현지시간) 본지와의 통화에서 “총회 주제처럼 인류가 화해하고 일치하자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전쟁을 반대하고, 빈부 격차도 줄이며, 자연과 인간이 코로나19 등으로 드러난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공존하고, 탄소를 줄이자는 내용들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총장은 “많은 인종들이 다양한 문화에서 참석해 각자 전통의상을 입고 있어 흥미롭다. 한국에서 목회자들의 칙칙한 복장만 보다가,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남미 참석자들을 보니 색다르다. 마치 만국박람회를 참석한 기분”이라며 “그리스도인들도 로마가톨릭부터 정교회까지 다양한 전통에서 참가했다.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고 전했다.
그는 “‘화해와 일치’라는 주제처럼 참석자들이 누구와도 하나될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주 회의에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발언이든 기도든 모두 초점이 거기에 있다”며 “불협화음이 많은 시대에, 하나 되자는 외침은 아름답고 고상하다. 실제로 만나는 분들마다 아주 친절해서 감동적”이라고 호평했다.
또 “우크라이나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에서도 참석했는데, 우크라이나 사제들을 두 차례나 격려하는 시간이 있었다”며 “이곳이 유엔은 아니기에 직접적인 성과는 없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더라. 그리스도인들의 사명 중 하나가 ‘화해와 일치’인 만큼, 그들의 주장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배현주 박사의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참석한 그는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한 시간에 걸쳐 성경공부를 잘 인도하시더라”며 “‘예수가 무리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다’는 내용의 성경 본문을 통해 기독교인이 세상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고, 피조물도 긍휼히 여겨야 하며,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눈으로 바라보자는 말씀을 전하고 토론하게 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31일부터 나흘째 참석 중인데, 계속 정의와 평화, 화해와 일치, 자연을 탐욕의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자연과의 상생, 기후 문제 등을 계속 논의했다”며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고 절제해야 하며, 불편해지더라도 핵원자력을 축소해야지 자꾸 늘려선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했다.
예배 대신 기도회, 복음과 십자가 이야기 전무해
하나님의 선교와 정의 구현, 환경 개선 등만 강조
‘복음화와 선교‘ 워크숍 취소, 아무런 설명도 없어
아쉬움도 전했다. 구체적으로는 “예배 대신 ‘기도회’라고 하더라. 예배부터 드리던 부산 총회와 반대로, 회의를 먼저 진행하고 야외에서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찬송도 부르고 설교도 한다”며 “안디옥 교회 대주교가 했던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해자이시다’는 한 마디 외에는 4일간 총회 주제인 화해가 ‘예수님을 통해’ 이뤄진다든지,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된 자가 세상 문제를 책임지고 잘 해결해야 한다든지 메시지는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덕성 총장은 “사실 예수님은 들러리로 서 있을 뿐이고, 각종 세상사 문제에 모든 관심이 가 있다. 전체 이야기가 거기 집중돼 있는 것”이라며 “화해, 상생, 일치, 평화, 정의 등을 계속 이야기하니 얼핏 보기에는 참 좋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이야기’가 전혀 없다. 총회 주제 앞부분의 ‘그리스도의 사랑’ 역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최 총장은 “그것이 이미 전제가 돼 있어서 굳이 거론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을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그 복음의 핵심을 강조하다 보면, 서로의 견해 차이가 커지기 때문에 꺼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매일 일정마다 처음 시작하는 기조강연과 토론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그런 주제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여기서는 그런 문제에 무관심하다”며 “미시오 데이(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사라는 주제, 악을 정죄하고 정의를 구현하며 환경을 개선하고 심지어 동물의 권리를 보존하고 기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쪽으로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93개 주제의 워크숍 중 ‘복음과 선교’를 전면에 내세운 유일한 워크숍이었던 4번 워크숍(Evangelisation as a test to our ecumenical vocation: Transcending borders, building relationships, strengthening witness)이 취소됐다”며 “아무런 설명 없이 취소됐다는 공지만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상태라 영문을 모르겠다. 이곳은 종이로 된 문서를 전혀 만들지 않고, 스마트폰으로만 모든 공지를 하고 있다. 참관인들을 위한 안내 시스템도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최덕성 총장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사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그런 이야기는 언급조차 없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없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다”며 “막연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세울 뿐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연도 이웃도 원수도 사랑하자고 한다. 종교 간 대화 맥락에서는 타종교에 대한 사랑도 될 것”이라고 했다.
최 총장은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핵심이 무엇인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오셔서 죽으셨고, 따라서 우리도 그와 함께 다 죽었다는 것”이라며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죽게 되었지만 다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우리가 다시 살게 됐다. 희생제물 되셔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로 그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타종교인 개종 노력, 갈등 조장한다 비판 목소리
WCC 기조, 타종교인들 기독교인 개종 말라는 것
화해와 일치에 조건 없어, 타종교와도 일치 추구?
그는 “기조강연에서 얼핏 들었는데, 그동안 기독교가 타종교인들을 개종시키려 노력했지만 그런 노력들이 갈등을 조장하고 화해와 일치를 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도 하더라”며 “기본적으로 WCC의 기조는 타종교인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지 말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WCC는 화해와 일치에 대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 타종교와도 일치하자는 것인가”라며 “‘예수 안에서’의 화해가 아니라, 인도주의적 사랑을 내세운다. 예수님을 도덕과 윤리적 모범으로 제시하면서, 그 윤리적 모델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공식 문서를 통해 더 심층적으로 판단하고 싶다. 이전 총회들과 달리, 이번 총회는 중요 모임들은 유튜브로 중계하고 있더라”며 “종이 문서가 없어 애로가 많다. 총회가 끝나면 돌아가서 더욱 심층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논제’를 비텐베르크에 내건 후 7개월 만에 스승의 주선으로 하이델베르크에 와서, 자신의 ‘십자가 신학’과 로마가톨릭의 ‘영광의 신학’을 대조하는 논쟁을 펼쳤다”며 “지금 WCC의 여러 프로그램들이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얼핏 보기엔 참 좋다. 다인종들이 화해하고 양보하고 친절하지만, 그것이 다 인간이 주체가 된 ‘영광의 신학’”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그런 노력도 필요하다.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십자가 없는 신학 체계는 결국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영광의 신학’일 뿐”이라며 “지금 WCC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십자가 신학’이다. 하지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저라도 와서 한 마디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카를스루에로 오기 전, 루터의 하이델베르크 논쟁 기념 동판을 찾아 묵상했다. 루터처럼 조금이라도 변혁을 가져오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고 참석했지만, 저는 일개 참가자일 뿐”이라며 “웬만한 결의문은 이미 다 작성됐을 것이다. 논의를 참관해 보니, 마치 북한처럼 결정한 대로 모두 따라간다.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