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와 반 고흐가 바라보고 그려낸 ‘선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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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렘브란트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1638)
주인공 풍경 속 숨겨, 화면 귀퉁이에 사마리아인
타인 무관심한 사회 속 선행 본질 강조하는 의도

▲렘브란트,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 패널에 유채, 66x46.5cm, 1638, 크라쿠프 국립미술관 소장.

▲렘브란트,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 패널에 유채, 66x46.5cm, 1638, 크라쿠프 국립미술관 소장.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은 ‘선한 사마리아인’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작한 바 있다. 1641년 경 <주막의 선한 사마리아인>,1644년 경 소묘 <다친 자를 치료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그리고 1648년 경 제작한 상처입은 사람을 주막까지 데리고 가는 소묘작품 등은 사마리아인이 다친 사람을 돕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유화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1638)을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다른 작품이 모두 성경의 스토리라인에 의해 전개되는 데 비해, 이 그림은 주인공을 풍경 속에 숨겨놓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주인공인 사마리아인이 화면 귀퉁이에 자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풍경화를 그리고자 했으나, 마지못해 사마리아인을 삽화처럼 덧붙였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이 견해는 정확한 지적은 아닌 것 같다. 미술사학자 오토 벤네쉬(Otto Benesch)에 따르면, 중심 인물을 광활한 풍경의 가장자리에 배치한 것은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회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의 본질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림의 주된 요지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화면 맨 오른편에 말에 태워진 상처입은 사람이 보인다. 그의 몸은 축 늘어져 있으며, 간신히 말에 의지하여 주막으로 실려가고 있다. 반면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화면 중심에 있는 다리를 건너 서둘러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이 등장한다. 큰 나무 곁에 잘 차려입은 두 명의 사냥꾼, 즉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과 동행자가 목격된다. 둘은 이웃의 곤경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환기시키기 위한 의도로 파악된다.

사냥꾼을 등장시킨 것은 풍경화를 시대 감각에 맞게 해석하려는 렘브란트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풍경화를 그릴 때 동시대적인 생활상(밭일을 하는 농부나 풍차)과 이국적인 역사적 요소(절벽 위의 고성)를 넣어 그림을 풍부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풍속적 모티브(genre motif)를 추가해 쉽게 와 닿도록 연출하였다. 한쪽에서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인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여가를 즐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보다 조금 앞서 활동한 네덜란드 풍경화가 허쿨리스 세헤르스(Hercules Segers)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헤르스는 광대무변한 공간을 창조해 내면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경화로 알려진 화가였다. 렘브란트는 세헤르스의 작품을 8점이나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세헤르스에게 심취했는지 알게 해준다.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캔버스에 유채, 60x73cm, 1890. 크뢸러 뮐러 뮤지엄 소장.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캔버스에 유채, 60x73cm, 1890. 크뢸러 뮐러 뮤지엄 소장.

빈센트 반 고흐 작품 <선한 사마리아인>(1890)
지치고 병든 자신 치료해 줬으면 바람으로 제작
종교화 안 그리던 고흐, 전통적 신앙 회귀 암시해

렘브란트를 존경하였던 빈센트 반 고흐도 이 주제를 지나치지 않았다. 빈센트의 <선한 사마리아인>(1890)은 여행자가 피습당한 사람을 말에 태우는 장면만을 크게 부각시켰다.

화면에서 다친 사람을 스쳐간 제사장과 레위인을 볼 수 있으나, 빈센트는 자비심이 많은 사람과 다친 사람에 초점이 맞추었다. 그는 극적인 색채 대비를 통해 화면 중앙에 위치한 인물 형상을 부각시키면서 풍경을 차분한 색조로 표현하였다.

뒷배경은 평야가 아닌 골짜기로 처리했는데, 후기 작품답게 짧고 강한 터치를 특징으로 하고 있고 소용돌이치는 듯한 붓의 세기는 위급한 순간의 긴장감을 전달해준다.

뜻밖에 빈센트는 평소 종교적 테마의 그림을 선호하지 않았다. 빈센트는 근대적 신앙을 모색하기 위해, 종래의 익숙한 종교적 도상보다 도미에와 밀레, 이스라엘스를 비롯한 동시대 화가들에게 눈을 돌렸다.

이런 입장은 베르나르와 고갱이 ‘감람나무의 그리스도’를 제작했을 때 취했던 냉소적인 반응에서도 볼 수 있다. 그가 존경하던 화가 프랑수아 밀레도 어릴 적부터 성경을 배우고 평생 성경만 읽었어도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적이 없다며 반박 근거로 삼았다.

그런데 이 말을 한 뒤 몇 달이 되지 않아 제작한 것이 그의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그가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서라도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고흐가 프랑스 프로방스의 생레미 요양원에 있을 때 지치고 병든 자신을 누군가 치료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작된 것이다.

조셉 룰랭과 그의 부인이 보호자를 대신하여 빈센트를 보살폈는데,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자비와 긍휼의 덕목을 의인화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였다. 이 그림을 그린 후 “무엇보다 내게 위안이 되었다”(1889. 5. 19.)고 했다.

성경의 서사를 주제로 그리는 것이 위안을 주었다는 말은 그가 전통적인 신앙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그가 마음 속에 간직했던 “딱딱한 껍질 속에 숨어있는 쌉쌀한 과육과도 같은 그리스도가 주는 위안”(1888. 6. 23)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던 셈이다.

고흐 버티게 해준 것, 기독교 신앙과 존경한 화가
주인공 ‘사마리아인’ 아닌 ‘강도 만난 사람’ 같아
강도 만난 사람 자신 투영, 치유받고픈 심경 고백

그를 버티게 해준 것은 기독교 신앙과 그가 존경하던 화가들이었다. 빈센트는 렘브란트의 그림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이 머리에 붕대를 감은 부상당한 사람을 말에 태워 여인숙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자신의 그림에다 그대로 표현하였다. 들라크루아의 모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렘브란트의 화풍에 더 기울어져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림의 주인공이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강도 만난 사람’이란 생각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빈센트는 강도 만난 사람에 자신을 투영시켜 예수님의 치유를 받고자 하는 심경을 고백하였다.

부상을 입은 사람은 부축을 받으며 말에 태워지고 있는데, 사마리아인이 아주 건장하게 표현된데 비해 말에 태워지는 인물은 피습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다. 아마 빈센트 자신의 건강 상태를 염두에 두고 그렸음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빈센트도 한때 힘 닿는대로 약한 사람들을 돌보던 시절이 있었다. 마크카스 탄광에서 사역하던 시절에 그는 빵과 우유, 양말, 모포를 가져다주면서 가난한 광부들을 위해 살았다.

그가 보여준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사람들을 사랑한 삶의 모습은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감동적이다. 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자신이 돌봄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찰스 쳇햄(Charles Chetham)는 이 작품을 ‘단순한 복제품’으로 치부하였으나, 캐슬린 P. 에릭슨(Kathleen Powers Erickson)은 사도적 삶을 따르는 진지한 서약으로 돌아가려는 다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단순 복제품 아닌, 사도적 삶 따르는 진지한 서약
하나님 나라 소망하던 빈센트, 주님 임재 기대해
예수 그리스도 없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어느 모로 보나 병실에 있던 빈센트가 ‘심심풀이’로 사마리아인을 그렸다는 것은 신빙성이 약하다. 그러기에는 작품 내용이 심각하다.

피할 수 없는 삶의 암초를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겠지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였던 빈센트는 건강 악화라는 ‘복병’을 만나 주님의 손길과 임재를 바라는 마음을 그림에 투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꼭 나와 같은 처지라고 느꼈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림을 보는 내내 위기에 빠진 빈센트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역시 빈센트와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발을 디딜 바닥조차 없는 깊은 수렁에 빠졌는데 점입가경으로 물이 들이닥치는 경험 말이다(시 69편).

이제 남자가 할 수 있는 길은 구조자에게 매달리는 것뿐이다. 우리는 강도 만난 사람처럼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빌 4:13).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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