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통해 창조주의 아름다움과 영광 증거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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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프레더릭 E. 처치, 피조세계에 새긴 ‘상형문자’

웅대한 스케일 자연 아름다움과 숭고함 묘사
자연에서 계시 찾아낼 때마다 기뻐했던 화가
청교도 바로크, 반종교개혁 예술에 대한 반응
하늘·땅·빛 속에서 찾아낸 하나님 임재, 위엄

▲프레더릭 처치, 에콰도르의 안데스, 캔버스에 유채, 151x223cm, 1855. 레이놀다 하우스뮤지엄 소장.

▲프레더릭 처치, 에콰도르의 안데스, 캔버스에 유채, 151x223cm, 1855. 레이놀다 하우스뮤지엄 소장.

미국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종종 웅대한 스케일을 지닌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즐겨 묘사하였다. 이런 특성은 허드슨 리버스쿨의 화가 프레더릭 E. 처치(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의 풍경화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프레더릭 E. 처치가 풍경화를 자신의 주요 장르로 삼은 것은 그의 스승 토마스 콜의 도움에 힘입은 바 크다. 처치는 토마스 콜의 지도하에 캣스킬, 이스트 햄프톤, 롱 아일랜드, 버크셔 등지로 스케치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법, 그것을 옮기는 수법과 양식을 배웠다.

이들의 작품에는 성직자나 성인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중세의 도상학적 관례를 계승하기보다 프로테스탄트 작가들답게 자연을 매개로 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였다.

<에콰도르의 안데스>(1855)를 보면, 드넓은 산맥의 신비스런 풍광을 놓칠세라 미세한 부분까지 묘출하고 있다. 붓질은 묘사에 가려 눈에 띄지 않으며 대신 안데스산맥의 생태계만이 두드러질 뿐이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해를 중심으로 화면 우측에는 높은 데서 아래쪽으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고, 좌측에는 야자수가 위치해 있다. 화면 전체에는 산골짜기에 내려앉아 있는 안개가 점차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는데, 밤이 끝나고 낮이 시작되는 장면을 주의 깊게 묘출하고 있다.

이같은 상세한 묘출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회화론과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러스킨은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강조하면서 모든 형태의 암석, 모든 형태의 땅, 모든 형태의 구름은 동일한 성실함과 정확성으로 필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허드슨 리버스쿨 화가들은 존 러스킨의 저술을 애독하였는데, 그 영향의 흔적이 이 작품에서도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에콰도르의 안데스>(The Andes of Ecuador, 1855)가 주는 첫인상은 안데스 산맥의 광활하고 신비로운 모습이다. 처치는 그림의 세부적인 부분에 신경을 쏟으면서도 전체의 이미지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개념을 꼽는다면, 그것은 ‘무한’의 개념이다. 처치는 자연의 웅장함과 빛의 효과, 드넓은 하늘 등을 통해 감상자에게 ‘무한’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하였다. 러스킨은 자연이 갖는 무한함에 대한 취향이 ‘신의 무한함’에 대한 우리의 즐거움을 예시한다고 주장했는데, 처치의 그림은 이 이야기를 구현하고 있는 것같다.

러스킨이 말한 ‘무한’을 미적인 범주로 간주한 것은 처치의 예술에서 특히 중요했는데, 그의 웅장한 풍경은 단순히 자연을 아름다움이나 위대함 때문만이 아니라 심지어 어떤 상징적 진실을 암호화하려는 시도가 아님을 암시한다.

그는 말했다. “빛은 끝이 없다. 우리는 그 빛의 순수함을 기뻐하면서 그 광명의 무한함을 느낀다.” 이 무한의 표현은 “보이는 것 중에서 덜 물질적이고 덜 유한하며 땅의 감옥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하나님의 본성에서 가장 전형적이고, 그분의 영광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처치가 애용한 모티브인 일출과 일몰, 그리고 바다나 산 위의 빛 등은 하나님의 무한함을 암시하는 이미지들이었다.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은 자연에서 창조질서를 발견하기보다, 경외심이나 숭고함 등 주관적인 부분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처치가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신의 창조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이지 마음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힘”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프레더릭 처치, 광야의 황혼, 캔버스의 유채, 1860, 클리브랜드 미술관.

▲프레더릭 처치, 광야의 황혼, 캔버스의 유채, 1860, 클리브랜드 미술관.

앞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광야의 황혼>(1860) 역시 일몰 장면을 다루고 있다. 여름 어느 날 그의 스튜디오 창밖으로 바라본 광경을 실어낸 것이다.

이 작품에서 호수나 주위의 산, 나무들은 정교하고 조심스럽게 그려졌으나 창공을 뒤덮은 노랗고 붉은 구름은 화면의 균형을 깨뜨린다. 땅의 고요는 하늘의 엄습으로 긴장감이 조성되고 분위기는 급변한다. 왜 그는 이런 화면을 조성했을까? 여기에 담긴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처치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친 호레이스 부시넬(Horace Bushnell, 1806-1876)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전체의 세계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는 상형문자이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만날 수 있으므로, 예술가는 기록된 함의를 찾아내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 주장은 처치의 작품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처치는 광야에서 종교적 중요성을 발견하였다. 붉게 물든 하늘의 캐노피는 하나님의 주재 아래 세상이 놓여있음을 암시하고, 하늘 아래 호수와 나무들은 어둠에서 벗어나고픈 절박한 심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는 해 너머로 빛이 부활의 시그널을 발신하고 있다. 깊은 밤이 곧 찾아오고 세상은 흑암의 세계로 빠져들겠지만, 곧 생명의 빛이 찾아와 세상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미술평론가 헨리 터커맨(Henry Tuckerman)은 “이보다 빛의 효과가 압도적인 적도 없었다. … 그것은 문자 그대로 천상의 불로 넘쳐나고 빛이 숭고한 시편처럼 영광으로 빛난다”고 했다.

처치가 자연만을 그리다보니 빈축을 살 때도 있었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은 처치가 자연 묘사에 전념한 나머지 사회 현안 문제에 태만하다는 점을 문제삼기도 했다.

그러나 처치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믿음의 사람이 진리와 생명의 광채를 반사하는 것처럼, 그는 자연 속에서 그러한 찬란한 영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화가는 자연을 통해 창조주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증거해주는 정교한 질서와 배열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생존 시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받았으나, 사망 후 그의 존재는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졌다. 그러던 중 미술사학자 데이비드 헌팅턴(David Huntington)은 1966년에 처치의 예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그의 사망 후 처음으로 헌정 전시회를 기획하며 그의 존재를 알렸다.

헌팅턴은 개신교 작가와 가톨릭 작가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는 빛의 활용에 있다면서, 처치의 작품이 “최초의 청교도 바로크의 한 부류, 정확히는 반종교개혁 예술에 대한 뒤늦은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적 반응”이라고 평했다.

처치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 화가들이 ‘자연’을 대할 때 그것을 창조주의 거룩을 드러내는 처소로 파악했고, 그것의 영롱함, 생명, 반짝임을 통해 창조주의 영광을 바라보았음을 우리에게 다시 알려준다.

“세상의 사물들은 영적인 것들의 그림자를 드리우도록 디자인되어 있다”고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말했듯이, 화가는 하늘과 땅과 그리고 빛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위엄을 찾았다.

처치는 자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찾아낼 때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인생의 최고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의 삶과 예술은 이에 관한 성찰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 본다.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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