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목사의 설교노트 9] 시대를 보는 안목 기르기 (4) 포스트모던 사회
다양한 관점과 시선 공존, 최고 미덕은 관용
객관적 진리 거부, 기독교 대한 거부감 이해
권위 의심, 회의주의와 해체주의 직접 연결
모르는 사이, 시대의 가르침과 가치 물들어
방향성 점검이 잠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나누고 있는 글은 설교의 목표를 삶의 변화에 둔 설교자,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설교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시대 특성을 다룬 글입니다.
삶의 변화란 설교자 자신을 포함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청중의 삶의 변화를 말합니다. 청중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당연히 청중의 어느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할지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설교자는 청중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청중을 이해하려면, 청중이 살아가는 시대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 시대가 가진 특성은 첫째 소비 사회, 둘째 개인화 사회, 셋째 피로 사회 등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성에 대해 간략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포스트모던 사회
기독교 세계관, 성경의 가르침과 핵심 사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리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진리이고 성경에 바탕을 둔 기독교 세계관이 진리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가치는 다릅니다. 진리가 아닙니다. 시대가 변하는 것만큼 시대가 가르치고 강조하는 가치와 핵심 사상은 변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포스트모던 사회입니다. 포스트모던 사회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정의하기 어렵다 해서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마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일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포스트모던 사회가 가진 대표적 특성은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포스트모던 사회는 다양한 관점과 시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고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 보여주듯, 포스트모던 사회는 특정한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우월하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가치가 있고, 저마다 특징이 있으며, 저마다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최고의 미덕은 관용입니다. 관용은 미덕이고 좋은 것이지만, 관용이 절대적 가치를 가지게 될 경우 빚어지는 결과는 상상을 초래합니다.
관용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포스트모던사회는 당연히 객관적 진리를 부정하거나 배척합니다. 아니, 포스트모던 사회는 객관적 진리를 거부합니다. 객관적 진리가 있다고 말하거나 주장하면 획일주의라고 간주합니다. 배타적이며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 이 시대가 왜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표출하는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관용을 최고 미덕으로 삼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기독교는 배척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럽다고 할까요? 아니면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포스트모던 사회는 진리의 척도 또는 잣대를 개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진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각 개인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포스트모던 사회와 소비 사회 정신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사회가 개인의 가치를 절대화할 뿐 아니라 개인의 가치를 최상의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객관적 진리가 있다고 말하거나 객관적인 진리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관점을 따라 주변을 보면 기막히게 들어맞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야”, “난 내 감정에 충실했을 따름이야”,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내 인생 내가 삽니다”.
개인의 가치를 절대화한 이 시대 속에서 필연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는 사상이며 가치이자 언어입니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권위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객관적 진리가 사라진 세상입니다. 개인에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권위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의심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진리가 상대적이라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거나,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당연히 의심의 대상, 경계의 대상, 거리를 두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는 법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포스트모던 사회는 회의주의와 해체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치명적인 문제라고 해야 할까요. 포스터모던 사회는 도덕 기준을 개인에게 내주었습니다. 회의주의·해체주의와 더불어 개인의 위치를 절대적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습니다.
각 개인을 절대적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절대적 기준이나 객관적 기준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도덕이나 객관적인 윤리의식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개인화에 가속이 붙을 수밖에 없으며, 개인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가치가 확대되거나 깊이 스며들수록 도덕과 윤리는 모호한 어떤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 부분 역시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판단에 근거해 행동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범죄와 사건 사고는 도덕과 윤리, 권위와 절대 진리를 각 개인에게 넘겨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현 시대는 이 같은 특성을 지닌 포스트모던 사회입니다. 우리의 청중이 포스트모던 사회가 주장하고 강조하는 사상과 가치와 세계관의 융단 폭격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아가는 청중의 생각과 가치, 태도에는 포스트모던 사회가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가치가 스며들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의 사유화(私有化)라든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한다든지, 성경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진리에 대해 취사 선택적 태도를 보인다든지,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리 청중이 시대의 특성에 오랜 시간 노출됐기 때문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대의 가르침과 가치에 물들었기 때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사상과 가치가 미디어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혁철 목사
광주은광교회 선임 부목사
<설교자는 누구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