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다름과 차이, 인간 실존 조건이자 하나님 축복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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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원 칼럼] 바벨탑 이야기의 교훈

인간 사회, 다양성 통해 惡 제어돼… 다름과 구분, 인류 善 가능성 창조
성경, 획일적인 제국 정치에 반대… 레위기 율법, 구분과 다름에 근거
성소 바깥, 정결과 부정 공존 허락… 다양한 의견 공존, 사회 번영 기여

2023년 새해부터 고대근동과 구약 성경 권위자인 단국대 김구원 교수님의 칼럼을 월 2회 연재합니다. 김구원 교수님은 서울대 철학과를 거쳐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 시카고대 고대근동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하고 개신대에서 가르쳤습니다. 일반인과 평신도에게 구약과 고대근동 문화를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김 교수님과 함께, 구약과 고대근동의 렌즈로 보는 신앙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봅시다. -편집자 주

▲바벨탑,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 1563). ⓒ위키

▲바벨탑,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 1563). ⓒ위키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정치를 통해 스스로가 신이 되고자 한다. 즉 사람들의 뜻을 하나로 모아 엄청나게 큰 일을 이루려 한다. 그것이 인간이 침범해서는 안 되는 신의 영역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했으니 죄가 아닐 것이라 자위한다.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이 하늘을 도전하는 탑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모두 ‘한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 언어’란 한 뜻 혹은 한 생각으로 환언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 한 뜻이 되었다.

이것은 인류가 획일된 언어, 획일된 생각을 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를 잘 보여준다. 다행히 바벨탑은 완성되지 못하고 버려졌다. 인류가 바벨탑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인류의 언어를 나누셨기 때문이다.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들의 사상과 문화에 ‘차이와 구분’을 만들어 인류가 지구에 획일된 사회를 구현하기 어렵게 만드셨다. 즉 바벨탑 사건 이후 세계는 ‘친구와 적’, ‘국민과 외국인’, ‘내부자와 외부자’, ‘우리와 그들’ 사이의 구별이 인간 실존의 불가피한 일부가 되었다. 이런 실존적 환경을 무시한 정책으로 생존과 번영에 성공한 민족은 없다.

민족들 사이 구분이나 차이를 없애고 온 인류가 한가지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바벨탑 사건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민족들이 대화(한 언어)를 통해 합리적 동의에 이룰 가능성은 없다. 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크고 작은 전쟁과 갈등들이 끊이지 않았다.

온 인류가 한 가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강한 무리가 약한 무리를 힘으로 억압하는 일이다. 그 힘이 반드시 무력일 필요는 없다. 문화의 힘도 여기에 해당한다. 즉 소위 ‘주류’ 문화, ‘대세’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다른 생각과 문화를 억압할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이라도 그들의 생각에 반대하면 틀렸다고 들 것이다.

성경은 이런 ‘제국적’ 정치에 반대한다. 즉 차이를 없애고 모두 하나의 기준, 하나의 도덕, 하나의 법에 종속시키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세계 정부를 통해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바벨탑 이야기는 더 나은 미래 비전을 위해 다양한 민족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세계 평화가 올 수 있다고 가르친다. ‘세계 평화’가 좀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큰 악을 방지하는 일’에 다양한 민족들이 때로는 경쟁하며 때로는 협력하며 그들의 미래를 일구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말해 두자.

하나님은 정치적 작위을 통해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인류를 심판했다. 그 심판 내용은 인류를 뿔뿔이 흩어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심판 안에 두 가지 측면에서 은혜의 뜻도 담겨 있었다.

하나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 사회에 다양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악이 제어되는 측면이 있다. 하나님이 인류를 다양한 언어 민족으로 나누고 세계로 흩으셨을 때, 인류는 더 이상 신에 도전하는 악을 행할 수 없었다. 이것은 세계 내 다양성과 구분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의 크기에 제한됨을 보여준다.

둘째는 다름과 구분을 통해 인류 선의 가능성이 창조된다는 점이다. 바벨탑 사건을 구속사적으로 이해하면, 다양한 민족들의 구분이 생긴 후 하나님이 그 중 한 민족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그 선택된 민족을 통해 다른 민족들이 빛과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죄 지은 인류-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그분의 구원을 경험한 자-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파트너가 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여기서 유대인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인류를 복 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로 구별하지 않았다. 단지 선택된 자와 선택 받지 못한 자로 나눌 뿐이다.”

레비 스트로스가 의미하는 바는 선택받지 못한 자가 반드시 저주받은 자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선택받지 못하는 자는 선택된 자들을 통해 더 복된 존재가 될 기회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개념이 민족들 사이에 다름과 차이를 전제하지만, 그것이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차별적 대우로 결과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선택된 자도 축복의 통로가 되지 못할 때, 선민 지위를 잃을 수 있다.

다름과 차이가 인간 실존의 조건일 뿐 아니라 하나님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은 구약의 율법에도 잘 반영돼 있다. 특히 레위기 율법은 다름과 구분의 철학에 근거한다.

거룩의 기본적 의미는 ‘구분, 분리’이다. 레위기에서 창조주과 피조물 사이 구분은 고대 이스라엘인들 삶 속의 구별 원리-정결과 부정의 구별-로 작용한다. 즉 정결한 상황과 부정한 상황을 구분하는 정결법은 절대 타자인 창조주의 존재를 인간에게 상기시킨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창조주가 베푼 세계에 살면서도 창조주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레위기 정결법은 ‘인간이 창조주가 아님(Creator-Creature Distinction)’을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준다. 즉 정결법은 인간이 성소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레위기에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이 윤리적 개념은 아니다는 사실이다. 정결한 것이 선이고 부정한 것은 악이라는 개념은 레위기에 없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일상에서는 그 두 상태가 갈등 없이 공존하게 된다.

아버지 장례를 치러 부정하게 된 이웃, 매일 죽은 고기를 만져야 하는 정육점 주인, 아이를 출산한 새댁은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악이 아니다. 부정한 상태로 성소에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소위 ‘부정한 자들’은 하나님 앞과 사회 앞에서 아무 빚이 없다.

즉 하나님은 성소 이외의 영역에서 정결과 부정이 인간의 삶에 공존하도록 허락하셨다. 레위기에 따르면 세속 일상의 영역에서는 부정한 것이 반드시 틀린 것, 죄는 아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창조주와 인간의 구별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 속에 분리와 구분의 근거를 제공하지만, 성소 밖 대부분의 공간에서는 언제나 옳은 ‘내 편’과 늘 잘못된 ‘니 편’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벨탑 이야기가 생각과 문화가 다른 다양한 민족들이 보다 나은 미래 비전을 위해 평화롭게 경쟁하는 국제 질서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배경이 됨을 가르치듯, 레위기도 우리 사회 내 다양한 진영의 목소리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서로 공존하고 경쟁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번영에 기여함을 보여준다.

문제는 한쪽이 다른 쪽을 상생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아예 말살하려고 시도할 때이다. 이것은 정치로 바벨탑의 꿈을 이루려는 욕망과 다름 없다.

▲김구원 박사. ⓒ크투 DB

▲김구원 박사. ⓒ크투 DB

김구원 교수 저서

통독 주석 <사무엘상>과 <사무엘하>, <김구원 교수의 구약 꿀팁>, <쉬운 구약 개론(공저, 이상 이상 홍성사)>, <가장 아름다운 노래> 등이 있고, 역서로는 <하나님 나라의 서막>, <이스라엘의 종교>,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고대 근동 역사>, <고대 근동 문학 선집(공역, 이상 CLC)>, <구약 성서로 철학하기>, <에스더서로 고찰하는 하나님과 정치>, <출애굽 게임(이상 홍성사)>, <책의 민족(교양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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