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원 한인선교사협의회 전쟁대책위원장
러시아, 전력과 가스 등 집중 공격
전쟁 장기화돼 선교사들도 힘들어
우크라이나 통해 주변국들 복음화
2023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믿을 수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기습 폭격으로 시작된 불법 침공은 1년이 다 되도록 끝나지 않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와 군인들의 결사항전 의지로 선전하고 있으나, 많은 국민들이 죽고 남은 이들의 삶도 피폐해졌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예비군을 징집한 러시아 국민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본지는 2023년 새해를 맞아, 30여 년간 우크라이나에서 사역하며 밀과 콩, 옥수수 등 ‘세계 3대 곡창지대’로 불리던 우크라이나 현지 곡물들을 한국에 공급해온 김평원 선교사로부터 현지 소식과 한국교회가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 들어봤다.
김평원 선교사는 전쟁 직후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한인선교사협의회 전쟁대책위원회’를 조직해 난민들을 지원했고, 지금은 위원장으로서 현지와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해 11월에도 우크라이나 현지를 방문해 전기 발전기와 난방기구를 긴급 지원하고 현지 성도들을 격려했다.
-전쟁이 1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 일대 지역을 ‘돈바스(Donbas)’라고 합니다. 돈바스 지역은 2014년 이후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입니다. 러시아는 2014년 점령한 크름 반도와 연결된 육로인 ‘남부 벨트’를 확보해 연결점을 만들고자 동부 마리우폴을 넘어 남부 멜리토폴, 헤르손과 자포리자까지 4개 주를 침략해 합병시켰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서방 국가들의 지원으로 탈환 작전에 나섰습니다. 현재 러시아군은 키이우에서 퇴각하고, 동부에서도 고전하고 있습니다. 남부에서는 헤르손 지역을 되찾았고, 여러 지역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루 500-1,000명의 양측 군인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황은 어떠합니까.
“지난 11월에 가보니 우크라이나군은 결사항전의 자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각 전선에서 실질적·군사적 열세에 몰리자, 시리아 전쟁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알레포의 암살자’ 세르게이 수로비킨(Sergey Surovikin)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수로비킨의 기본 전술은 ‘초토화 작전’입니다.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초토화시켜 항복을 얻어내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푸틴이 그를 임명하면서 전쟁이 격화되리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의 취임 이후 민간인 시설에 대한 공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력과 가스 등 민간인들에게 직접적 피해와 고통을 줄 수 있는 곳에 집중 공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막 폭격이 시작되던 때로, 50% 가까이 전력이 손실된 상황입니다. 수도인 키이우는 전력량 때문에 4시간 단위로 정전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까지 간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러시아인들은 전쟁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인들은 독일 통일을 용인하는 대가로 그들과 나토(NATO)가 당시 국경선을 근거로 더 이상 동진하지 않는다는 밀약을 했는데, 서구에서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 턱밑까지 와 있으니 군사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합니다. 일부 수긍되는 측면이 있고, 러시아 선교사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백 번 양보해서 그런 정치적 이유가 있더라도, 현재 너무 반인륜적이고 국제법을 정면 위반하는 범죄 행위들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입니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세계 3대 핵강대국이었으나, 1994년 12월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Budapest Treaty)’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기로 하고 핵을 폐기했습니다. 러시아도 영국·미국과 함께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2013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이 대부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열망과는 반대로, 친서방 경제정책을 버리고 러시아와 관계 강화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촉발됐고, 2014년 2월 친서방 반정부 시민운동인 ‘마이단 혁명’을 통해 대통령은 쫓겨나 러시아로 도주했습니다.
그러자 러시아는 크름 반도(Crimean Peninsula)를 강제 합병했고, 도네츠크·루한스크 동부 2개주 친러주의자들을 부추겨 반군을 조직해 ‘우크라이나 내전’을 일으켰습니다. 앞장선 것은 친러 반군들이었지만, 막후 조정을 하고 군사와 무기를 제공한 것은 러시아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하루아침에 크름 반도를 잃고, 나라 전체가 내전으로 치달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침범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던 우크라이나는 안보를 위해 군사 동맹에 가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결국 나토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입니다. 군사 동맹에 가입해 러시아로부터 영토를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14년 페트로 포로셴코(Petro Poroshenko) 대통령에 이어 2019년 젤렌스키(Zelensky) 대통령까지 친서방·친나토 성향의 지도자가 취임했고,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전쟁이 시작될 때와 현재를 비교하면 어떤가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정보기관들조차 러시아가 전면전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유일하게 경고한 나라가 미국이었는데, 미국도 이렇게까지 전면적일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다른 선교사님들도 저도 국가 방침에 따라 급히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단기간에 전쟁이 끝나고 다시 돌아오리라는 기대감 또는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은 3개월 정도면 끝나리라 예상하면서,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장기화되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생활 면에서의 어려움을 비롯해 자녀 교육에서의 어려움, 사역하던 현지 교회의 어려움도 겹치게 됐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심리적·정신적·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님들도 나오게 됐습니다.
이후 전쟁이 기약없이 장기화되면서, 장래 방향이나 사역지의 미래 등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닥쳐오는 상황입니다.”
-현지 교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처음에는 주로 키이우 지역을 중심으로 폭격이 이뤄졌기에, 일시적이나마 해외로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희 성도님들도 체코와 슬로바키아부터 크로아티아, 폴란드, 멀게는 독일로까지 피난을 갔습니다. 당시 남자들은 대부분 징집 대상 연령이었고 해외 출국이 금지되었기에 고국에 남아 사명을 감당하고, 여자 성도들과 자녀들만이 피난을 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해외로 나가지 못한 성도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여러 어려움 가운데 전쟁에 나가기도 하고, 남은 교회를 지키는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성도들은 굉장히 열정적이고 신앙적으로 복음적이고 헌신된 분들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및 CIS 국가들 중 개신교가 가장 부흥하던 나라였기에, 복음적으로 좋은 신앙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으로 주변 국가들에 흩어진 우크라이나 디아스포라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적으로 견고히 서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똘똘 뭉쳐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료 선교사들로부터 편지를 통해서도, 해외로 나간 성도들의 뜨거운 신앙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모습에, 폴란드 개신교 지도자들이 큰 도전을 받고 ‘복음 배가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폴란드는 성도가 10만여 명으로 복음화율이 0.3%에 불과했는데, 이번 사태로 도전을 받고 새로운 회개 운동과 배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폴란드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디아스포라들이 들어간 주변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최근 두 번의 대형 난민 사태가 있었습니다. 시리아 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입니다. 선교사적 관점에서 시리아 난민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무슬림들을 흩으셔서 복음을 듣게 하는 측면이 있다면, 우크라이나는 이미 복음으로 무장한 성도들을 흩으셔서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복음이 황폐화된 유럽에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통계를 내기 힘들지만, 우크라이나는 정교회까지 국민 70%가 기독교인입니다. 개신교인은 2% 정도로 발표하고 있는데, 5%는 된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러시아는 ‘공포와 추위를 통한 굴복’이라는 개념으로 전쟁을 이끌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겨울을 잘 보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다행히 올해 그리 춥지 않지만, 우크라이나의 겨울은 춥고 습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나라 내부에서도 800-1,00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겨울을 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난방기구와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를 만드는 발전기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봉사단과 우크라이나 한인선교사협의회 전쟁대책위원회가 협력해 발전기를 보내는 운동을 하고 있고, 40대 가까이 보냈습니다. 한교봉에서 구호성금으로 지원하고, 저희 위원회가 구매나 물류, 운반까지 맡아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한국 선교사님들은 주로 어떻게 활동하고 계신가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부는 우크라이나에 다시 들어가 구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한 달 단위로 입국 허가를 내주고 있습니다. 다른 그룹은 인근 국가인 루마니아·폴란드·불가리아·몰도바 등에서 난민 구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저처럼 한국에서 주어지는 사역들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계나 언론, 구호단체 등과 협력해 우크라이나를 돕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 우크라이나로 어떻게 가게 되셨나요.
“88 올림픽 때 소련, 지금의 러시아 선수들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소련 선수들에 대한 전도 운동을 하면서 선교 비전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공산권 수교가 이뤄지지 못한 때여서, 1990년 3월 먼저 폴란드로 가서 러시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다, 우리나라가 소련과 수교하자마자 그해 10월 모스크바 대학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제자화 사역을 하다, 수교 이후 여러 선교사님들이 모스크바로 오시는 것을 보고 이듬해인 1991년 8월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넘어와, 키이우 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제자화와 리더 양성을 시작했습니다. 구소련 전역 개척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로 넘어왔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선교사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공산권 복음화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사명의식이 있었기에,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의 가능성이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지정학적으로는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중간지대에 끼어 있고, 러시아를 비롯한 CIS 국가들 및 무슬림권인 ‘~스탄’ 국가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동유럽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국가입니다.
뿐만 아니라 튀르키예(터키)와도 흑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어, 무슬림권 진출의 교두보 내지 발전소(파워스테이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를 복음화시켜, 주변국들을 복음화시키는 중심국가로 섬기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종교성이랄지 복음에 대한 수용력 등의 부분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이곳 젊은 청년들과 개신교 성도들을 복음화시키고 리더로 키워낸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UBF(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로 파송된 이후 지난 30년간 2가지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씀드린 것처럼 우크라이나가 목자의 나라로 서는 것입니다. 주변국이나 우크라이나를 위한 목자와 같은 지도자로 서서 주변국들을 섬기는 나라 되도록 기도해 왔습니다.
또 하나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변국들에 선교사들을 많이 파송해서, 한국 다음 가는 선교사 파송국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터졌지만, 지금도 이 기도제목에 변함이 없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복음의 불모지로 변해가는 서유럽을 비롯해 이슬람권의 중동, 나아가 지금은 침략국이지만 복음이 들어가기 어려운 러시아를 위한 복음의 전진기지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충분히 한국에 이은 제2의 선교 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의 한국처럼, 유럽에서 우크라이나아가 선교 중심국이 되는 비전을 놓고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쟁도 그런 의미에서 바라보시겠군요.
“네. 복음화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유럽 및 튀르키예를 비롯한 이슬람권 국가들 가운데로 흩으셔서, 새롭게 복음의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불쏘시개로 쓰실 것이라는 선교적 소망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잘 극복하고,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나라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한국 선교사들 1백여 명 중 30여 명이 중앙아시아에서 선교하다 추방당하신 분들입니다. 추방의 아픔을 겪던 이들을 손 벌려 환영하면서 사역지를 제공해준 나라가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선교사들에게 종교 비자를 발급해 주고, 선교사들에 대한 반대나 불신 없이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많은 열매를 맺고 있는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선교사님들이 그런 기도제목을 갖고, 우크라이나가 선교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유럽과 중동, 그리고 CIS 국가들을 복음화시키는 전진기지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와 우크라이나의 여러 한인 선교사들도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와 협력해 우크라이나에 유럽 선교의 전진기지를 건축하고 각자 고유 사역을 감당하면서 공동 협력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천 중신교회(담임 김진무 목사)와 10년 이상 우크라이나 지도자와 목회자, 신학생 등 제자들을 말씀으로 훈련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