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선교사들, 서울살이 어땠을까?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서울역사박물관 학술총서 발간

<100년 전 선교사의 서울살이>
프린스턴 신학교 자료들 엄선해
1890년대 다양한 생활상 첫 공개

▲정동 일대 전경(1890년 이전). ⓒ서울역사박물관

▲정동 일대 전경(1890년 이전). ⓒ서울역사박물관

100년 전 선교사들은 서울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용석)에서 그 해답으로 학술총서18 <100년 전 선교사의 서울살이>를 발간했다.

이번 학술총서는 2020년부터 진행된 미국 소재 서울학 자료 조사 2차 사업 결과로,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 소장된 ‘마펫 한국 컬렉션’ 사진 4,460건을 조사하고 그 중 163건을 엄선하여 선보인다.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는 1812년 설립된 미국장로교(PCUSA) 산하 신학교들 중 가장 큰 신학교로, 이 학교 출신들이 한국 선교 초기 상당수 선교차 입국했다. 여기에 큰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어 한국 관련 자료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마펫 한국 컬렉션(Moffett Korea Collection)’은 미국 북장로회 초기 한국 선교 시기, 서울에 왔던 사무엘 A. 마펫 선교사(Samuel Austin Moffett, 한국 선교 1864-1939, 1890-1934)와 가족, 동료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수집·작성한 자료들이다.

그의 아들 사무엘 H. 마펫(Samuel Hugh Moffett, 1916-2015) 부부는 1997년부터 프린스턴 신학교에 문서류·사진류·서적류 등 관련 자료들을 기증하기 시작해, 2005년 컬렉션이 완성됐다.

마펫 한국 컬렉션 사진자료는 교회사 연구자들에 의해 일부 소개됐지만, 1890년대 서울 풍경과 일상을 담은 사진과 선교사들의 생활상이 다양하게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미국 연합감리회 아카이브(GCAH)를 조사·공개했던 『학술총서 17』에 이은 서울역사박물관의 두 번째 선교사 시리즈로, 이번 총서에는 개항 후 서울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외국인 집단의 관점에서 선교사들의 생활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았다.

주제는 ‘서울 풍경’, ‘학교·교회·선교사 사택’, ‘병원·의학교’, ‘서울 생활’ 등 4개로 나뉜다. 선교사들이 서울을 선교 중심지로 정하고 정착한 후 선교활동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스토리로 구성했다.

▲정동 러시아공사관 전망탑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1892). ⓒ서울역사박물관

▲정동 러시아공사관 전망탑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1892). ⓒ서울역사박물관

제1장 ‘서울 풍경’은 정동, 광화문, 종로, 소공동, 한양도성 등 근대 전환기 서울 풍경과 일상생활 모습을 담고 있다. 1890년대 사진이 희귀한 상황에서, 1885년 경부터 입국한 초기 선교사들은 조선 왕조 수도 한양의 전통 공간부터 대한제국 수립, 도시 개조사업으로 막 변하기 시작하는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하였다.

선교사들이 선교 초기, 정동에 정착했던 만큼 정동 지역 사진들이 많다. 그 중 정동 일대 전경 사진은 외국 공사관과 선교사들이 자리잡은 선교기지 모습을 담고 있으며, 정동 러시아공사관 전망탑에서 바라본 1892년 서울 시가지 전경 사진은 정동에서 광화문, 현재 세종로와 종로대로를 따라 멀리 동대문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시기 서울 모습을 넓게 조망한 사진으로, 보기 드문 희귀 자료이다.

이 밖에 원수부(元帥府)가 보이는 경운궁(덕수궁) 풍경, 경운궁 남쪽 인화문 방향의 담장 공사 사진 등은 아관파천(1896) 후 고종이 경운궁으로 복귀해 궁궐을 정비하고 개혁을 도모하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도시 개조사업 등으로 모습을 바꾸기 전 서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도 다수 있다.

▲구리개 제중원(1887-1904). ⓒ서울역사박물관

▲구리개 제중원(1887-1904). ⓒ서울역사박물관

제2장 ‘학교·교회·선교사 사택’과 제3장 ‘병원·의학교’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의 초기 선교활동을 보여준다. 이들은 서울을 선교 거점으로 삼고 의료·교육사업을 진행, 선교활동뿐 아니라 거주 공간, 한국인과의 관계성까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1885년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이 고종의 명으로 설립한 최초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과 이것이 재편, 발전된 세브란스병원, 정신여자중고등학교·경신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정동여학당·언더우드학당,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 집 사랑채에서 시작된 정동교회(현재 새문안교회의 전신), 연동교회 사진 등이 담겼다.

▲정동 헤론 선교사의 집(1890). ⓒ서울역사박물관

▲정동 헤론 선교사의 집(1890). ⓒ서울역사박물관

선교사들과 한국인 간의 유대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진, 정동 선교사 사택, 연지동(연못골) 선교기지, 남대문로5가(복숭아골) 세브란스병원 선교구내, 사직동, 인현동(인성붓재) 등지 선교사 사택 사진들은 서울 곳곳의 거주지와 생활 공간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제4장 ‘서울생활’은 근대 시기 서울에 거주한 외국인으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집단인 선교사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준다. 업무시간 외에는 어떻게 쉬며 지냈는지, 낯선 타지에서 어떻게 공동체 생활을 꾸리며 서울살이에 적응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진들이다.

19세기 미국에서 부흥한 ‘대학생 해외선교 운동’ 영향으로 입국한 젊은 선교사들은 타지에서 30-40년 간 거주하며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한국에 적응하며 고된 선교사역을 이겨냈다. 선교사 간의 결혼과 교파·직업·사역·세대를 초월한 공동체 모임을 통해 돈독한 관계를 가지며 안정된 일상을 유지하고자 했다.

▲서울 외국인 야구팀(1919).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외국인 야구팀(1919). ⓒ서울역사박물관

틈틈이 야구·테니스 등의 스포츠를 즐겼고, 소풍 등 여가생활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으며, 서양 문화로 이국적 의식주 생활을 영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은 60세 생일 파티를 한국식 회갑연으로 베푸는 등 한국 문화를 깊이 향유했다.

▲선교사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참석한 게일 선교사 회갑잔치(1923). ⓒ서울역사박물관

▲선교사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참석한 게일 선교사 회갑잔치(1923). ⓒ서울역사박물관

한국 기후에 적응하고 자녀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한 달 정도의 여름 휴가는 필수적이었다. 당시 이들에게 인기 있던 휴양지로는 남한산성·북한산성과 한강변이었다. 1894년경 한강변 세 채의 선교사 별장 사진은 현재 한남동·보광동 경계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별장은 선교사들 간 서로 나눠 쓰고 빌려 쓰는 공동체의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언더우드와 에비슨의 한강 별장(1894-1906). ⓒ서울역사박물관

▲언더우드와 에비슨의 한강 별장(1894-1906). ⓒ서울역사박물관

이번 학술총서에서는 이러한 생활상 외에도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선교사들과 선교사 2세들의 사진도 소개하고 있다.

남녀 지위와 역할 구분이 뚜렷했던 가부장적 조선 사회에서 여성 대상 선교활동은 전도의 매우 중요한 목표였으며, 사회문화적으로도 여성 계몽과 사회 진출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제중원 간호사 안나 제이콥슨(Anna P. Jacobson, 1868-1897)부터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 주축 에스더 쉴즈(Esther L. Shields, 1868-1940) 등 의료·간호선교사, 정동여학당과 정신여학교 메리 헤이든(Mary E. Hayden, 1857-1900), 수잔 도티(Susan A. Doty, 1861-1903), 캐서린 웜볼드(Katherine C. Wambold, 1866-1948) 등 교육 선교사들이 등장한다.

▲간호부양성소 교수진과 간호사들(1928). ⓒ서울역사박물관

▲간호부양성소 교수진과 간호사들(1928). ⓒ서울역사박물관

선교를 위해 장기간 서울에 거주하며 가정을 이룬 선교사의 자녀들이 대를 이어 한국에 뿌리를 내리며 살았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 유모의 돌봄 아래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며 성장한 이들은 청소년기 본국에서 유학 후 대부분 다시 돌아와 대를 이어 선교활동을 이어가거나, 학교·병원·사회구호 활동 등에 뛰어들었다.

한국 근대사에 있어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사진도 있다. 1911년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 암살 미수사건’, 이른바 ‘105인 사건’을 날조해 기독교계 반일 세력을 제거하려 했던 ‘1912년 공판’ 관련 사진들이다. 이는 일제의 탄압과 선교사들의 사회적 활동상을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105인 사건 공판을 위해 끌려가는 사람들(1912). ⓒ서울역사박물관

▲105인 사건 공판을 위해 끌려가는 사람들(1912). ⓒ서울역사박물관

1심 공판 과정에서 용수를 쓰고 결박된 채 끌려가는 사람들의 모습, 배후 세력으로 지목돼 감시당했던 선교사들이 공판에 참관하기 위해 모인 장면, 뉴욕 헤럴드 특파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 등이다.

책에는 ‘프린스턴 신학교 소장 마펫 한국 컬렉션 사진 자료의 소개와 의의’, ‘미국 북장로회 초기 선교사들의 일과 서울생활’에 대한 논고 2편도 함께 수록해 이해를 돕고 있다. 모든 내용은 영문으로도 번역해 외국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김용석 관장은 “선교사들에게 서울은 자신들의 믿음을 전하는 현장이자 삶의 터전이었다”며 “당시 그들이 바라보았던 서울 풍경과 함께 서울에서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도시 서울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뉴욕 헤럴드 특파원을 만나는 선교사들(1912). ⓒ서울역사박물관

▲뉴욕 헤럴드 특파원을 만나는 선교사들(1912).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 2010년부터 해외에 산재한 서울학 관련 미공개 자료를 발굴·수집·조사하고, 이를 학술총서로 발간하고 있다. 학술총서 발간 사업은 해외에서 잊혀지거나 접근이 어려워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학 자료를 연구·공개함으로써 시민에게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100년 전 선교사의 서울살이》는 서울책방에서 구매할 수 있다.

문의: store.seoul.go.kr, 02-739-7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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