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열왕기상에 ‘부동산 디벨로퍼’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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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원 칼럼] 히엘,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

2023년부터 고대근동과 구약 성경 권위자인 단국대 김구원 교수님의 칼럼을 월 2회 연재합니다. 바벨탑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엘리야 이야기입니다. 김구원 교수님은 서울대 철학과를 거쳐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 시카고대 고대근동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하고 개신대에서 가르쳤으며, 현재 단국대 사학과에 재직 중이십니다. 일반인과 평신도에게 구약과 고대근동 문화를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김 교수님과 함께, 구약과 고대근동의 렌즈로 보는 신앙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봅시다. -편집자 주

▲여리고성 상상도. ⓒthearchaeologist.org

▲여리고성 상상도. ⓒthearchaeologist.org

교통의 요지, 금싸라기 땅 여리고
벧엘 사람 히엘, 400년 만에 재건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로 기록
두 아들 죽는다 예언에도 개발해

최근 몇 년 간 ‘부동산 디벨로퍼(real estate developer)’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부동산 디벨로퍼는 단순히 집을 짓는 회사가 아니라 이윤 분석, 기획, 마케팅, 땅 매입, 건축, 판매, 사후 관리까지 총괄하는 부동산 개발 회사이다. 과거에는 이런 일들이 각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수행되었는데, 지금은 부동산 디벨로퍼가 필요한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그 일들을 총괄 수행한다.

물론 이렇게 부동산 개발 업무를 총괄하는 디벨로퍼가 최근에 많아지게 된 것은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엄청난 규모의 돈 때문인데, 이들은 부동산의 전략적 개발과 운영을 통해 부동산 이윤의 극대화를 노린다.

그리고 이윤의 추구를 무한 긍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큰 돈을 버는 부동산 개발업이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미국 45대 대통령을 역임한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의 유명한 부동산 디벨로퍼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도 이런 부동산 개발업자가 존재했을까? 고대 사회에도 엄청난 규모의 건축 프로젝트가 많이 시행되었다.

아브라함의 도시 우르(Ur)에는 지구라트가 건설되었고, 느부갓네살의 도시 바빌론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 정원(Hanging Garden)이 세워졌다. 고대 이집트에도 기자(Giza)의 피라미드와 아부심벨(Abu Simbel)의 람세스 2세 신전과 같은 건대 구조물들이 건축되었다.

하지만 이 거대 건물들은 판매나 이윤을 목적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고대 이집트에서 땅은 엄밀하게 말하면 왕이나 신의 것이다. 사람들도 땅을 ‘소유’했지만 그것은 경작이나 거주를 위한 실용적 용도에 국한되었다. 따라서 수익을 낼 목적으로 땅 위에 건물을 지어 판매하는 부동산 사업은 존재할 수 없었다.

▲프랑스 화가 장 푸케(Jean Fouquet, 1420-1477)의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속 삽화 ‘여호수아의 여리고 함락(Prise de Jéricho par Josué, 1415-1420 추정)’.

▲프랑스 화가 장 푸케(Jean Fouquet, 1420-1477)의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속 삽화 ‘여호수아의 여리고 함락(Prise de Jéricho par Josué, 1415-1420 추정)’.

그렇다면 정말 고대 사회에는 이윤을 위한 부동산 개발이 시도되지 않았을까?

이 질문과 관련해 흥미로운 본문이 열왕기상 16장 34절에 등장한다. 이 본문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직후 여호수아가 그 성을 재건하는 사람에 대해 선포한 저주(수 6:26)가, 아합의 시대에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 저주에 명시된 대로 벧엘 사람 히엘(Hiel)이 여리고 성 재건축을 시작했을 때, 큰 아들 아비람이 죽었고 재건축을 완성했을 때는 막내아들 스곱이 죽게 되었다.

하지만 이 본문은 단순히 예언 성취에 관한 것이 아니다. 본문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문맥을 살펴야 한다. 아래에서 밝혀지듯, 이 본문은 아합의 통치에 대한 신학적 평가의 일부이다.

‘폐허 여리고’, 하나님 승리 상징
여호수아가 저주하며 남긴 이유
바알 숭배? ‘돈이 신’이 된 시대
아합이 명령했거나 지원했을 것

본문의 문맥에 해당하는 아합 왕에 대한 설명은 열왕기상 16장 29절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성경 저자는 북이스라엘을 22년이나 다스린 아합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아합은 “그의 이전에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는데(왕상 16:30)” 그것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우상숭배의 기원으로 인용되는 여로보암의 죄가 그의 죄 앞에서는 경범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왕상 16:31).

▲여리고 성 함락을 다룬 영상. ⓒ유튜브

▲여리고 성 함락을 다룬 영상. ⓒ유튜브

성경 저자는 아합의 죄를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첫째, 아합은 바알(Baal)을 섬기는 이방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고 그녀의 바알 숭배를 허용한다(왕상 16:31).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이름은 모두 바알을 찬양하는 의미를 가진다.

둘째, 아합은 아내의 바알 숭배를 허용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스스로 바알 숭배자가 된다(왕상 16:31). 셋째, 그는 바알의 제단과 신전을 수도 사마리아에 건설한다(왕상 16:32). 뿐만 아니라 바알의 아내 아세라 우상을 바알 신전에 함께 만들어 놓는다(왕상 16:33).

여기서 성경 저자가 아합의 악들을 나열하는 방식에 유의하라. 가벼운 것에서 중대한 것으로 이동하는 점증법(漸增法)을 사용한다. 그리고 히엘의 여리고 재건에 대한 본문은 바로 이런 점증법의 가장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위치한다.

다시 말해 히엘의 여리고 재건에 대한 본문은 아합의 가장 큰 악행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부터는 열왕기상 16장 34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히엘이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로 간주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아합의)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 16:34)”.

▲독일 화가 카롤스펠트(Julius Schnorr von Carolsfeld)의 ‘여리고 성 전투(the battle of Jericho)’.

▲독일 화가 카롤스펠트(Julius Schnorr von Carolsfeld)의 ‘여리고 성 전투(the battle of Jericho)’.

여리고는 요단 동편에서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이다. 요단 동편 ‘왕의 도로(King’s Highway)’를 따라 여행하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싯딤에서 요단을 건너 여리고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여리고의 풍부한 물과 각종 실과들이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휴식을 제공했을 것이다.

부동산 개발업자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여리고는 금싸라기 같은 땅이다. 하지만 아합 시대에 여리고는 황무지였다. 400년 전 여호수아가 저주한 이래 이 금싸라기 같은 땅이 개발되지 않고 옛 폐허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그린벨트’ 지역처럼 말이다.

그러면 왜 여호수아는 애초에 여리고가 다시 재건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왜냐하면 폐허가 된 여리고는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실물 교재가 되기 때문이다. 즉 폐허의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왕국을 이룰 수 있게 된 근본 원인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준다.

지난 400년 동안 어느 누구도 여리고 성의 재개발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저주 때문이 아니라 이런 신학적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려 한다.

히엘은 여호수아의 저주를 몰랐을까?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여리고를 재건하려는 것일까? 그에게는 돈이 아들의 목숨보다 중요한가? 아무리 돈에 눈이 멀었더라도, 돈을 아들의 목숨과 바꿀 사람은 없다. 그 점에서 히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엘이 여리고의 재건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아합의) 시대에”라는 말에 숨어 있다. 아합의 시대의 시대정신은 ‘바알 숭배’이다.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을 위한 제단과 신전을 건축했다.

바알은 어떤 신인가? 고대 농경 사회에서는 비와 풍요의 신이었지만, 오늘날 용어로 바꿔 말하면 ‘돈의 신’이다. 아합 시대는 돈이 하나님인 시대였다. 사람들은 여호와보다 바알을 더 두려워했다. 북이스라엘에 여호와의 성전이 없고 바알 신전만 존재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합 시대에 여호수아의 저주는 한갓 도시 전설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에게 폐허로 남은 여리고 성은 개발해야 할 땅이지, 하나님의 승리를 상징하지 않는다.

▲오늘날 여리고. 앞이 여리고 성 터로 추정된다. ⓒ위키

▲오늘날 여리고. 앞이 여리고 성 터로 추정된다. ⓒ위키

아합과 히엘 각자 이익 위해 공모
아합왕 통치에 대한 신학적 평가
말씀의 진리보다 부동산 수익에
더 짜릿함 느끼는 그리스도인들

히엘이 겁도 없이 여리고 성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제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여리고의 기초를 놓자마자 첫째 아들이 죽었지만, 히엘은 그것을 우연으로 치부한다.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우연에 불과하다.

히엘이 여리고를 재건한 것은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 열왕기상 16장 34절은 아합의 가장 큰 악행을 설명한다. 즉 히엘이 여리고를 재건한 일에 아합의 책임도 크다. 히엘이 개발 계획을 세웠더라도, 정부의 승인이 없었더라면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히엘이 여리고를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은 아합이 그 일을 직접 명령했거나 적어도 적극적으로 그 일을 지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합도 여호수아의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무너져 있는 여리고 성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여리고 성 재건은 아합 정부와 부동산 디벨로퍼 히엘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공모하여 벌인 일이다.

▲그리스 출신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예수께서 눈 먼 사람을 고치시다(Christ Healing the Blind, 1570년대)’.

▲그리스 출신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예수께서 눈 먼 사람을 고치시다(Christ Healing the Blind, 1570년대)’.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도 아합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돈이 존중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히엘(היאל)의 이름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노니”라는 의미이다. 그의 고향도 “하나님의 집”을 의미하는 벧엘이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한 여호수아의 저주를 무시하고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하나님의 집을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말씀의 진리보다 부동산 수익에 더 짜릿함을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수아의 저주를 무시하고 여리고를 재건한 벧엘 출신 히엘과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김구원 박사. ⓒ크투 DB

▲김구원 박사. ⓒ크투 DB

김구원 교수
단국대 사학과 고대문명연구소
저서 통독주석 <사무엘상>과 <사무엘하>, <김구원 교수의 구약 꿀팁>, <쉬운 구약 개론(공저, 이상 이상 홍성사)>, <가장 아름다운 노래> 등
역서 <하나님 나라의 서막>, <이스라엘의 종교>,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고대 근동 역사>, <고대 근동 문학 선집(공역, 이상 CLC)>, <구약 성서로 철학하기>, <에스더서로 고찰하는 하나님과 정치>, <출애굽 게임(이상 홍성사)>, <책의 민족(교양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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