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신진화론 조금이라도 인정하면 성경 권위가 무너지나?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 잠정적
인정한다고, 권위 무너지지 않아
팀 켈러, 창세기 다르게 해석하며
진화적 방식 수용하는 사람 정도
창세기 1장 장르대로 해석하는 것
겸손하게 상대방 존중하고 연합
지난 3월 17일,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에서 ‘팀 켈러의 유신진화론 비판적 성찰’을 주제로 열린 영성포럼 내용에 대해, 변증가이자 도시 전도자인 팀 켈러 목사의 사상을 깊이 연구해온 ‘팀 켈러 연구가’ 고상섭 목사님(그사랑교회)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편집자 주
2023년 3월 17일, 기독교학술원이 ‘팀 켈러의 유신진화론 비판적 성찰’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팀 켈러가 그의 에세이 ‘창조, 진화, 그리고 그리스도인 평신도(Creation, Evolution, and Christian Laypeople·2009년 10월 개최된 BioLogos Theology of Celebration Workshop에서 처음 발표됐으며, BioLogos 인터넷 홈페이지에 2012년 2월 23일 자로 올라와 있다)’에서 주장한 내용을 겨냥, 그의 주장이 유신진화론적 입장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 위험성과 그의 창세기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세미나였다.
먼저 나는 창세기에 대해 팀 켈러와 다른 관점을 가진 개혁주의 진영의 목회자임을 밝힌다. 창조론을 믿고, 6일 창조를 믿고, 창세기 1-2장이 역사적 기록임을 나는 믿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와 견해가 다른 팀 켈러의 입장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여기서 말하고자 한다.
팀 켈러를 통해 내가 배운 것 중 하나는 복음의 겸손이며,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연합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이런 복음의 관대함은 때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 같다. 팀 켈러의 주장은 과연 비판받아 마땅할까? 아니면 견해가 다르지만 수용가능한 것일까? 팀 켈러를 존경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후자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설명해 보려고 한다.
◈창세기 1-2장 해석 문제
기독학술원 원장인 김영한 교수는 팀 켈러가 창세기 1-2장을 사실이 아닌 비유로 해석한다며, 그를 타협주의자라고 비판한다. 또한 팀 켈러는 ‘24시간 6일’ 창조를 부인하고 ‘오래된 지구론’을 믿기 때문에 성경의 정통 복음주의를 벗어났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의 어떤 부분도 창세기 1-2장이 비유적인 글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
이런 비판만 들으면, 마치 팀 켈러가 성경의 계시와 권위를 무시하고 과학을 받아들이는, 말하자면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는 사람처럼 들린다. 하지만 팀 켈러의 의견을 꼼꼼히 들여다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팀 켈러는 창세기 1장 전체가 산문인 것은 아니라고, 즉 여기에는 시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에드워드 J. 영이 말하는 ‘고양된 준-시적 언어(exalted semi-poetic language)’가 창세기 1장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영은 시적 언어를 말하면서도 창세기 1장이 시는 아니라고 정의하지만, 팀 켈러는 에드워드 영의 ‘고양된 준-시적 언어’를 차용하면서 시로 읽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팀 켈러에 대한 비판 중에는 그가 에드워드 영을 인용하긴 했지만 영의 결론과 다르게 인용했기 때문에 영의 관점을 왜곡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팀 켈러는 에드워드 영이 말한 ‘고양된 준-시적 언어’만을 인용했고, 그렇기 때문에 시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영의 단어를 인용했다고 반드시 영의 결론까지 함께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팀 켈러는 에드워드 영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보수 신학자인 영도 창세기 1장을 ‘고양된 준-시적 언어’로 해석했다는 것을 강조했을 뿐이다.)
팀 켈러는 창세기 1장이 시적 요소로 볼 수 있는 근거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동일한 문구의 7번 반복과 “∼이 있으라”, “그대로 되니라”의 반복을 통해 단순한 산문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또 태양(큰 광명체)과 달(작은 광명체)를 묘사하는 용어도 매우 독특한, 성경 어디에도 쓰인 적이 없는 시적 언어이며, “땅의 짐승”이라는 단어도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시를 쓸 때 동물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설명한다.
팀 켈러는 커버넌트 신학교 구약학 교수인 존 콜린스의 창세기 주석을 인용하면서, 창세기 1장을 산문이지만 또한 시적 언어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를 고양된 산문 서술(exalted prose narrative)이라 부를 수 있다. 이 장르의 이름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사실 주장을 다루는 산문 서술을 포함한다. 둘째,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팀 켈러는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어려운 근거를 2장과 비교를 통해 설명한다. 창세기 2:5은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은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초목과 밭에 채소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대기와 비가 존재하기 전 식물이 없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를 보면 비가 내리기도 전에, 사람이 창조되기 전에 식물이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2장의 근거로 1장을 해석하면, 창세기 1장이 자연 질서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태양이 존재하기도 전에 세 번의 ‘아침과 저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팀 켈러의 창세기 1-2장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팀 켈러의 창세기 1-2장 해석을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팀 켈러는 사사기에 나오는 드보라의 사건(4장)과 드보라의 노래(5장)처럼, 창세기 1-2장을 역사적 기록과 함께 선포하는 시적인 노래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창세기 1-2장이 역사적 선언이며 산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팀 켈러의 주장을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주장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그 쓰인 장르대로 읽어야 한다는 성경 해석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팀 켈러의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시를 시로, 산문을 산문으로, 서신을 서신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창세기 1-2장에 대한 그의 장르 이해가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와 달리 나는 창세기 1-2장을 산문으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만,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주장 정도로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6일 창조’ 문제
팀 켈러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가 문자적 24시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가 시적 표현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24시간/6일 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팀 켈러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 옳은가? 나는 24시간/6일 창조를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근거는 창세기 1장에서 명확하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여기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말씀하고 있다. 만약 6일 창조가 아니고 긴 시간의 창조였다면, 안식일을 말씀하시면서 7일의 패턴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근거로 우리의 안식일을 말씀하시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표현대로 6일 창조를 믿는다.
그러나 내가 6일 창조를 믿는다 해서, 팀 켈러의 주장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팀 켈러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를 통해서는 6일 창조라고 명확히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흔히 24시간으로 생각하는 히브리어 ‘욤’의 용례 역시 24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더 긴 시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
나는 팀 켈러의 주장대로 넷째 날 해와 달이 만들어지기 전에 더 긴 시간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6일 창조보다 더 긴 시간 창조가 되었을 가능성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창세기 1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긴 시간 창조를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한 문제라기보다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영역이다. 그리고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6일 창조를 믿지만, 6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신앙에 큰 영향을 주는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6일이 훨씬 더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이 되더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해석이 모두 오래된 지구론이라는 과학을 믿기 때문에 성경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시도라는 해석은 너무 극단적이다. 6일 창조를 믿더라도, 히브리어 ‘욤’에 대해 좀 더 다양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의 해석을 좀 더 열린 입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젊은 지구론/오래된 지구론 문제
나는 오래된 지구를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젊은 지구론을 믿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에, 창세기 1-2장에서 지구의 나이가 중요한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구가 오래되었건 그렇지 않건, 두 가지는 성경에서 명백히 밝히는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유보하는 입장이다. 젊은 지구일 수도 있고, 나이 든 지구일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이 아담을 성인 아담으로 처음에 창조하셨듯이 나이 들어 보이는 지구를 창조하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을 ‘성숙한 지구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구의 나이가 젊은지, 나이가 들었는지, 성숙한지에 대해 창세기 1-2장으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팀 켈러는 오래된 지구론을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그것은 그가 과학적 근거를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두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성경해석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다. 나는 팀 켈러의 오래된 지구론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팀 켈러의 주장은 수용 가능하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오래된 지구론, 젊은 지구론을 창세기 1장을 가지고 너무 명확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유신진화론 문제
팀 켈러는 유신진화론자인가? 아마 유신진화론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명백한 유신진화론자일 것이다. 그러나 팀 켈러가 주장하는 창세기 해석은 진보적 유신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 많다.
팀 켈러는 다른 유신진화론자들처럼 여러 아담이 동시에 존재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한 사람 아담의 타락과 한 사람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한 우리의 구원론을 명확히 이해하고 설교한다.
(팀 켈러의 로마서를 살펴보면, 그는 명확히 한 사람 아담의 타락과 한 사람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대표성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설교한다. 또 그의 논문에서도 창세기 1장은 시적 요소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지만 바울서신은 그렇지 않은 명확한 서술이므로, 아담과 하와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유신진화론은 설득력이 없다고 명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바울이 명확히 말하는 역사적 아담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경고한다.)
그럼 팀 켈러는 왜 유신진화론자라고 공격받는가? 팀 켈러는 진화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한다. 진화적 생물 변이 과정인 EBP(Evolutionary Biological Process)와, 인간의 모든 측면을 진화로 설명하려는 진화 대이론인 GTE(The Great Theory of Evolution)로 나눈다. 팀 켈러는 EBP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이 수용 가능하지만, 진화론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GTE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팀 켈러의 주장은 단순히 팀 켈러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다양한 학자들로부터 지지받는 학설이다. 칼빈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한 앨빈 플랜팅가 교수는 ‘과학과 종교, 양립할 수 있는가(Science and Religion: Are They Compatible)?’라는 저서에서 현대 진화론은 유신론과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연주의적 세계관은 양립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자연주의적 세계관은 실제로 진화와 양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과학과 종교(또는 과학과 유사종교) 사이에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그 갈등은 자연주의와 과학 간의 갈등이지, 유신론적 종교와 과학 간의 갈등은 아니다. 진화론이 자연주의와 묶일 때는 신의 설계를 부정하게 되지만, 진화론 자체만으로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18쪽).”
앨빈 플랜팅가와 팀 켈러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팀 켈러가 나누는 진화의 두 가지를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는 창세기 1장에서 진화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현대 과학에서 EBP가 창조의 과정에 사용되었다면 성경은 그것을 포함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팀 켈러는 그의 에세이에서 명확하게 “창세기 1장은 진화 또한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실제 과정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유신진화론이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유신진화론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한국교회탐구센터가 주관한 강좌, ‘창세기를 통해 본 과학과 신앙의 쟁점’에서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한 송인규 박사는 유신진화론 안에서도 다섯 가지 정도의 다른 주장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중 양극단의 두 이론을 제외한 세 가지 보수적, 중도적, 진보적 입장을 언급하면 송인규 교수 본인은 창조론을 믿고 있지만, 유신진화론 중에서 보수적 입장과 중도적 입장은 수용 가능해도 진보적 입장은 수용할 수 없다고 결론내린다.
나는 송인규 교수의 주장 또한 모두 다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신진화론 중에서 보수적 입장이 취하는 것 중 어느 정도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가 되는 점도 있다.
인류의 첫 조장인 창세기의 아담을 고생물학 증거와 신학적 기사 사이를 구별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생물학적 진화의 메커니즘을 하나님의 섭리적 다스림 가운데 병합시키는 것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그럴 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결론
나는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다. 창조론 중에서도 즉각적 창조론을 믿는다. 그래서 24시간/6일 창조를 나의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켈러를 유신진화론자라고 비판하며 그의 해석을 전부 거부하고 싶지는 않다.
팀 켈러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창세기 1장을 산문과 함께 시적인 요소로 이해해야 성경이 쓰인 장르대로 해석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르기는 하지만, 그의 해석 또한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좀 더 겸손하게 자신의 믿음을 지키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연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팀 켈러는 데릭 키드너의 글을 인용하며 그의 에세이를 마무리한다. “이는 모험적인 제안이며 임시적이며 개인적인 견해이다. 더 나은 지적과 이론들이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것이야말로 이 분야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가 취해야 할 바른 태도입니다.”
유신진화론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면 성경의 권위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앨빈 플랜팅가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무신론을 지지해주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유신론을 반박하는 과학적 증거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 해서 유신론이 거짓이라거나, 유신론자들의 믿음이 반박됐다거나, 유신론의 믿음이 비합리적이거나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유신론을 지지하는 증거-과학적이건 아니건 간에-도 있기 때문이다. … 또한 유신론적인 믿음이 정당성을 보장받기 위해서 현대 과학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과학과 종교, 양립할 수 있는가?, 43쪽).
나는 목회자이고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유신진화론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이해하거나 정확한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설명들 가운데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들을 잠정적 인정한다 해서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창조론을 믿는다고 창조의 과정 중 진화의 요소가 들어갈 수도 있다는 주장들에 대해 반드시 거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팀 켈러를 ‘유신진화론자’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유신진화론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만, 보통 유신진화론자라고 하면 부정적 프레임이 씌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단지 창세기의 해석을 다르게 하면서 진화적 방식을 수용하는 사람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물론 나는 팀 켈러의 관점과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팀 켈러의 의견을 비판하면서 배격하기보다, 하나의 잠정적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천국에서 함께 만나 웃으면서 창세기의 다른 관점들을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고상섭 목사
그사랑교회 담임
영남신대·합동신대 졸업
팀 켈러 연구가
CTC코리아 강사
<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