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칼럼] 정필도 목사의 설교 (下)
부산 수영로교회를 37년 간 담임했던 정필도 목사의 1주기를 기념해 지난 3월 20일 수영로교회에서 열린 추모 학술대회에서 이상규 교수님(백석대 석좌교수)가 발표하신 ‘정필도 목사의 설교와 선교’ 중 설교 부분을 요약 정리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각주는 생략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3. 정필도 목사의 설교의 외형적 특징
1) 본문 중심의 설교
정필도 목사의 설교는 외형상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첫째는 본문 중심(text centered)이라는 점이다. 그의 설교는 본문에 충실하고 본문의 의미를 전달하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정필도 목사는 설교는 반드시 본문 중심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교는 강연도 아니고 시사평론도 아니며 주관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철저하게 본문 중심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전적으로 본문 중심이며, 때로 예화나 사례를 인용하기도 하지만 그의 설교에서 가장 빈번한 인용은 성경 본문이다.
그는 본문 중심으로 설교하되,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설교 내용을 2가지 혹은 3가지 대지(大旨)로 요목화하는 방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랑, 여호와 이레’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누리려면’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위한 꿈과 계획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방식이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명백한 죄인데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 후, 그 이유를 “첫째,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무지하기 때문이다. 셋째, 교만하기 때문이다”라고 설교하고 있다. 이런 설교 형식은 1988년 이후 매년 엮었던 『설교집 수영로편지』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이런 3대지(三大旨) 설교는 서양교회 전통에서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기선(李基善, 1878-1950) 목사나 박윤선(1905-1988) 목사가 이런 설교 관행에 영향을 끼쳤다. 이런 방식의 설교는 메시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숙지하게 하는 설교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다. 정필도 목사는 이런 설교 방식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2) 선명한 적용과 도전
정필도 목사 설교의 두 번째 특징은 메시지에 대한 분명하고도 선명한 도전을 준다는 점이다. 즉 선포된 말씀에 대한 적용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설교는 성경 본문에 대한 바른 해명과 함께 그 말씀에 따라 살도록 해야 하고, 주의 말씀은 성도들의 삶의 등과 빛이 되어야 하는데(시 119:105), 정필도 목사는 이 점을 중시하고 있다.
예컨대 정필도 목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인류 역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 후, 하나님을 거역했던 헤롯 왕과 느부갓네살 왕의 경우를 언급하고 이들이 죽임당한 일을 언급한다. 이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개인의 삶 속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하도록 도전을 주고 있다.
이런 구체적인 적용은 다른 설교에서도 동일하게 중시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을 따르는 설교자들은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설을 좋으나 적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정필도 목사의 경우 설교에 대한 적용이 매우 선명하고 구체적이다.
3) 쉬운 설교
셋째. 정필도 목사의 설교는 난해하지 않고 ‘쉬운 설교’라는 점이다.
쉬운 설교라는 의미는 구성이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메시지가 단순 명료하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그의 설교는 대중성을 지닌다. 그의 설교가 쉽고 단순하다는 것은 사변적이지 않고 순전히 성경만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의 위기, 교회의 위기, 예배의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성경에서 떠난 설교의 위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곡된 진리는 화려하게 덧칠하여 꾸며집니다. 현대를 이루는 것들은 으레 복잡하고 현란합니다. 그러나 참된 진리는 단순하고 절대적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진수만을 전해야 합니다.”
그의 설교가 단순하고 쉽지만 로고스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지 않고, 에토스·파토스적 측면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큰 소리를 치거나 과도하게 포즈를 취하지도 않지만 애절한 음성, 단순한 진리는 어둠을 비추는 조요(照耀)한 불빛처럼 심령을 비추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4) 구약 본문에 대한 관심
넷째, 그의 설교에서 구약 본문 설교가 다른 설교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구약 본문은 한국교회 강단에서 매우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교회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교회에서도 신약에 비해 구약 본문에 대한 설교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1970년대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미국 구약학자 악트마이어(E. Achtemeier)는 구약 본문에 대한 상대적 소홀을 지적하면서 “미국교회가 구약을 상실할 단계에 있으며 구약을 상실한다는 것은 신약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복음을 올바로 선포하기 위해서는 구약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경향은 호주교회에서도 동일했다. 호주 장로교신학대학 나이젤 리(Nigel Lee)는 구약 본문에 대한 설교의 극심한 소홀을 지적하면서 적어도 구약 설교를 신약 본문의 4배 이상해야 균형 잡힌 설교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교회 강단에서도 구약이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다. 장일선 교수가 한국의 대표적 설교자 20여명이 출판한 설교집에 나타난 설교 본문을 조사한 결과 구약이 설교본문으로 채택된 경우는 전체 설교의 25% 미만이었다고 한다. 구약 중에서도 창세기, 시편, 이사야, 출애굽기 순으로 크게 편중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향은 현재도 동일하며, 복음주의 설교자들에게도 동일하다.
그런데 정필도 목사의 설교에서는 구약 본문에 대한 설교 빈도가 매우 높았고, 신구약 성경 본문을 균형 있게 설교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정필도 목사가 수영로교회를 설립한 1975년 6월 1일 주일부터 2005년 3월 20일까지 30년간 행한 1,626회의 주일 설교 본문을 분석한 결과 구약 본문으로 설교한 경우는 555회로 전체 설교의 34%에 해당하며, 신약 본문으로 설교한 경우는 1,071회로 66%에 해당한다. 이를 표로 보면 아래와 같다.
위 표에서 보는 바처럼 정필도 목사는 한국 목회자 일반의 경우와 달리 구약 본문에 대한 설교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았고, 신구약 책을 균형 있게 설교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 잠언,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서에 대한 설교가 많은 것은 이들 책에 대해 연속적으로 강해했기 때문이다.
4. 정필도 목사의 설교의 특징
앞에서 지적한 외적 특징과 함께 정필도 목사의 설교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의 설교는 복음주의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설교는 복음주의 신학 토대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1) 복음주의적인 설교
‘복음주의(Evangelicalism)’란 그 이름처럼 헬라어 ‘복음(εὐαγγέλιον)’이란 말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이 말은 16세기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이어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부흥운동 혹은 대각성운동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구체적으로 생성되었고, 1952년 조직된 세계복음주의협의회와 1974년의 로잔 세계복음화위원회에 의해 보다 명료하게 발전된 신학을 의미한다.
복음주의는 역사적 기독교의 신앙을 중시하며 회심과 중생, 전도나 선교를 강조하면서도 신자의 사회적 책임을 경시하지 않는 신앙체계를 의미한다.
복음주의는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 혹은 혼합주의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믿고 회개와 중생, 성화, 전도와 선교를 중시하는 신학체계라고 할 수 있다. 복음주의는 근본주의나 개혁주의, 혹은 보수주의 등 정통주의를 포용하지만 근본주의 운동에서 결여되었던 사회적 책임을 경시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필도 목사는 복음주의자이고, 좀 더 정교하게 말하면 개혁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복음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이었다. 그는 비록 ‘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적 설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설교는 복음주의적이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성경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정필도 목사는 복음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전통에 따라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성경의 완전 영감과 유기적 영감을 믿는 토대위에서 그리스도 외에는 소망이 없다는 확신으로 일생을 살았고 그 확신에서 전도와 선교에 힘을 쏟았다.
정필도 목사의 설교가 복음주의적이었다는 말은 그의 설교가 복음(전도) 설교(evangelistic sermon)라는 의미와 복음주의 신학적(evangelical preaching) 설교라는 점을 의미한다.
2) 설교의 중심 주제
정필도 목사는 복음주의 토대에서 설교했는데, 그 중요한 주제가 설교집 『기도로 눈물로 은혜로』에서 분류된 바처럼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고난, 기도, 감사, 은혜, 축복, 사명 등으로 구분될 수 있겠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기도, 하나님의 은혜, 긍정적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그리고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가 중심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설교에서 기도와 기도의 능력, 기도하는 생활을 강조하였다. 그는 성경을 접근할 때도 기도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믿었다. 성경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바른 접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다른 책을 접근하듯이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도를 강조하였다. 그는 무릎 꿇지 않고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고,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설교집 『기도로 눈물로 은혜로 5』에는 기도에 관한 20편의 설교가 수록되어 있는데, 구약과 신약에서의 기도의 모범과 예수님의 기도, 기도의 일상 등에 대해 설교했고, 그 외의 설교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라고 말한다. 아래는 기도에 대한 빈번한 설교의 일부이다.
“우리 앞에도 전쟁이 있습니다. 삶의 매 순간이 치열한 전쟁의 연속입니다. 이 전쟁에서 항상 이기려면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적으로 그리고 간절해야 합니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기도하고 편안히 쉴 때도 마음속으로 주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며 그를 위해 대신 싸우시고 승리를 주십니다.”
이런 기도에 대한 설교와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강조하였고, 그것은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주님 의지하고 사는 것임을 설교했다.
그런가 하면 정필도 목사는 믿음으로 사는 긍정적인 삶을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소망을 설교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의 권세를 가진다. 특히 기름부음을 받은 목회자의 말 한마디는 교회의 분위기를 좌지우지 한다. 소망 없는 말을 쏟아놓으면 교회는 곧 절망의 분위기에 감전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목회자가 희망적인 말을 하면 교회는 곧 희망에 휩싸인다.”
설교는 희망의 메시지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처럼 그의 설교에는 희망의 언어가 녹아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자신의 설교를 두 가지 유형, 곧 케리그마(kerygma)와 디다케(didache)로 구분한 바 있는데, 정필도 목사의 설교에도 이런 두 가지 유형이 드러나 있다. 케리그마는 구원의 메시지로서 전도 혹은 복음 설교를 의미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선포가 중심을 이룬다.
정필도 목사의 설교집 『기도로 눈물로 은혜로』 1, 2, 3권이 이에 해당한다. 디다케는 이름 그대로 가르침의 요소가 있는 설교로서 믿는 신자들을 건실하게 세우기 위한 메시지를 의미한다.
정필도 목사의 『기도로 눈물로 은혜로』 4권 이하에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물론 기계적으로 구분할 수 없겠지만 정필도 목사의 설교는 전도 설교와 양육을 의도한 설교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3) 정필도 목사 설교의 건실성
필자가 정필도 목사의 설교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그가 복음주의적인 성경본위(聖經本位)의 설교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설교자에게 필요한 두 가지 과정, 곧 본문(text)이 가르치는 바가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것이 신자들의 실존적 삶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를 파악한 후 그것을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성경 본문을 구속사적으로 이해하거나 성경신학적 접근을 시도하거나, 역사-문법적 접근을 시도한 흔적이 많지 않고, 신약의 경우 성경 해석상 필요한 그리스어의 성, 수, 격이나 동사의 시제나 태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견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강단 설교자로서 정필도 목사는 이런 사안들을 공중 예배에서 노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설교자가 성경 본문에 대한 역사적-문법적-신학적 고려를 통해 본문을 해석하거나 주해(exegesis)할 수 있지만 본문이 말하는 바를 평이하게 명료하게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설교자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필도 목사의 설교에서 성경 본문을 풍유화(諷諭化, allegorizing)하거나 신령화(神靈化, spiritualizing)한 경우가 없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성경을 알레고리칼하게 해석하는 경우는 한국교회 강단에서 흔히 발견되는 문제점인데, 정필도 목사의 설교에서는 이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풍유적 혹은 우의적(寓意的) 해석이란 성경 문자 배후에 어떤 신령한 뜻(眞意)이 숨어 있다고 보고 그 뜻을 찾아내는 것을 설교의 목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풍유적 해석이란 ‘진리 이면의 진리(truth behind the truth)’를 찾는 해석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필도 목사의 설교에서는 이런 경향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점은 정필도 목사의 설교가 매우 건실했음을 보여 준다.
5. 결론
이상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1975년 6월 이후 2011년 12월 은퇴하기까지 36년, 2022년 3월 소천하기까지 47년 간 사역하셨던 정필도 목사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설교가 어떠했던가에 대해 소개하였다. 그는 준비된 사역자였고,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시되 준비된 만큼 쓰신 것이다.
정필도 목사는 태어난 설교자가 아니라 설교자로 자신을 훈련한 설교자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교역자에 이르기까지, 또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은 명설교가들의 설교를 듣고 연구하고 분석해 왔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설교를 듣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집회에 참석하면 잠은 두어 시간 밖에 못 자면서도 그곳에서 수집한 좋은 자료들을 분석하기도 하고, 때로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녹음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는 한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100개 이상 사서 듣기도 했다. 각 분야별로 목사님들 마다 어떻게 해석하고 설교했는지 분석한 자료만도 방안 가득하다.”
그는 은혜로운 설교를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였지만 특히 성도들과 성도들의 영혼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영혼이 감화된다”고 믿었던 그는, “목회자가 사랑으로 충만해 있으면 설교 속에서 사랑이 스며들고 표정 가운데서도 사랑이 묻어나오게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양 무리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설교자가 해야 할 유일한 준비이다”면서 성도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일생을 사셨다.
그리고 기도와 경건생활을 통해 신행일치의 삶을 살았다. 그러했기에 그는 은혜로운 설교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이 교회 부흥의 비결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은혜의 사신(Messenger of Grac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준비된 설교자였기에, 은퇴 이후에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사역자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규 박사
고신대학교 신학과(ThB), 신학대학원(MDiv), 대학원(ThM)
호주 장로교신학대학(PTC) 수학
호주신학대학(ACT) 신학박사(ThD)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1983-2018)
현 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