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묻은 아들, 목 놓아 그리워할 곳 생겨”
유가족들 ‘기증인 기념공간’ 염원
조형물 등에 생명나눔 정신 담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이하 운동본부)는 지난 4월 12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서울 보라매공원 장미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간 건립 기념식’을 진행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및 신장·췌장 이식인, 서울시 및 장기기증 관련 기관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2018년, 본부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은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간 조성’을 가장 염원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본부에서 기념공간 건립을 수 년간 추진한 결과, 국내 최초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간’을 마련하는 결실을 맺었다.
특히 이번 기념공간은 장기기증 가치에 공감하며 그동안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힘써 온 서울특별시의 지원으로 마련됐다.
기념공간에 자리잡은 ‘나누고 더하는 사랑’을 의미하는 조형물은 홍익대 환경미술연구소 이수홍 교수가 도안한 작품으로, 위로 쌓아 올린 3개의 구에 생명을 상징하는 물의 형태와 혈액의 색감이 더해졌다.
각각의 구들은 아래부터 차례로 숭고한 나눔을 실천한 기증인과 장기기증을 결정한 가족, 그리고 생명을 이어받은 이식인을 의미한다. 굳건한 반석 위 세 개의 구체가 모여 퍼져나가는 모양은 장기기증의 고귀한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세상 곳곳에 확장시킨다는 뜻을 담았다.
도너패밀리 회장 강호 씨(68)는 “23년 전 8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아들이 유독 생각나는 아침”이라며 “유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기증인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오랫동안 나눠 왔는데, 오늘에서야 그 꿈이 실현됐다”고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강호 회장은 지난 2000년 당시 17살이던 아들 故 강석민 군을 다발성 뇌출혈로 떠나보내며 장기기증을 결정한 아버지이다.
기념공간 건립을 축하하며,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참석한 이도 있었다. 23년 전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받은 신췌장이식인회 송범식 회장은 기념식에서 “새로운 삶을 주고 가신 기증인을 추모할 수 있는 뜻깊은 공간이 마련돼 기쁘다”며 “이식인들은 기증인과 유가족의 아낌없는 사랑을 기억하며, 나눔과 더함의 사랑을 마음속에 새기고 감사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겠다”고 전했다.
이번 기념식을 위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도너패밀리들은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꽃을 피워냈다. 7년 전 외아들 윤길 씨를 뇌출혈로 먼저 떠나보낸 후 ‘윤길아빠’라는 이름으로 포털사이트에서 장기기증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홍우기 씨(74)는 “아직도 아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유가족들에게 기념공간이 생긴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후로도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한 도너패밀리들은 한동안 말없이 조형물을 어루만지거나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운동본부 박진탁 이사장은 “뜻깊은 기념식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사한 기증인들과 도너패밀리에게 존경과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며 “오랜 염원이었던 기념공간이 기증인의 사랑을 기리고, 유가족들에게 언제나 위로가 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운동본부는 1991년 국내 최초로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에 앞장서 지난 32년 동안 117만여 명의 장기기증 희망등록자와 함께 생명나눔운동을 알리고 있다. 생명나눔문화 확산과 함께 장기이식법 개정과 D.F장학회(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 학비 지원) 운영 등 장기기증인 유가족 예우와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