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원로 추대되며 감사 인사
모세 잘하나 여호수아 잘하나
누가누가 잘하나 게임 아니다
엄밀하겐, 여호수아보단 다윗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는 16일 오후 원로목사로 공식 추대되면서, 성도들에게 ‘미안함’을 먼저 전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후임인 김다위 목사를 위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교회와 연회 등에서 감사패를 받은 후 인사를 전한 유기성 목사는 “제가 원로로 추대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당연히 하나님께 모든 감사를 올려드리고 싶다”며 “성도님들께 감사를 전하기 전에, 먼저 미안한 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여러분을 위해 좀 더 개인적 시간을 드리지 못했던 일들, 자주 심방하지 못했던 일들, 더 좋은 말씀을 나누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더 회복할 수 없는 순간이 왔기에, 더 마음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유기성 목사는 “지난 11월 마지막 주일이 담임목사로서 마지막 설교였다. 제 마음은 상당히 준비돼 있었지만, 막상 마지막 설교라고 광고했을 때 그 뒤 일어날 일들을 수습할 자신이 없었다”며 “늘 하던 것처럼 교우 여러분과 인사를 나눌 때 누군가 눈물을 비치면 왈칵 같이 울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말씀드리지 못했고, 예배 후 늘 하던 인사도 못했다. 그 일로 많은 교우들이 섭섭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정말 죄송했다”고 털어놓았다.
유 목사는 “저는 아마 가장 행복한 목사일 것이다. 한국에서 저만큼 행복한 목사가 있을까”라며 “장로님과 온 교우들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 맞다면 우리도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게 마땅하다는 말씀도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참 어려웠을텐데, 그 말씀과 복음을 강단에서 마음껏 전할 수 있게 해주시고 말씀대로 목회할 수 있게 해주셔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교우님들께 감사드리는 것은 5년 일찍 은퇴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이다.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다”며 “예수동행운동을 위해 남은 시간을 전적으로 헌신하도록, 마치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 선교를 하도록 허락한 것처럼 허락해 주셔서 마음 다해 감사드린다”고 했다.
유기성 목사는 “아내에게도 감사하다. 2003년 9월 베드로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신 말씀을 이 교회로 부르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받았다. 사모였던 제 어머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아내는 목회자인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며 “당시 선한목자교회 전신이던 믿음의집교회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많았다. 이 교회 와서 함께 목회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먼저 불려갈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선뜻 오자고 말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유 목사는 “그런데 아내가 돌짝밭 같은 부름이지만 잘못된 길은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순종해 주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며 “두 딸 지영이, 하영이에게도 감사. 두 딸도 큰 결단을 해야 했다. 이 교회로 올 때, 목회자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바닥이었다. 목회자로서 얼만큼 신뢰와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린 두 딸에게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일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동의해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와 두 딸에게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섬김을 받게 해주시고, 은퇴하는 시간에 행복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교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교우들이 잘 알지 못하는 한 분의 기도가 있었다. 장모님이시다. 또 많은 분들의 기도가 있었고, 부목사님과 전도사님, 직원들에게 진 사랑의 빚도 많다. 오늘 참석하고 순서를 맡아준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그는 “이 시간 교우들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김다위 목사님을 정말 잘 섬겨 주시면 좋겠다. 말 한 마디라도 정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해달라”며 “저는 모세이고 김 목사님은 여호수아라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좋지만 모세가 잘하나 여호수아가 잘하나 그렇게 하지는 말아달라. 누가누가 잘하나 게임이 아니다. 그리고 김다위 목사님은 엄밀히 말하면 여호수아라기보단 다윗이다. 시대가 다르니, 더 이상 모세와 여호수아 구도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김다위 목사 이름이 ‘다윗’을 뜻하는 데서 나온 위트 있는 당부였다.
유기성 목사는 “김다위 목사님이 어느 교인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말도 하지 말아 달라. 그분이 목사님에게 다가온 것이지, 목사님이 누구를 가까이한 것이 아니다. 김 목사님은 모든 교인들을 사랑하는 위치에 있고, 어려운 교인들에게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라며 “김다위 목사님은 지금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자리에 서 계신다. 정말 제가 질투하지 않을 테니, 저희 부부에게 했던 것보다 훨씬 잘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장로님과 교인들이 김 목사님에게 잘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그렇게 기쁘다. 그런데 김 목사님이나 유 사모님 얼굴이 어두워 보이면 그렇게 마음이 힘들더라”며 “누가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의 위치와 심정, 책임감을 다 이해할 수 있겠나. 장로나 교인의 마음으로도 절대로 안 된다. 오직 하나, 주님의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김다위 목사님 보시는 그 마음으로 해 달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저를 위한 기도 부탁을 드린다. 교회가 은퇴하고 정말 많은 곳으로 저를 섬겨주셨다. 은퇴목사 중에 교우들로부터 저만큼 많은 대우를 받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장로님들은 ‘뭘 더 해드릴까요’ 물으신다”며 “당연히 기도이다.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사역을 마지막까지 할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 목사는 “저를 위해 가장 귀하게 섬겨 주시는 일은 교회와 온 성도들이 예수님과 온전히 친밀함을 누리며 사는 것을 듣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큰 기쁨과 힘이 어디 있을까”라며 “제게 은퇴 심정이 어떤지 더 이상 안 물으시면 좋겠다. 슬프다고 해야 하나, 기쁘다고 해야 하나? 굳이 비유하자면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린 사람의 심정이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심정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처음 뛰어내렸을 때는 공중에 붕 떠 있는 것이 얼마나 두렵겠나. 그러나 조금 지나면 하늘을 나는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까 번지점프대에 올라가는 것”이라며 “은퇴한 제 심정이 꼭 그와 비슷하다. 그동안 교회 울타리 안에만 있다가 이제 교회를 떠나서 사역하는 제 심정에 어찌 두려움이 없겠나. 늘 교우들의 사랑과 섬김 속에 있다가 이제 교회를 떠나서 사역하는 제 마음은 두렵다. 그러나 참 놀랍게도 그래서 더 주님께 의지하게 되고, 말할 수 없는 자유와 함께 ‘이것이 주님만 의지하고 사는 자의 자유구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끝으로 “지금 제게 주신 하나님의 복이 있다면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는 자유함이다. 이는 그러나 은퇴 후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선한목자교회 모든 교우와 김다위 목사님과 이 자리에 있는 모두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고 했다.
이어 박리부가 사모는 “이미 은퇴했고 공식 절차만 남았기에 은퇴식이 다가와도 마음이 평온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은퇴식이 되니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더라”며 “주님께서 한번에 마음을 다잡을 감사를 주셨다. 목회하시던 아버지가 42세 젊은 나이에 은퇴식을 건너뛰어 장례식을 하게 되셨던 일이다. 건강하게 둘이 함께 나란히 앉아 은퇴식을 맞이하게 된 것은 수고의 열매가 아닌 오직 베풀어주신 은총이기에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박리부가 사모는 “사모는 절대 안 한다던 저를 사모 삼으셔서 이 길이 가장 행복한 길임을 고백하고 마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찬양한다”며 “사모이지만 마음껏 사역하도록 말씀과 기도의 장을 열어주신 장로님들과 성도님들께 감사드린다. 목회하면서 좋은 교회, 좋은 교우들을 만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목사와 사모라는 이름 때문에 셀 수 없는 성도들의 사랑과 섬김을 받았다. 주님 태운 나귀가 대신해서 받는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박 사모는 “젊고 부족함 많았던 초년 목회 시절에도 ‘우리 사모 예쁘다’고 손잡아 주신 성도님들의 사랑을 먹고 성장했다. 아팠을 때 ‘나이 많은 저를 데려가시고 사모를 살려달라’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 덕분에 지금까지 살았다”며 “모든 성도가 없어선 안 되는 제 소중한 가족이고 몸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저 기도 자리에 엎어져 울 수밖에 없었던 교우들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그분들은 항상 제게 미안해 하셨지만 기도의 자리에 묶어 주셨고, 함께 끌어안고 기도하면서 사랑과 십자가는 같은 단어임을 배웠다”며 “교역자 공동체는 우리가 가짜가 되지 않고 주님 말씀대로 사는지 끊임없이 실험하는 실험실이 되어 주셔서 감사했다. 모두 사랑하는 가족이고, 감사이고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가족이며 몸이라고 말하면서도 식구가 많다는 핑계로 지금까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교우들께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저를 묵묵히 지지해 주고 기도해 주셨다. 저도 여러분처럼 무명의 한 사람으로 함께 교회를 위한 자리에 있겠다”고 다짐했다.
박리부가 사모는 “사랑하는 남편에게 감사한다. 남편의 설교에 같이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남편이 설교를 전하기만 하지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면 저도 불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옆에서 실제로 보고 누리게 되니,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참 행복했다”며 “사랑하는 딸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해주고 시간을 많이 못 내준 것이 다 장성한 지금도 마음 한쪽이 아리다. 그래도 잘 자라서 믿음의 동역자가 된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사모는 “사랑하는 김다위 목사님과 유경아 사모님께도 감사하다. 우리 노년과 천국 가는 길을 의탁할 목사님과 사모님이 되셨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새 가정을 꾸민 아들과 딸이 되셨다. 독립한 새 가정이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도록 기도로 응원할 것”이라며 “평생 기도의 무릎으로 살아오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매일 교회 장로님들 이름을 빠짐없이 부르시며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어머니는 사모님으로 불리다 장로님으로 불리는 삶을 사셨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이름 없는 사모가 되어 주셨듯 저도 못다한 기도들을 품고 기도의 골방에서 교회를 섬기겠다”고 이야기했다.
또 “지금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여러 교직원들께도 감사드린다. 드러나지 않는 헌신으로 섬겨주신 충성스러운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이고 제 감사이다. 이제 와서 보니 거추장스러운 짐이라 여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실 안전장치였음을 깨닫는다”며 “예수만 따르는 길이 고난의 길 같아 보였는데, 돌아보니 그런 것들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주님 마음 따라온 순종의 발걸음만 보이게 하셔서 감사하다. 믿음의 조상들의 순교와 희생 덕분에 심은 것보다 더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 제 후손과 교회가 더 많은 열매를 거두도록, 저희 대에 거둘 수 없는 씨앗들을 더 심어보겠다”고 했다.
끝으로 “매일 기도드리는 제목이 있다. 교회 문을 넘나들던 분들, 같은 교인이라 이름하는 분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천국에서 만날 수 있게 해주십사 하는 기도”라며 “여러분은 제 면류관이고 사랑이다. 사랑한다. 고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