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역, ‘돌봄’이라는 은혜로운 부르심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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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예술의 공공성과 문화 돌봄

예천 신풍미술관, 할머니 그림학교
농촌 할머니들 그림 가르치며 섬김
크리스천 이성은 관장의 문화 사명

말씀 안에 문화 다스리라는 부르심
좋은 삶과 번성하는 문화로 번영을
문화 돌봄, ‘생성적 사고’ 실천 비례

▲예천 신풍미술관 할머니 그림학교 모습. ⓒ미술관 제공

▲예천 신풍미술관 할머니 그림학교 모습. ⓒ미술관 제공

공공성을 표방하는 미술 중에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과 같은 페미니스트 미술운동도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낮은 자세로 지역 공동체를 섬기는 유형도 있다. 지금까지 15년째 개최하고 있는 경북 예천에 소재한 신풍미술관의 ‘할머니 그림학교’가 그중 하나이다.

‘할머니 그림학교’는 그림을 접하지 못한 할머니들에게 창작 프로그램을 통하여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색다른 체험시간을 갖게 하였다. 평균 연령 80세 이상인 할머니들은 매주 한 차례씩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식사를 함께 하면서 점차 삶의 활력과 자존감을 되찾아간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성은 관장의 말에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시골엔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웃음이 없는 할머니들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그림학교를 여니 ‘우리 같은 밥버러지가 무슨 그림을 그리냐’며 그림은 안 그리고 간식만 드시는 분들이 많았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다들 그림에 푹 빠져 너무 재미있어 합니다.”

이성은 관장은 농촌 어르신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섬기면서, 참여자들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가족을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할머니들이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을 탄생시키는 것을 보는 감회는 남다른 것이다.

이 관장이 외딴 곳에 미술관을 세웠을 때 주위의 우려도 컸지만, 이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진심을 알고부터는 모두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크리스천인 이성은 관장 역시 삶과 예술을 통해 지역의 어르신들을 섬기게 된 것을 커다란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장 칼뱅(Jean Calvin)은 문화의 가치를 긍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그것을 선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인류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들에게 주시는 가장 훌륭한 은혜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인간 생활에서 가장 훌륭한 일들에 대한 지식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우리에게 전달된 것이라는 의견을 펼쳤다(『기독교강요』, Ⅱ권, 2.16).

우리는 어떻게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과 새로운 공동체적 삶을 구상하면서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작가이자 저술가인 마코토 후지무라(Makoto Fujimura)는 ‘문화 돌봄(Culture Care)’을 제안한다. 후지무라는 문화를 돌보는 일이 필수적이라면서, 프레드 던백을 소개한다.

그가 다녔던 공장은 구리선을 제조하는 제철회사였는데, 공장 폐수를 그대로 허드슨 강에 흘려보냈다고 한다. 1960년대만 해도 미국에는 오염을 단속하는 규정이 미비해 공장에서는 폐수를 방류하여 강물을 오염시키는 일이 잦았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를 느낀 프레드는 여러차례 회사에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되자 회사를 고소하였다. 그는 회사로부터 말단으로 좌천되는 불이익을 받았지만, 그동안 모은 자료와 증언 덕분에 승소할 수 있었다. 오늘날 300만 마리의 농어가 허드슨 강을 헤엄칠 수 있게 된 것은 프레드의 노력에 기인한다고 후지무라는 기술하고 있다.

후지무라는 여기서 프레드의 기독교적 ‘청지기의식’, 즉 생태의 문화적 관리인으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강조하였다. 그는 예술가도 ‘문화 돌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천 신풍미술관 할머니 그림학교 모습. ⓒ미술관 제공

▲예천 신풍미술관 할머니 그림학교 모습. ⓒ미술관 제공

“만약 오직 자기 표현을 위한 예술을 하는 대신 누군가를 기꺼이 섬기고자 한다면 어떨까? 세상이나 우리의 관객들이 우리에게 동의하거나 박수쳐주기를 기대하는 대신 겸손하게 협력하고 봉사에 헌신한다면 어떨까(Makoto Fujimura, <컬처 케어(Culture Care)>)”라고 제안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 문화를 ‘다스리라’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다스리라’는 것이 약탈하고 침해하라는 것은 아니다. 좋은 관리인은 사욕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공동체의 번영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 전제로 ‘좋은 삶과 번성하는 문화’를 가능케 할 조건을 식별하고 배양할 ‘생성적 사고’가 요구된다.

‘생성적 사고’에 대해, 후지무라는 자신의 농장에 있는 ‘웅장하고 오래된 배나무’를 들어 설명한다. 이 나무는 작은 씨앗으로부터 자라났는데, 씨앗이 그것을 따듯하게 품어주는 땅을 만나 조그만 싹으로 바뀐다. 시간이 흐르며 보살핌을 받아 그것은 완전한 생장을 이루었고, 모든 면에서 원래의 씨앗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라나 종국에는 생성적 잠재력으로 충만한 여러 층위의 아름다움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 나무는 그늘과 보금자리, 꽃과 열매를 주며 침식을 방지할 수 있게도 하고 목재를 제공할 수도, 멋진 풍경에 기여할 수도 있게 된다.

여기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문화 돌봄’은 ‘생성적 사고’의 실천과 비례한다는 점이다. 즉 문화 돌봄이 궁극적으로 생성적 문화환경을 가져다줄 것인데, 이는 우리를 더 큰 선으로 즉 아름다움과 온전함과 치유, 다른 사람에 대한 돌봄, 더 깊은 대화를 위한 문맥의 형성, 영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차원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화 돌봄’은 비단 예술가뿐 아니라 선한 뜻을 품은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으며, 누구든 ‘공동선’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후지무라의 생각이다.

‘할머니 그림학교’는 앞에서 말한 ‘문화 돌봄’의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만일 그 지역에서 ‘할머니 그림학교’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이 삶의 활력과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성은 관장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들을 섬기고자 이 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문화는 종교처럼 깊은 영적 깨달음을 안겨주지 못하지만 우리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으며, 양질의 문화는 세상의 부식을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 삶에 종교의 구획을 따로 그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두셔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셨다.

신약 저자들도 주변 세상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되 세상을 추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살라고 격려한 바 있다(롬 12:2).

기독교 예술가에 있어 문화의 영역은 쟁취하고 장악해야 할 영토가 아니라 정성 들여 가꾸어야 할 정원이며 ‘돌봄’이라는 은혜로운 부르심의 장소이다.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서성록 명예교수(안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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