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박사 기독문학세계] 삶의 기쁨, 생명을 송축한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빛도 다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빛나는 빛이며 직관이다. 계시의 섬광이며 세계의 근원이다. 이를 통해 창조 세계가 가장 위대한 현실임을 깨닫는다.)
한 날, 따뜻한 햇살 아래 피어난 연녹색 작은 꽃 한 송이를 보았다. 나는 라운딩 중이었다. 카트 길을 피하여 언덕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다음 홀 티박스로 이동하고 있었다.
큰 길을 택해 따라 걸었더라면 놓혀 버렸을 이 작은 들꽃 앞에서 홀린 듯 멈추어섰다. 꽃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맞았다. 마치 가늠할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얼굴이다. 잎을 활짝 열고 눈부신 속살을 내어보이며 나와 눈을 맞출 때 나는 웃었고 고마웠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들꽃을 흔들었다. 바람은 봄의 온화한 기운을 실어내 나무들을 움트게 하고 조금씩 더 짙은 녹색으로 변하게 하며 온 천지에 갖가지 꽃들을 피워 내는 중이다. 바람의 길을 타고 언덕 사이로 난 좁은 길에도 꽃은 피고 이름 없는 잡초들도 너울을 두른다.
바람 앞에서 그들 몸은 관능으로 감응한다. 바람과 록색의 유희를 즐기는 동안 내 영혼은 활짝 열려 전율적인 기쁨으로 떨렸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빛도 다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연한 녹색의 꽃 한 송이가 우주의 주인이다. 들풀과 바람은 봄의 향기이며 봄의 색체이다.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녹색이다.
자연의 외향인 들과 산과 나무와 숲도 초록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도 연록색 너울을 두르고 있다. 지저귀는 새소리도, 사람들의 웃음소리에도 온통 색의 향기가 묻어난다.
이러한 녹색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언제나 한 마디 말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의식은 깨어나 순간 탄력으로 높이 솟아오른다. 충만함으로 떨어져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그 한 마디는 ‘생명성’이다. ‘생명성에 대한 갈망’이라는 표현이 더 실제적일 것 같다.
생명성은 삶의 에너지와 활기이다. 무엇인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활력을 보일 때 생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하니 하늘과 땅 사이에 흐르고 성장하는 모든 것은 생명을 상징한다.
갈망이란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얻으려는 내적 욕구이다.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역량과 의지력을 모두 포함하는 언어이다. 따라서 생명성을 갈망하는 것은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한 내면의 탐색이다. 자신의 생에 대한 신념을 찾는 일이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삶에는 무한이 있다. 삶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기쁘다. 우리는 영감과 직관이라는 선물로 삶을 송축한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이렇게 썼다. “한 줌의 모래에서도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도 천국을 본다(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ower).” 시인의 눈으로 사소한 것에서 무한을 볼 수만 있다면, 삶의 기쁨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순절과 부활절을 맞으면서, 시인 T. S. 엘리엇(Thomas Stearrns Eliot, 1888-1965)의 말을 깊이 묵상하였다. 그를 이 글에 소환하여, 독자들과 함께 생명을 송축하고자 한다.
“초자연적인 존재 곧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초 자연적인 세계, 곧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가장 위대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A supernatural being, that is, to believe in God, is to believe that there is a supernatural order, that is, to believe that the kingdom of God is the greatest reality here and now).”
송영옥 교수
영문학 박사, 기독문학 작가